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드디어 다음달부터 퇴직연금제가 시행된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퇴직연금이 갖는 사회·경제적 의의를 생각할 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나라에선 보기 드문 강력한 근로자 노후보장 장치로서 40여년 이상 법정퇴직금제도가 뿌리를 내려왔으나, 일부 근로자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고 기업 도산시 지급보장이 미흡하며, 주로 일시금 형태로 지급됨으로써 노후보장으로는 탄탄하게 연결되지 못하는 점 등이 지적되어 왔다. 더욱이 최근에는 연봉제 확산, 근속기간 단기화 등 노동시장 추세 변화에 따라 퇴직금의 역할이 점차 약화되고 있는 실정에서 새로 시행되는 퇴직연금제는 진정한 의미의 노후소득보장 장치로서 기능해 줄 것을 기대한다. 

퇴직연금제가 필요한 이유

우리나라의 퇴직연금제는 기존의 법정퇴직금제도를 존치시키면서 이와는 별개로 퇴직금제도의 문제점을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에 맞춰 리모델링하여 설계한 선택적 제도이다.

첫째, 노사가 합의한 경우에만 현행의 퇴직금제를 대신 할 수 있다.

둘째, 퇴직연금의 형태에는 근로자가 퇴직 후 받을 급여수준이 사전에 결정되어 있는 확정급여형과, 사용자가 부담할 기여수준이 정해진 상태에서 급여는 적립금의 운용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확정기여형이 있는데 사업장별로 노사가 합의하여 선택할 수 있다.

셋째, 급여의 지급도 연금(annuity)방식이 강제되지 않고, 근로자가 연금이나 일시금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일시금을 받는 경우 은퇴 시까지 계속 적치할 수 있는 별도의 장치(개인퇴직계좌)도 마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법정요건의 범위 내에서 노사가 퇴직연금제도를 설계해 그 운영을 금융기관에 맡기되, 운영과정에 참여하여 컨트롤 하는 형식을 취할 수 있다.

퇴직연금제는 개별기업의 노사는 물론 금융시장 등 국가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매우 크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직장이동시 적립금이 통산되고 퇴직 후 연금으로 지급받을 수 있어 노후소득 보장이 강화되고 수급권 보장도 사업주의 사외적립을 통해 강화된다. 사업주 입장에서도 퇴직금 재원의 정기납부방식을 통해 부담이 평준화되고 임금피크제, 연봉제 등 유연한 노무관리기법을 도입하기에 용이하다. 국가 경제로 보아서도 금융시장의 안정은 물론 자율적인 노후소득보장 강화에 따른 재정안정 효과도 크게 기대된다. 

노사의 제도이해가 중요

그러나 이처럼 큰 기대효과에도 이 제도가 개별사업장의 노사에게 선뜻 선택되고 급속히 확산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선 강력한 법정퇴직금제를 대체할 정도로 과연 이점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고, 노사 당사자간에 다양한 퇴직연금상품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거쳐 제도설계에 이르기까지의 복잡한 대화와 합의과정을 이뤄낸다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이 제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우선 세제 개편을 추진하여 퇴직연금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부여할 방침이며, 금융기관의 안정성과 연금자산 운용의 적정성을 기하기 위해 정교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사업장 도산 등에 따른 수급권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강력한 지급보장 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 여부는 다른 무엇보다도 근로자와 사업주가 제도를 이해하고 참여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보므로 11월중 개별사업장을 대상으로 전국 순회설명회를 개최하고 전국적 전문기관으로 하여금 지속적인 안내 및 설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아울러 컨설팅 비용의 지원을 통해서 개별사업장 실정에 맞는 퇴직연금제가 설계·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인구고령화가 세계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속히 진전되고 평생직장의 개념이 멀어져만 가는 우리 사회변화 속에서 진정한 노후소득보장 제도를 탐색하고 활용하는 지혜가 누구에게나 요구된다.

노사 모두의 진지한 관심과 현명한 선택을, 아울러 그로써 제도 자체도 더 효율성이 제고되어가는 선순환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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