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10·26 재보궐 선거의 패배를 계기로 창당 이후 처음으로 당 지도부가 총사퇴를 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키로 한 것이다.

‘특단의 조치’를 가져온 ‘질 나쁜 패배’

민주노동당이 예전과 다르게 이러한 행동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원내 진출로 인해 ‘국민들의 심판’에 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원내 진출 전과 달리 민주노동당은 그것이 한 복판이든, 한 귀퉁이든 간에 국민들의 시야 범위 안에 들어와 있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 패배했다”고 자위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 일은 더이상 없다. 정치적 승패의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게다가 이번 재보궐 선거의 결과는 ‘아쉬운 패배’가 아니라 ‘질 나쁜 패배’였다는 점에서 지도부 총사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왜 질 나쁜 패배인가? 그것은 울산북구에서의 패배 요인 가운데 주요한 요인 하나가 노동인구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이해와 요구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원내 진출 이후 지역 차원에서 지지 기반이 확장되기는 커녕, 다지기도 제대로 안 되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대구 동을, 부천 원미갑, 경기 광주에서의 평균 득표율은 3%대로 아주 저조했다. 아무리 양당 우위 구도 하에서 치루어진 재보궐 선거라는 점을 감안해도 그 초라함을 부인하기가 쉽지 않다. 부천 원미갑의 경우는 17대 총선 때 받았던 8.37%에 한참 못미치는 3.37%의 득표율을 얻는데 그쳤다. 졌지만 소중하게 간직하고 키워나갈 ‘희망의 요소를 찾아낼 수 있는 패배’가 아니었다는 것. 그것이 이번 재보궐 선거 패배의 성격이다.

비상대책위원회, ‘긴급하고도 비상한 조치’를 취하라

비상대책위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혹자는 단지 차기 지도부를 선출할 때까지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해야 하며, 현실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사실상 이미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국면으로 들어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비상대책위원회는 ‘임시관리체제’ 정도가 되는 것이다. 이때 비상함이 의미하는 것은 지도부 총사퇴로, 지도부 총사퇴가 의미하는 것은 재보궐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지기로 제한된다.

이와 달리 또다른 혹자는 비상함은 당의 위기를, 지도부 총사퇴는 당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기 위한 기회의 제공이라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확장된다. 이때 비상대책위원회는 적어도 지금 당장의 긴급하고도 비상한 조치의 실시를 포함, 차기 지도부가 우선 수행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해결방안은 무언인지 등에 대한 당 안팎의 의사를 형성해내는 ‘이양체제’가 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이름에 걸맞은 위상과 역할은 후자라고 본다. 차기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 발생되는 비용을 절감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당 안팍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구성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별다른 내용도 없이 시간만 때우거나 이미 하기로 되어 있던 것을 대신 수행하는 것이 되어서는 실망감을 증폭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비상대책위원회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이번 재보궐 선거의 패배의 의미와 그 요인 분석에 바탕해 적어도 두세가지 정도 당 안팎에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것은 ‘구래의 틀과 단절’하는 계기를 형성해내는 것이어야 한다. 이와 관련 아래와 같은 실천항목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민주노총의 틀을 넘어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시급하게 당의 대표체계로 포괄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최고위원회와 대의기관 구성에 있어 노동부문 할당을 비정규직 노동으로 하는 규정 등을 마련토록 한다.

둘째, 노사정위원회 틀을 넘어서는 동시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포함, 빈곤 타파 등 양극화 문제 해소를 위한 '평등사회협약'의 필요성과 그 실현방안을 제기토록 하고, 이와 관련하여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국회의원 연대틀' 등의 구성을 시도한다.

셋째, 공직-당직 분리냐 아니냐의 문제틀을 넘어서서, 당의 정치력 신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리더십 구축을 위해 의원들의 역할을 대폭 강화한다.

정치의 상식을 따르면서 ‘유효정당’부터 되라

민주노동당은 2005년도 들어 10·26 재보궐 선거 직전까지 지지도가 10%대 초반에서 고착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자리수에 머물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17대 총선 시기를 전후로 민주노동당의 주요 지지층으로 확인되었던 ‘고학력-30대 화이트칼라- 중간소득층’ 등이 지속적으로 지지를 철회하면서 ‘실망층’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지지 철회 현상은 하나의 추세가 됨으로써 또다른 지지층의 철회 혹은 새로운 지지층 형성의 곤란함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심각하다.

이런 가운데, 한 조사에 따르면 다수 국민들에게 정당보다는 시민운동단체에 가까운 것으로 인식되면서 정치적 영향력도 미약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른바 ‘유효정당’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이면서도 노동인구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하고 있지 못하고, 구체적인 삶의 현장인 지역에서 자기 기반도 갖고 있지 못한 채, 지지율은 하락세에 접어들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내 당원들의 위기 의식은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지도부가 총사퇴까지 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심상치는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당이 지금 아주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고, 그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느끼거나 고민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당 활동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민주노동당의 특성 중 하나가 당내 정파간 정치, 즉 내부 정치에 주로 민감하면서, 정작 당의 생존 여부를 쥐고 있는 국민의 지지를 둘러싼 정치에는 둔감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러한 진단에 동의하든 아니든 간에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당에 대한 당 밖의 평가와 당 안의 평가가 아주 상이하다는 것이다. 당에 대한 당 밖과 당 안 사이에 인식의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 민주노동당이 빠져 있는 있는 침체의 늪의 정체는 바로 그 간극이리라.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올까? 지지도가 하락하면 그 이유와 대책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정치의 상식, 그것을 복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진보정당 운운 이전에 그 상식에 바탕하여 지지층을 재결집하고 확장해가기 위한 전략과 기획을 꾸준히 실행에 옮기면서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영향력을 인정받는 '유효정당'이 되는 것. 당분간 민주노동당의 목표는 이것이 될 수밖에 없다.

정체성의 정치도, 실용성의 정치도 다 이러한 목표에 복무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 된다. 즉 공허하지도 약삭빠르지도 않은 간지의 발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의 가동이라는 사뭇 비장감마저 풍겨나는 실험에 들어간 민주노동당에게 그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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