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제의 주요한 구성단위를 금융구조, 기업지배구조 및 노사관계로 구분하여 파악할 때, 가장 근본적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자본주의 토대인 노사관계이다. 노사관계는 노사정 세 당사자의 상호관계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때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이 노동조합이며, 그 상위대표기구로서 한국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라는 두 조직이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양대노총의 역할과 책임은 그야말로 막중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양대노총은 상생보다는 상호 질시 속에서 서로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다. 따라서 전체 노조 조직률이 11%로 제한적인 상황에서 과거 노총 간 반목을 연대와 통합으로 대체함으로써 노동자 이익 도모와 국민경제 발전의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노동계에 주어진 절대명제가 되었다.

특히 한국노총의 경우 2004년 총선전략 실패와 이어진 위기 상황에서 이용득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국노총 개혁추진 집행부가 탄생하였으며, 노총 대의원대회를 통해 개혁과 연대라는 시대의 요구를 실천하라는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고 재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노총 산하 몇몇 산별대표자를 중심으로 ‘노사정위원회 및 노동위원회 탈퇴’라는 양노총 연대투쟁을 접고 복귀하라는 요구와 더불어 한국노총 집행부의 활동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고 한다. 즉, 한국노총 집행부의 개혁정책에 대한 반발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중심으로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한국노총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산별대표자들의 주장은 문제 해결책 안돼

최근 노총 산별대표자회의에서는 노사정위원회 및 노동위원회 복귀 문제와 제조업 공동화 대책 마련이라는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문제는 동일한 비중을 지닌 같은 수준의 문제는 아니다. 우선, 제조업 공동화 대책 마련 문제는 한국경제와 노총이 직면한 매우 큰 문제이며 과제이다. 한국 자본의 중국 등으로의 탈주 문제가 제조업 공동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고 이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제조업 공동화 문제는 노총으로서는 달성해야 할 전략적 목표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 및 노동위원회 복귀 문제는 그것 자체가 전략적 목표일 수 없다. 그것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며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그러한 전술 차원의 문제를 둘러싸고 노총 대표자회의에서 투표까지 벌인 상황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뿐더러 매우 유감스럽다.

사실 전술적 관점으로 보면, 오히려 산별대표자들은 “대정부 요구와 주장이 해결되기 전까지 노사정위원회 등에 복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전개해주어야 했다. 그래야 집행부의 교섭력이 강화되고 유리한 국면 조성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일부 산별대표자들은 집행부에 대해 복귀를 종용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마치 전술에 매몰되어 전략적 목표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제조업 공동화 대안 마련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장논리를 쫓아 탈주하는 자본을 규율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노동계가 가지고 있어야 하며, 백기 들고 복귀하여서는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따라서 양립하기 어려운 두 주장이 일부 산별노조 대표자 사이에서 제기되었다는 것에 대해, 그 주장의 진정한 의미가 현 집행부에 대한 분파를 만들기 위한 수준에 그쳤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아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일부 산별대표자들의 주장은 별 의미가 없고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한편, 2006년에는 정부와 사용자의 대공세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지하다시피 전임자 임금 문제는 정부와 사용자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이다.

건곤일척의 큰 싸움이 내년에 예정되어 있다. 대기업 노조의 도덕성에 대한 대통령의 시비, 비정규직 입법 문제를 둘러싼 책임공방, 대통합 연석회의 등은 어쩌면 노사관계 전면을 소위 정부가 이야기하고 있는 사회 통합적 노사관계로 가져가기 위한 전초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동자의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회 통합적 노사관계는 반석위에 올린 집이 될 수 없고 정부와 사용자에 의해 주도되는 파트너십은 지속적 성과를 낼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보면 양노총에서 최근 벌어졌던 비리 문제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조합원은 물론이고 국민 전체를 꿰뚫는 의제를 들고 대장정에 나서야 하는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록 늦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양노총은 이왕 드러난 상처에 대해 더 깊숙한 곳까지 개혁해 나가면서 조합원 대중, 노동자 대중 그리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노총 전반에 드리운 타성에 대한 혁신이 절실하다.

개혁 통해 노총다운 노총으로 거듭나야

현재 노동계는 극심한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의제를 정확하게 설정하며 단결과 연대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 최근 일부 산별대표자들의 잘못된 요구와 주장이 활발한 토론을 통해 혁신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면서, 결론 삼아 몇가지 제언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첫째, 노사정위원회 및 노동위원회 탈퇴와 복귀 문제는 전략적 판단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하지만 필요에 의해서 재단될 수 있는 방법이며 전술 차원의 문제이다. 노동계를 인정하지 않는 현 정권의 기조가 바뀌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투쟁수단 문제의 차이를 가지고 노총 전체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모처럼만의 양노총 연대투쟁의 기조를 흔들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다시 충분한 토론을 거친 후 다시 산별대표자회의에서 한 목소리로 다듬어져야 한다.

둘째, 당면한 비정규직 입법 문제 등 의제를 중심으로 투쟁을 전개하면서 양극화 문제 담론을 노동계의 의제로 삼아야 한다. 이 문제는 매우 시급하다. 부동산, 교육, 의료 문제의 해결 등 사회 전체의 중요한 문제를 정부와 사용자가 나서서 획기적으로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사용자에 대해서도 주주자본주의와 재벌총수 경영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이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제를 담론으로 만들어야 한다. 제조업 공동화 문제 역시 이러한 담론구조에서 효과를 낼 수 있다.

셋째, 현 노총 집행부는 “개혁, 개혁 또 개혁”이라는 자세를 가지고 일부 산별대표자들의 분파적 반발을 넘어서야 한다.

대의원대회를 통해 조합원이 현 집행부에 부여한 임무는 노총을 노총답게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이 명제를 벗어나면 안 된다. 그것이 현재 발언을 자제하고 있는 조합원 전체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일부 산별대표자들의 발언권에 위축되어 전체 대의를 그르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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