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교섭을 요청했더니 우리가 ‘사장’이라서 못 하겠다 합디다. 우리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이 왜 우리보고 ‘사장’이라고 합니까?”

서울의류산업노조 루치아노최분회 조합원들은 1년에 서너 차례 열리는 패션쇼와 백화점 명품매장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여성의류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난 8일 공장을 멈춰 세웠다. 전체 150여명의 직원 가운데 미싱사는 70여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일감에서 손을 놓아버리자 공장은 더이상 돌아가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하청회사로 가라’ 날벼락

이들이 공장을 멈춘 이유는 지난달 17일 회사가 갑작스레 ‘이사짐을 싸라’고 지시한 데서부터 비롯됐다. 이날 회사는 “기존 생산라인을 2개의 하청공장으로 나누기로 했으니 하청회사에 가서 일하라”고 명령했다. 싱숭생숭한 분위기 속에서 미싱노동자 70여명은 영문도 모른 채 이삿짐을 싸고 트럭에 실었다.

하지만 한솥밥을 먹은 지가 벌써 십수년인데 갑자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회사’에 가서 일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하청으로 가야 한다면 하나의 하청회사로 가게 해달라”고 관리자에게 사정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이들은 다음날 서울의류산업노조에 집단으로 가입하고 사쪽에 교섭을 요청했다. 3차례 교섭 끝에 하청노동자가 되는 사태는 막아냈지만, 회사는 “당신들은 노동자가 아니니 더이상 교섭할 이유가 없다”며 협상테이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본 적도 없는 ‘개인사업등록증’ 덕에 ‘사장님’ 되다

루치아노최분회 조합원들은 모두 개인사업등록증 하나씩 갖고 있는 ‘소사장’이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한번도 자신의 ‘개인사업등록증’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자신의 개인사업등록증을 회사가 등록했고 회사가 관리하기 때문이다. 세금도 모두 회사에서 대신 처리해줬다.

“회사가 직원들 도장까지 다 갖고 있다”고 말한 한 조합원은 “내 이름으로 된 등록증이라기에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보여달라고 해봤지만 관리자로부터 ‘무엇 때문에 그러냐’는 핀잔만 들었다”고 전했다.

이들이 개인사업등록증을 가진 ‘사장’이 된 것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기 직전이다. 이전에는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정규직 노동자였지만 회사쪽이 “그 어떠한 불이익도 없다”면서 개인사업자로 등록을 요구했다.

“당시엔 회사가 원하는 대로 ‘소사장’이 되지 않으면 해고될 분위기였어. 그래서 불만은 많았지만 다들 어쩔 수 없이 개인사업등록증을 낸 거지.” 최고참 신 아무개 조합원은 ‘노동자에서 하루 아침에 사장님이 된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소사장제가 도입돼도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관리자들의 큰소리에 ‘월급’을 포기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았던 것은 ‘3일 무단결근 시 계약해지’ 등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조항뿐, 4대 보험과 퇴직금 등 모든 복지혜택은 사라졌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얼마 전까지 출근카드도 있었어. 3일 안 나오면 바로 잘리는 거지. 어떤 ‘사장님’이 출근카드 찍고 회사에 들어와?”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사장님’이 된 미싱노동자들은 저마다 “개인사업자 등록 이후 사보험료도 오르고 건강보험료도 오르고, 국민연금 납입금도 올라서 허리가 휠 지경이다”, “아파도 납품기한 때문에 병원도 못가고, 집안 경조사도 못 챙겨서 불효자식 돼버렸다” 등등 신세타령 하소연 끝에, “우리가 너무 불쌍해지니까 이제 그만 하자”며 말문을 닫았다.


다시 ‘노동기본권’ 찾기에 나선 전태일의 후예들

비정규직이 대규모로 양산되기 시작할 무렵, 루치아노최 뿐 아니라 대부분의 디자이너브랜드 업체에서 하청과 객공(客工)이 크게 증가했다. 객공이란 업주가 미싱사에게 기계와 장소를 빌려주고 미싱사는 옷을 만드는 수량에 따라 공임을 받아가는 제도를 말한다.

전태일 열사가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당시에도 미싱사들은 업주에게 객공 방식으로 공임을 받아갔다. 옷을 더 많이 만들수록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미싱사들은 자신이 과도하게 업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이 아예 없을 때는 한 푼도 받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제도는 당시 청계천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다. 때문에 1976년 청계피복노조는 단체협약을 통해 객공 미싱사들이 일감이 없을 때도 기본급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디자이너브랜드 미싱노동자들도 노동기본권 찾기에 나섰다. 지난 3월 같은 업종인 (주)안혜영부띠끄와 (주)JR 미싱노동자들이 6개월여만의 투쟁 끝에 소사장제를 폐지하고 근로계약을 체결키로 사쪽과 합의했다는 소식은 디자이너브랜드 업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현재 루치아노최분회 뿐 아니라 쎌리나분회도 지난달 31일부터 부분파업에 돌입해 부띠끄브랜드가 진열된 대형백화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사쪽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안혜영부띠끄 등의 사태를 지켜본 이들 ‘디자이너’ 사장님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소사장제 폐지만은 안 된다”고 디자이너브랜드협회에서 굳은 결의를 다졌다고들 한다. 루치아노최 사쪽이 갑작스레 생산라인을 하청화 하려 했던 배경 역시 이같은 업계 분위기 때문이라는 게 노조의 분석이다.

그래서 “루치아노최 분회 조합원들의 싸움에 부띠끄브랜드 미싱노동자들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서울의류산업노조 정재국 재정부장은 설명한다. (주)루치아노최는 동종 업계에서 가장 큰 규모와 시설을 가진 업체로, 사실상 이번 싸움은 이 업계 전체와 노조 간의 일종의 대리전 형국을 띄고 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조정중지 결정이 떨어지자 회사는 “여타의 사정으로 계약을 해지한다”는 통보서를 노조간부 3명에게 발송하는 등 강경한 자세로 나오고 있다. 또한 쟁의행위 중에는 중단된 업무의 하청이 금지돼 있음에도 사쪽이 몇몇 하청업체에 일감을 내리고 있어 노조 간부들은 이들 하청업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조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전면파업에 돌입한 이후 사쪽은 파업 하루만인 9일 전격적인 직장폐쇄 조치를 내리고 10일에는 관리자들과 용역경비 직원 20여명이 농성장 진입을 시도해 조합원들과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이로 인해 조합원 1명이 병원에 후송되는 등 사태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백화점 시위하러 갔다가 자신이 만든 옷에 붙은 140만원짜리 가격표를 보고 입이 벌어졌다”는 한 조합원은 “우리가 만든 옷 한 벌이 수백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는데 정작 그 옷을 만드는 노동자는 4대 보험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서글픈 신세”라며 “사장님이 노조하고 대화라도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루치아노최 70여 조합원 모두 ‘부부’
35가구 생계가 달린 파업
1970년대 갓 스무살이던 처녀 미싱사들은 밀려드는 옷감에 공장을 벗어날 새가 없었다. 총각 미싱사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로, 이들 대부분은 같은 공장에서 만나 결혼했다.


루치아노최 70여 조합원 역시 모두 ‘부부’다. 때문에 이번 파업은 35가구의 생계가 달려 있다. 신동식 분회 사무장에 따르면 디자이너브랜드 업체 대부분 미싱사들은 ‘남편과 부인’으로 구성된 2인1조가 되어 공동작업을 한다. 재단된 옷감을 받아 거의 완성단계로 박음질을 하는 이들 작업의 단가는 한벌당 7,000~2만7,000원 가량. 한달 수입은 300여만원(2인1조당) 정도다. 그리고 회사가 정한 출·퇴근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30분까지로,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60시간 가까이 된다.


“루치아노최에서 일하는 미싱사 대부분은 20년 이상 된 숙련공들이거든. 그래서 단가는 매년 조금씩 오르긴 하지만 요즘 들어 디자인 자체가 워낙 복잡해져서 만드는 시간이 많이 걸려. IMF 때 단가를 5% 삭감한 이후 한 달 벌이가 매년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그러나 신동식 사무장은 ‘시원치 않은 한달 벌이’보다 ‘노동자성’ 때문에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노동자이면서도 사장이 되는 불합리한 구조를 먼저 깨뜨려야 돼. 솔직히 공장에 제대로 된 환기시설이 없어서 먼지구덩이 속에서 일하거든. 근로기준법이 전혀 적용이 안 되니까 이 문제도 해결이 안 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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