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레미콘, 화물, 덤프 노동자들의 연대파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덤프연대 파업에 레미콘 노동자들이 지원했었고, 레미콘 노동자들이 하루 경고파업을 했을 때 덤프연대 노동자들이 연대했지만 전면적인 연대파업투쟁으로까지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연대파업의 주요 축으로 기대를 모았던 화물연대 역시 지난 10월31일 시행된 정부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가 59.7%의 찬성으로 가결됨에 따라 파업계획을 전면철회하게 되었다. 특수고용 노동자 투쟁에서 몇 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호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셈이다.


생존권을 위협하는 열악한 노동조건

투쟁과정에서도 노동자성 인정 문제를 주요한 문제로 부각시키지 못했다. 덤프연대와 화물연대의 경우 대정부 요구안에 분명 노동자성 인정문제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대정부 교섭이나 실제 투쟁에서는 생존권적 요구가 중심이 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현장 조합원의 정서가 상당부분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레미콘, 화물, 덤프 노동자 등 산업 전반과 건설현장의 물류를 책임지고 있는 운송노동자들에게 생존권적 요구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노동자성 인정 문제가 상징적 구호로서가 아니라 해당 업종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식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2004년 화물연대에서 발간한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주당평균운행시간은 64.2시간이다. 운행외의 업무시간과 회차시 화물을 받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까지 포함할 경우 전체노동자 평균노동시간의 2배 가까이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루 평균 수면은 5.1시간에 불과하고 수면장소도 차량이 절반을 차지한다. 일의 특성상 야간 운행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화물운송노동자의 노동강도는 일반 노동자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교통개발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월평균 운송수입은 169만원에 불과하다. 노동부가 조사하는 2004년 전체노동자 월평균 임금 219만원의 77.2%에 해당한다.

덤프와 레미콘 노동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덤프연대의 조사에 의하면 조합원 평균 부채가 3,800만원에 달한다. 교통개발원구원 조사에서도 덤프노동자의 월평균 적자액이 95만원 가량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을 할수록 부채만 늘어나고, 차량 할부금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도 없는 현실”이라는 어느 조합원의 절절한 목소리가 덤프노동자들의 현실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덤프노동자들의 적자문제는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경유가는 고공 인상되고 있지만 원청사업주나 하청업주는 운송료를 인상하지 않고 개별 노동자간의 경쟁을 부추기며 덤핑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건설산업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다뤄지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다. 운송노동자들의 운반단가 현실화와 경유가보조 요구는 집단이기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인 것이다.

과적 단속의 모순, 다단계 하도급의 문제, 어음지급관행 및 상시적 체불은 건설산업 현장의 오랜 악습과 어이없는 탁상행정이 빚은 결과물이다. 어찌보면 핵심에서 벗어난 지엽적 문제들이 운송노동자들에게는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시급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 자체가 역설적이라 할 수 있다. 정책왜곡과 행정부재의 문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조속한 보완과 수정만이 필요할 뿐이다.

업종별 대정부 요구안과 정부입장
구분레미콘덤프화물정부
운송료
현실화
사업장 중심의
요금인상 요구
건설협회에 덤핑단가 근절 요구표준요율제 도입화물:공공부문우선도입
유가보조화물과 동일 적용 요구면세유 지급,
유가보조금 압류제한
덤프:공공부문 계약금액 조정도입
화물:압류제한 법개정 추진,
면세유불가
다단계
하도급 근절
-감시, 처벌시스템
마련
책임단속 실행화물:건교부주체로 단속강화
과적단속
개선
-도로법 개정
측중계설치 의무화
이중 계근제 도입도로법개정추진
수급불균형
해소
-종합육성대책
마련
수급조절위원회
내실운영
화물:07년까지 신규허가 제한
노동기본권
보장
동일 요구사항화물연대 실체인정
노동자성 입법 모색
기타위장폐업
노동부 단속
어음지급관행 근절업무개시명령제 폐지
통행료할인시간 확대
덤프:표준임대계약서 마련
화물:할인시간 1시간연장

자본의 일방적 구조조정과 정부정책 실패가 빚은 결과

세 업종의 노동자가 당면한 열악한 노동조건은 불안정한 고용상 지위에서 비롯되고 있다. ‘특수고용화’로 표현되는 고용지위의 변화는 크게 보면 건설, 물류자본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고용 외부화 전략과, 수급조절 실패, 불합리한 물류제도 등 규제완화라는 국가의 산업정책 실패에서 기인한다. 화물의 경우 운송회사에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화물노동자의 5%미만으로 조사되고 있다. 일반화물자동차 90% 이상이 ‘지입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 이전에 직영노동자 신분이었다가 차량을 불하받고 개별 위수탁운송계약을 맺고 일을 하는 노동자가 30% 가량되고 나머지가 타업종에서의 진입자들이다.

덤프와 레미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덤프 노동자들도 80년대 전에는 건설원청회사에 직접 고용되어 있었으나 장비면허제도와 관련된 규제완화와 사업주들의 고용유연화 전략에 따라 지입차주 형태로 일을 하게 되었고, 레미콘도 87년 이후 사업주들이 보유한 레미콘 차량을 강제 불하하면서 전국 2만2,000여 레미콘 운송기사 중 2만명 정도가 특수고용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노동자성 인정이 궁극적 해결방안

결국, 허가제를 등록제로 전환하는 등 진입장벽을 대폭 완화하고 경영의 일부를 타인에게 위탁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여 지입제를 합법화한 근시안적 산업정책과, 이에 맞물린 건설자본의 일방적 구조조정이 건설운송, 화물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배태한 것이다. 운송료 현실화, 유가보조금 지급, 다단계 하도급 금지와 어음지급, 임금체불 근절 등의 생존권적 요구는 일면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등 개별적 근로관계법에서 강제적으로 규율해야할 노동조건을 개별 업종 차원에서 접근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렸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해당 노동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따라서 생존권적 요구들은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고용지위가 불안정해진 것에서 시작된 것이고 궁극적인 해결책도 여기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지난 10월26일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은 특수고용 노동자문제에 대해 입법적 해결을 모색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노사정위원회가 정상가동되지 않는다면 별도로 노사정 전문가로 구성되는 기구를 만들어서 논의하고 그 결과를 존중하여 입법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이 구체적 실행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화물연대의 2003년 파업때에도 노동3권 보장을 위한 노정간 성실협의를 약속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정부기구인 노사정위에서 특수고용 문제를 다뤄온 지가 2년이 지났고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노사정위 논의를 핑게대며 모르쇠로 일관해 온 것이 지금까지의 모습이다.

다른 특수고용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레미콘, 덤프, 화물노동자들도 계약의 형식과 무관하게 업무수행의 실질에 있어서는 운송업체와 건설원청 사용자의 포괄적 지휘감독권하에 노무를 제공하고 있다. 운송이라는 업무수행과정 자체에 대한 통제는 일반 노동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하지만 배차 및 운송구간에 대한 통제와 성과급 형태의 임금 통제만으로도 실질적인 지휘감독권을 행사하고 있다. 레미콘기사와 위수탁 화물기사에 비해 덤프, 화물 용차기사의 경우는 사업주 전속성이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실업자에게도 노동조합 가입이 인정되는 상황에서 노동자성이 부인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김동윤 조합원의 분신으로 대표되는 화물노동자의 노동조건, “차라리 죽여라”를 외치는 덤프노동자들, 1년 내내 위장폐업 철폐투쟁을 벌이고 있는 레미콘 사업장 등 운송업종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절박한 생존권적 요구는 단기적으로는 운송료 현실화, 유가보조 등 직접비용을 인하하고 다단계하도급에 의한 중간착취를 근절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노동자성 인정으로 강행법규에 의한 최저 노동조건 확보와 노동3권 행사를 통한 지속적 노동조건 개선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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