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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벌언론과 신문의 위기70% 시장독점…그러나 상처뿐인 영광
“과거 언론 자유를 위협한 세력은 정치권력이었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 자본이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최대 세력으로 등장했다.” 1991년, 김중배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이임사를 통해 언론인들이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음을 강조했다.

이로부터 15년. 2005년 5월, 모든 언론이 삼성에 고개를 숙였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우리는 중앙 일간지의 '부의 축적', 그 역사와 현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03년도 신문경영분석에 따르면 36개사 전체 매출 총액은 2조6천58억원으로 나타났다. 중앙지 매출액은 1조6천771억원, 지방지 2천452억원, 경제지 3천811억원, 스포츠지 3천023억원의 순이었다. 이 가운데 이른바 '조중동' 3사의 매출액은 1조1천510억으로, 전체 중앙지 매출의 68.6%를 차지하는 규모였다.


특혜로 성 쌓고, 대 이은 세습

현재 조중동 등 3개 신문사는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며 독과점을 이루고 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우선, 1920년 3월5일 창간한 조선일보는 항일적인 논조로 인해 창간 첫해에 4차례나 정간을 당하면서 이후 경영난으로 수차례 경영진이 뒤바뀌게 된다. 1933년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하면서 방응모, 방재윤, 방일영, 방상훈 등 4대에 걸친 지금의 방씨 족벌경영체제를 이루게 된다. 현재 방상훈 사장이 지분의 30%를 갖고 있는 등 방씨 일가의 지분은 방일영문화재단의 지분(15%)까지 더하면 70%가 넘는다. 지분세습도 가속화되어, 3세인 방우영의 지분은 1997년 25.1%에서 2002년 8.4%로 줄어들었으나, 반면 아들인 방성훈 당시 조선일보 이사의 지분이 같은 기간 11.1%에서 16.9%로 증가했다.

동아일보는 1920년 4월5일 김성수가 창간했으며 일제 강점기 4차례 무기정간을 당했지만 현재까지 김씨 일가의 소유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 조선일보와 달리 직계 가족이 직접 대표이사를 맡고 있지는 않지만 김병관 전 명예회장 이후 4세로의 '세습'을 준비하고 있다. 김병관 전 회장과 김병건 전 부사장은 2001년 언론사 탈세비리 혐의로 물러났지만 지금도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병관 전 회장의 장남인 김재호씨는 1997년 9.1%의 지분에서 2002년 21.7%로 급격히 늘었고, 김재호씨의 동생인 김재열씨도 같은 기간 4.3%에서 9.3%로 지분이 늘어나, 사실상 4세로의 족벌세습은 마무리가 된 셈이다.

주요 매체재벌의 주식소유 현황 (출처 : 매체소유연구)
조선일보 소유지분(%)
방상훈(방일영 전 회장의 아들) 조선일보(30.03), 스포츠조선(20),
디지틀조선일보(5.1), 코리아나호텔(40)
방성훈(방우영 회장의 아들, 조선일보 기자겸 이사) 조선일보(16.88), 스포츠조선(29)
방용훈(코리아나호텔 사장) 조선일보(10.57), 스포츠조선(5),
디지틀조선일보(2.51), 코리아나호텔(30)
방우영(방일영 전 회장의 동생) 조선일보(8.37), 스포츠조선(10)
방일영재단 조선일보(15.0)
방정오 디지틀조선일보(9.16)
윤순명(방상훈의 아내) 디지틀조선일보(0.97)
이선영(방상훈의 어머니) 디지틀조선일보(0.97)
중앙일보 소유지분(%)
홍석현(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처남) 중앙일보(43.79)
동아일보 소유지분(%)
김재호(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의 장남) 동아일보(21.74), 마이다스동아(5.0)
김재열(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의 차남) 마이다스동아(30.0)
김희령(김병관 전 회장의 장녀) 마이다스동아(5.0)
한국일보 소유지분(%)
장중호(일간스포츠 사장, 한국일보 상무이사,
장기영 전 장관의 손자)
한국미디어그룹(22) 일간스포츠
장재구(한국일보 회장, 장기영 전 경제기획원 장관의 아들) 한국일보(40)
장재민(장기영 전 장관의 아들) 한국일보(30)
SBS 소유지분(%)
윤세영(태영 회장) 태영(14.8), SBS(29), SBSi(0.12)
윤석민(윤세영 회장의 장남) 태영(11.1), SBS(1), SBSi(0.09)

진보언론 탄압, 보수언론 특혜

족벌언론의 독과점이 이뤄지게 된 역사적 배경을 더 살펴보자. 해방 직후 미군정 3년을 거치면서 이땅의 진보언론의 싹은 싹둑 잘리고야 만다. 그 자리를 반공·보수언론들이 자리 잡았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1960년대 각 신문사마다 경영규모도 커지고 사원수도 늘어나 각각 1천여명 수준의 종업원을 거느리게 되면서 언론의 기업화 형태가 자리잡게 된다. 부수도 증가했고, 기업적 관리제가 도입되어 명실상부한 자본주의 기업이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1965년 첫 상업주의를 표방하고 창간된 <신아일보>와 삼성재벌에 의한 <중앙일보>가 창간됨으로써 더욱 심화되었다. 작고한 송건호 선생의 ‘민주언론 민족언론’에 따르면 60년대 일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8~10%였지만 같은 기간의 언론기업 성장률은 연평균 20%에 달했다.

외자를 특혜로 도입해 시설투자 붐을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언론은 독립된 언론기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업과 함께 한 기업인의 산하에 들어간다. 재벌 신문사들은 사세확장을 계속하며 70년도 차관을 도입해 윤전기 등 각종 시설을 도입하고, 심지어 관광호텔 짓는 곳에 사용했다. 당시 국내 금리가 연 26퍼센트였던 것에 견줘 차관 금리는 연 7~8퍼센트에 불과해 ‘거저먹기’나 다름없는 엄청난 특혜임에 틀림없었다.


신문사의 차관 도입현황 (단위 : 천달러)
신문사 사업명 연도 도입국 차관액
조선일보 관광호텔 건축 1968.11 일본 4,000
동아일보 윤전기 도입 1970.4 서독 1,060
서울신문 고속윤전기도입 1970.7 일본 592
경향신문 고속윤전기도입 1970.12 일본 605
중앙일보 고속윤전기도입 1970.12 스위스 1,270
* 출처 : 한국언론 바로보기

1970년대 초반 박 정권은 언론통폐합 실시와 지방지에 대한 ‘일도일사제’ 방침을 추진했다. 이와 함께 언론기업의 카르텔화도 가속화된다. 정부의 언론정책에 따라 1962년 일간지 경영주들을 중심으로 ‘한국신문발행인협회’가 창립했는데, 이후 5년 뒤 그 명칭은 ‘한국신문협회’로 바뀐다. 1974년도에는 통신사를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협회 산하에 총무, 광고, 판매협의회 등의 협조체계를 마련한다.

이와 함께 증면과 가격면에서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해 이 협회의 영향력은 확대된다. 카르텔은 기업경영과 함께 신문의 편집과 내용까지도 획일화 하는 현상을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까지 한국 언론의 체질적 특성으로 굳어져 오고 있다.

한국신문협회는?
신문사주들의 모임…언론노조 ‘협회해체’ 촉구
한국신문협회는 지난 1961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이듬해에 ‘관제협회’라는 이름으로 결성된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신문협회는 군사독재정권의 언론탄압과 통제 정책에 한마디 항거도 못하고 철저히 부역하거나 군사독재정권과 야합해 왔다. 신문협회는 또 신문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한 신문법 제정과 불법 무가지와 경품신고 포상제에 대해서도 반대해 왔다. 신문협회는 이사회도 열지 않고 지난해 10월20일 ‘신문법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성명서를 통해 신문법 제정을 반대한 바도 있다.


장대환 한국신문협회 회장은 지난 2002년 자신이 경영하는 ‘매일경제’를 통해 ‘한국은 노조공화국인가’란 시리즈 기사를 통해 노동운동에 대한 증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장대환 회장은 2002년 8월 국무총리 인준 과정에서 ‘증여세 포탈, 자녀 위장 전입, 특혜대출’ 등 각종 불법의혹과 도덕성 문제로 낙마한 전력도 있다. 장대환 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케이블 방송인 MBN은 지난 1월 언론노조 MBN지부 위원장을 지낸 조합원을 부당하게 해고하고 서울지노위의 원직복직 이행명령도 거부했다.


전임 신문협회장인 홍석현 전 주미 대사도 무려 1천여개가 넘는 차명계좌를 만들어 악랄하게 조세를 포탈한 혐의로 실형이 확정됐던 바 있다. 거대한 자본력을 이용해 신문판매시장을 경품의 각축장으로 추락시킨 족벌신문들. 이들이 신문고시 개정에 반대한 것은 자신들이 불법과 탈법을 통해 장악한 신문시장의 독과점이라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세계신문협회 총회가 열린 지난 5월30일 언론노조는 ‘한국 신문협회 해체와 장대환 신문협회장 퇴진을 촉구했다. 한국신문협회가 그동안 신문(산업)의 육성과 발전을 도모하기는커녕 신문시장을 불법과 탈법이 난무하는 ‘돈 놓고 돈 먹기’ 판으로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국가의 비호 아래 온갖 특혜를 누리며 기업으로서 언론을 탄탄하게 키우는 대가로 언론은 국가정책에 대한 이념기제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반공·수구언론으로서의 면모인 것이다. 뜻있는 언론인들은 몇 번에 걸쳐 언론독립과 자유를 위해 노력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해직뿐이었다.

198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의 추방과 언론통폐합, 언론기본법을 제정한다. 언론통폐합으로 살아남은 언론사는 경쟁이 필요 없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 조성된다. 이윤추구의 극대화를 국가가 적극 보장해 준 것. 한번의 통폐합을 거칠 때마다 언론사의 기업이윤은 더욱 상승세를 타 80년대 들어서 언론사는 우리나라 100대 기업에 들어갈 정도로 급성장하게 된다.

1987년 민주화항쟁의 결과, 1988년 12월 언론자유화 조치가 취해지고 다음해인 1989년 한해 언론사들이 우후죽순 다시 생겨나게 된다. 1989년 7월 일요판 신문을 제작한 한국일보는 1991년 12월부터는 조·석간 체제를 30년만에 재가동하며 경쟁에 불을 지폈다. 중앙일보는 1995년 4월 석간에서 조간으로 변경하며, 조선일보와 24면에서 32면으로 다시 48면으로 증면경쟁을 벌였다. 각종 경품과 무가지가 뿌려지기 시작했고, 신문시장은 시계제로의 상태에 접어들게 된다.

2003년도 언론사 자산, 매출액, 순익 상위 11위 (단위 : 백만원)
언론사 자산총계 언론사 매출액 언론사 당기순이익
MBC 1,236,029 KBS 1,234,211 SBS 85,548
KBS 1,013,093 MBC 689,973 MBC 84,633
SBS 663,154 SBS 610,105 KBS 28,801
동아 498,021 조선 438,673 조선 23,330
중앙 449,033 중앙 374,733 부산방송 9,407
조선 413,054 동아 337,626 광주방송 7,374
한경 228,696 매경 159,128 대전방송 6,587
한국 227,383 한국 122,854 광주매일 6,462
매경 221,873 한경 106,915 극동방송 6,198
서울 201,126 서울 87,341 대구방송 6,121
부산 112,207 한겨레 81,798 중앙 6,056
* 출처 : 2004 언론 경영실태 분석

미군정과 군사정권의 비호 아래 원시적 축적을 이룬 족벌언론은 이후 재벌의 지원을 받으며 승승장구한다. 부자신문과 가난한 신문의 차이는 점차 극대화된다.<표 참조>

지상파방송 3사와 조중동 및 일부 경제지들이 자산, 매출, 당기순이익 등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방송사들이 순이익 8백억원대를 기록하고 조선일보가 230억원을 기록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다수의 신문사들은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한마디로 한해 수익에서 지출을 빼고 남는 돈도 없이 손해 봤다는 것이다.

중앙일간지(경제지) 가운데 세계일보 28억, 한겨레 28억, 서울경제 43억, 국민일보 54억, 헤럴드경제 59억, 문화일보 73억, 서울신문 158억, 동아일보 172억, 경향신문 187억을 보였다. 한국일보는 무려 마이너스 547억원의 당기순손실로 경영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신문시장 독과점 여론왜곡 심화

해방 이후 줄기차게 언론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노조와 파업에 생채기를 내는 이유는 자명하다. 언론을 장악한 자본과 족벌사주들. 그들에게 사실보도와 객관, 중립이란 용어는 노동자들의 파업에 쓰이는 잣대는 아니다. 폭력성을 들이대 노조를 국민들로부터 이간시키고, 파업은 언제나 시민 불편을 초래하며, 국가경쟁력과 기업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소라고 선전한다.

언론매체의 독과점으로 인해 생기는 폐단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불공정 거래는 물론이거니와 여론의 독점과 왜곡현상이 심해졌다. 특히 언론사 세무조사처럼 언론자본의 이익과 충돌할 경우 독과점 언론들은 상호 경쟁을 하면서도 서로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생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재벌과 족벌사주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언론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유와 경영 및 편집이 일체화 되어 있는 구조에서 재벌과 족벌사주에 대한 비판은 원천 봉쇄돼 있다.

권력과 자본의 유혹으로부터 독립될 수 없는 신문사의 구조와 인적구성은 1990년 이후 노동보도에서 ‘고립, 분열, 섬멸’이라는 방식을 되풀이 하고 있다. 동아, 조선투위 등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을 중심으로 <한겨레신문>이 창간됐지만, 아직 시장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가난한 신문’들은 이제 광고주, 특히 구매력이 있는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차별화된 기사를 양산하기 위해 애를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독립언론들이 그렇게 한다고 광고주들이 예전처럼 매체를 순서대로 돌아가며 주는 ‘순환식 광고’를 하지는 않는다. 철저히 시장논리에 입각해 광고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매체 1, 2곳에 광고를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 노조, 파업에 뺨을 후려치면서 보여주는 자본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은 가슴앓이만 남게 된다. 자본에 대한 짝사랑이 깊을수록 독립언론의 정체성은 흔들릴 뿐이다.

이수현 기자  shle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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