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GM의 신용등급이 정크본드(투자 부적격 채권) 수준으로 강등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적이 있다. 텃밭인 미국 자동차시장의 점유율이 20% 이하로 떨어지고, 자동차부품을 공급하는 델파이가 파산신청을 하게 되면서 GM이 세계 1위의 자리를 일본의 자동차회사인 도요타에 내놓는 게 아닌가 하는 분석도 제기되었다. 사용자 눈에 낀 ‘들보’는 못 본 체 하고 노동자 눈에 낀 ‘티끌’은 눈에 불을 켜고 찾는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GM의 경영 ‘위기’를 전하면서 그 주된 이유로 “경직적인 노동운동”을 꼽았다.

“신제품 개발 등이 늦어지며 혁신경쟁에서 뒤떨어진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불안한 노사관계가 '미국의 자존심'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조의 동의를 받고 구조조정과 공장 해외이전을 추진해야 하고, 일시 해고할 경우 5년 간 평균임금의 95%를 주어야만 한다. 여기에다 퇴직자와 부양가족에 대해 의료비와 연금을 종신 지급하고 있다. 따라서 퇴직 조합원들은 다른 회사로 이직하지 않는 한 모두 노조에 남는다. GM 생산직 근로자들은 강성노조로 유명한 미국자동차노조(UAW)에 거의 100% 가입하고 있다. GM이 살아나려면 무엇보다 퇴직 조합원에 대한 과도한 복지문제 해결이 필수적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매일경제> 11월2일자)

GM 경영위기의 본질이 과연 ‘강성’노조 때문인지를 규명하는 작업도 중요하겠지만, 사회복지로 감당해야 할 비용을 기업복지에 맡겨버린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는 작업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위의 <매일경제> 기사 가운데 GM이 “퇴직자와 부양가족에 대한 의료비와 연금을 종신지급하고 있다…GM이 살아나려면 무엇보다 퇴직 조합원에 대한 과도한 복지문제 해결이 필수적”이라는 내용에 눈길이 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과도하게 발달한 기업복지의 폐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GM의 경영위기는 ‘강성노조’ 때문이 아니라 과도하게 발달한 기업복지와 심하게 미발달한 사회복지 사이의 괴리가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기사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11월8일자에 실려 있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만이 쓴 '오만, 편견, 보험'이라는 칼럼이 그것이다.

미국의 의료보험은 좀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6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인 메디케어(Medicare)와 65세 미만의 저소득자와 신체장애자를 대상으로 하는 메디케이드(Medicaid)를 기본 뼈대로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저소득자와 신체장애자가 아니면서 65세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회사가 개별적으로 직장의료보험을 통해 부조하거나 개인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구조다.

국가가 책임지고 일원화하여 관리하는 체계가 아니다보니, 미국 국민 가운데 의료보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인구가 전체의 10%가 훨씬 넘는 3천5백만 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10명 미만의 중소영세기업에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나 그 피부양자들이다.

'오만, 편견, 보험'에서 크루그만은 “고용에 기반한 의료보험”(직장의료보험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 해법으로 “국가의료보험”을 제시한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65세 이상 인구가 1천만명이나 늘어났고 이 때문에 메디케어에 들어가는 부담금이 크게 늘었다. 반면, 고용된 노동자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직장보험의 가입자 수는 490만명이나 줄어들었는데, 이는 변덕스러운 경기 때문에 파산한 기업 사정과 고용불안에 허덕이는 미국 노동자의 형편을 반영한다.

크루그만은 미국 의료보험의 난맥상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은 다른 나라에서 배울 게 아무것도 없다는 오만”과 “사보험이 공보험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따른 편견”을 극복할 것을 주문한다.

시장판으로 전락해가는 미국의 의료부문

선진국 가운데 미국의 건강보험제도는 가장 많은 돈을 쓰고 있다. “2002년의 경우 1인당 의료비 보장을 위해 전국민을 포괄하는 국가의료보험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캐나다는 2,931달러, 독일은 2,817달러, 영국은 2,160달러를 쓴 데 비해, 사보험이 의료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은 무려 5,267달러를 썼다. 하지만, 미국은 평균수명과 영아사망률에서 이들 나라들보다 사정이 훨씬 나쁘다.”

그렇다면, 시장논리에 의존하는 미국 의료서비스의 질과 효율성은 공적 체계를 중심으로 의료체계가 꾸려진 나라들에 비해 높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크루그만은 캐나다, 영국, 독일, 미국 등 6개국 성인환자의 의료 경험을 다룬 의학 전문지 <보건 사정>(Health Affairs) 최근호를 거론한다. “긴급하지 않은 수술환자의 대기시간은 독일이 가장 빨랐고 그 다음이 미국이었다. 하지만 환자가 필요할 때 의사를 만날 기회를 얻는 데는 미국이 가장 어려웠다. 또한 우리(미국) 제도는 의료사고가 훨씬 잦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미국 국민들의 경우 금전상의 부담 때문에 병원에 안 가는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미국인 조사 대상의 40%가 돈 때문에 처방전을 받고도 약을 짓지 않았고, 30%가 돈 때문에 의사를 만나는 것을 꺼리거나 필요한 진단과 후속 조치를 받지 않았다.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미국은 건강관리를 권리가 아닌 특권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이러한 태도는 잔인할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임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민간보험업자나 의료 관련 회사들이 의료보장에 드는 비용을 내지 않으려 열심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제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관료적이며 운영비가 엄청나게 많이 든다”고 크루그만은 지적한다.

의료보험제도가 이리저리 갈라져 있다 보니, 보험공단들이 제약회사나 의료서비스 공급자들과 비용 절감을 협상하기에는 힘이 부친다. 민간보험사와 제약회사, 민간업체들이 시장판으로 변질된 의료부문을 좌지우지하면서 미국민들의 의료보장의 양과 질이 동시에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크루그만은 10년 전 미국식 제도에서 전국민을 포괄하는 캐나다형으로 의료보험체계를 바꿔 성공을 거둔 대만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것을 강조한다. 대만은 1995년 국민의 60% 이하가 의료보험 혜택을 누렸는데 반해, 2001년에 와서는 그 비율이 97%로 급상승한 바 있다.

한편으로 그는 미국 사회보장제도를 민영화 하려는 시도의 모범사례로 치켜세워졌던 칠레의 민간연금제도가 사실은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가가 강제보험으로 운영하는 단일의료보장방식과 비교할 때 “반쯤은 민영화된 우리 제도는 공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효율성도 크게 떨어진다”는 게 크루그만의 결론이다.

대기업 울타리 안의 담합구조

GM과 같은 미국의 기업은 재직자는 물론 퇴직자를 위해 의료보험비뿐만 아니라 퇴직연금까지도 부담하고 있는데, 지난 10월 GM은 경영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퇴직자들의 의료비 지원을 줄이는 데 전미자동차노조(UAW)와 합의했다. 이 합의는 국제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세계화 국면에서 국민 모두를 위한 사회복지를 방치한 채 거대기업과 거대노조끼리의 ‘담합’으로 일부 고임금 노동자를 위한 기업복지를 유지하는 게 더이상 쉽지 않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라 풀이할 수 있다.

필자는 얼마전 국내 굴지 대기업의 사내복지 실태를 살펴본 적이 있다. 저리의 주택자금 융자, 각종 경조사 지원, 건강진단비 지원, 본인의료비 지원, 가족 치료비 지원, 자녀학비 지원, 콘도이용 지원, 단체정기보험 등이 정규 종업원들에게 제공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혜택들은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미국과는 그 규모나 범위가 틀리지만, 우리 기업들 역시 국가에 내는 세금을 통한 사회복지의 유지발전에는 무관심한 채 ‘기업의 울타리 안’에서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담합 관계를 즐기고 있는 지도 모른다.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당장의 고용안정과 기업복지에 취해 국가가 운영하는 4대보험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많은 노동자 서민의 애환에 눈감고 있는 건 아닐까. 과연 이런 ‘담합’ 구조가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세제 개혁이나 공적기금 등을 통하여 기업복지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모아 4대 국가보험(의료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국민연금)을 확충한다면 보다 많은 국민이 혜택을 받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GM의 경영위기는 과도한 기업복지와 빈약한 사회복지가 사회 해체는 물론 결국은 개별 기업의 경쟁력까지 약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교훈으로 대기업 노사 모두가 깊이 새겨야 할 사례가 아닐까 싶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방치한 채 대기업 퍼주기에 ‘올인’하고 있는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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