당정이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노사관계 로드맵) 34개 항목 가운데 내년 2월 우선 처리 대상으로 선정한 24개 과제에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했던 내용은 대부분 포함됐으나 경영계가 반대했던 것은 제외돼 로드맵을 둘러싼 논란은 한층 더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 입장에서 보면 내년 2월 처리가 예정된 ‘노사관계 로드맵’ 내용이 지난 2003년 12월 선진화위원회 최종보고서 34개 과제 일괄처리보다 "더 개악"된 것이며 경영계는 인건비 증가로 강하게 반발했던 ‘통상임금 개념 명확화’ 부분이 빠지면서 부담을 덜게 됐다. 이에 따라 당정협의 결과를 두고 노동계 의견을 무시한 채 ‘로드맵’ 강행 처리를 시도하고 있다는 절차적 비난과 함께 내용에서도 형평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당정은 지난 11일 로드맵 34개 과제 중 복수노조 허용 등 24개를 내년 2월 우선 처리키로 의견을 모았으며 18개 항목에 대해서는 내용까지도 합의를 이뤘고 6개는 아직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2월 처리에서 제외된 10개 과제

이번에 우선 처리에서 제외된 10개 항목은 이미 시행되고 있거나 노사협의회 사항을 빼면 △교섭대상 확대 △조정대상 확대 △조정전치주의 폐지 △손배·가압류 제한 등 로드맵 내용 가운데 그나마 노동계에 유리한 내용들이거나 통상임금·평균임금 개념 명확화 등 경영계가 가장 반대했던 항목이다.

지난 2003년 12월 선진화위원회가 발표한 ‘로드맵’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연장근로수당이나 야간근로수당, 연월차 휴가수당 등의 산출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과 각종 수당이 포함된다. 그 동안 통상임금과 평균임금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해석 및 임금관리상 혼란이 초래됐다며 이 같은 안이 마련된 것. 이미 법원도 96년 이후 판례에서 행정해석과 달리 복리후생적 급여 내지 고정적 상여금이라도 그 지급이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명시돼 있고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라면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부분과 관련, 기업들은 통상임금 규모가 커지면서 연장근로수당 등을 산출할 때 기업의 인건비 증가가 우려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경영계는 9월 로드맵 중간보고 당시에는 전경련, 대한상의, 경총 사이에서 입장이 다소 갈리는 등 애매한 태도를 보였으나 12월 통상임금 부분이 첨가되자, ‘로드맵 반대’라는 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나마 노동계 유리한 항목 ‘제외’

이와 함께 ‘로드맵’ 중 노동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교섭·조정대상 확대, 조정전치주의 폐지, 손배·가압류 제한 등은 처리 대상에서 제외됐다.

‘로드맵’에는 교섭사항과 관련, 기존 근로조건 결정과 함께 집단적 노사관계 사항을 포괄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동안 조합 활동(전임자 문제 등), 단체교섭 방법 및 절차 등의 문제는 노사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교섭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화조차 쉽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권리분쟁 등으로 교섭대상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동계 입장과 여전히 거리가 있지만 분명 일보 전진된 내용이었다.

조정대상 확대와 조정전치주의 폐지는 ‘로드맵’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내용 가운데 하나다. 우리사회가 노사분쟁을 어떻게 접근하는가 하는 ‘패러다임’이 변경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로드맵’을 만든 선진화위원회는 조정대상을 단체교섭·쟁의행위 대상과 분리해 권리분쟁 등 모든 갈등사항으로 확대, 조정 활성화를 제안했다. 즉 파업의 정당성 문제와 별개로 해고자 복직, 단체협약 이행, 구조조정 등 다양한 노사갈등 사안을 교섭·조정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치’했던 과거와 달리, 조정의 대상으로 확대하는 등 사전예방에 ‘무게중심’을 뒀다. 노사분쟁을 규제하던 관점에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쪽으로 시각이 바뀐 것이다.

이 밖에 지난 2003년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로 사회적 쟁점이 된 노조활동에 대한 손배·가압류 제한 항목도 2월 처리 대상에서 빠졌다. 당정이 10개 항목을 우선 처리에서 제외한 이유와 관련, 노동부 관계자는 “(통상임금 명확화 등)임금의 경우 워낙 사업장 영향력이 큰 만큼, 추가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좀더 세밀한 부분을 연구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조정대상 확대 등의 문제는 현 노동위원회 인력과 제도 등 인프라가 미흡해 시기상조로 입장이 모아졌다”며 “손배가압류는 노동법이 아닌 민사소송법 등 다른 법안 사안으로 다루기 힘들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당정 합의한 18개 항목 내용은 비공개

당정이 내용까지 합의한 항목은 △실업자 조합원 자격 △긴급조정제도 △노동위 기능강화 △직장폐쇄 등 18개이며 △노조 전임자 급여지원 금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대체근로 △직권중재제도 문제 △부당해고 형사처벌 관련 조항 △경영상 해고 제도와 관련한 사항 등 6개 항은 추후 논의키로 했다. 당정은 합의를 이룬 18개 항목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18개 과제가 모두 선진화위원들이 내놓은 안대로 의견 접근이 된 것은 아니다”라며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노사정 대화를 더 해보기로 한 만큼, 내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합의된 내용이 비공개이기는 하지만 선진화위원회가 제출한 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당정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와 함께 가장 첨예한 쟁점으로 당정 미합의 사항인 6개 항목도 대략 윤곽은 나온 상태다. 노조 전임자에 대해서는 소규모 노조 지원방안이 풀어야 할 과제로 제기되고 있으며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은 ‘다수대표제’(다수의 조합원이 있는 노조가 교섭에 대표로 참여)로 당정이 가닥을 잡고 있다. 노동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공익사업 대체근로 허용 문제도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이 “일부 허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등 당정의 입장이 다르지 않다. 직권중재가 폐지된다고 해도 공익사업장이 확대되고, 긴급조정으로 인한 파업금지 기간이 길어지고 쟁의행위 시 최소업무를 유지하는데다가 대체근로까지 허용된다면 공공부문의 노동운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렇듯 당정이 2월 국회 처리를 위해 일정을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노사정 대화가 시작된다면 ‘물꼬’가 달라질 수 있을까. 노동부 관계자는 “대화의 진전, 수준에 따라 다르지 않겠냐”며 “2007년 복수노조 시행 때문에 내년 2월 국회통과가 반드시 돼야 하는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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