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투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사퇴를 해야 하니 마니 논란을 하더니만 이제는 하반기 투쟁은 대강 치러내고 빨리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나 하자는 그런 분위기다. 11월 초부터 9명의 비대위원들이 상근에 준하는 활동을 하기로 했으나 이를 준수하고 있는 비대위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비대위원들은 명색이 각급 연맹을 대표하고 지역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인데 이들이 비대위를 구성할 때 약속했던 기본적인 사항조차 지켜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비대위원장은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보궐선거냐 조기선거냐는 식의 논란을 오히려 부추기기도 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입 아프게 길게 말할 일이 아니다. 비대위는 민주노총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한 선거관리 내각이 아니다. 비대위는 하반기 투쟁을 책임지고 민주노총 혁신에 나서야 한다. 그게 비대위의 역할이다. 그 일을 해내기 주저한다면 비대위원들은 그 자리에서 당장 물러나야 할 것이다.

강승규 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 그것은 특정 정파의 문제나 상급단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주노조운동 전체의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래서 이구동성으로 민주노총의 혁신에 대해서 말했었다. 그렇다면 비대위가 구성된 지금, 우리는 민주노총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에 대해서 토론하고 논쟁해야 한다. 비대위는 그 토론과 논쟁의 공간이어야 하고, 그것을 주도해야 한다.

자본과 정권으로부터 독립적, 자주적이어야 한다

비리가 무엇인가. 사측으로부터, 혹은 이해관계자로부터 돈을 받는 것이다. 이는 노조가 사측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비리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노조가 자본이나 권력으로부터 ‘자주적이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비리는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이 훼손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자주성의 위기는 결코 개인의 ‘도덕성’이나 ‘운동성’으로 치부할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민주노조운동은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돈 받는 일을 너무나 태연하게 인정하고 있다. 정권과 지자체로부터 건물을 제공받고 행사를 지원받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 있다. 그러니 자주성이 지켜질 수 있겠는가?

내친 김에 신노사관계 로드맵에 대해서 말해보자. 거기에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측의 지원의무 삭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민주노조운동을 한다는 일부 사람들은 사측의 지원의무가 삭제되면 민주노조가 죽을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그래서 로드맵을 반대한단다. 참으로 웃기는 말이다. 노조 전임자에게 지급되는 돈이 사측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어찌 당연한가? 노동자가 스스로 만든 조합조직이라면 노조 전임자 임금은 조합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지금 조합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그럼 조합비를 인상해서 해결할 일이다. 정부보조금이나 사측 지원금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자주성을 훼손하는 그 길을 가느니 조합원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당당하게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복지기금으로 몇 억 이상씩 적립하고 있는 대공장 노조들부터 조합원을 설득할 일이다.(정당에 대한 국고지원금도 생각해 볼 일이다. 정당의 운영은 그 정당의 당원이 할 몫이다. 민주노동당도 국고보조금 받는 일을 당연히 해서는 안 된다. 똑바로 정신 차려야 한다.)

결국 비리의 구조를 원천적으로 없애려면 민주노조운동 스스로 자본과 정권의 ‘지원’ 아래에서 벗어나고, 주고받는 관계에서 탈피해야 한다. 철저하게 ‘자립 재정’의 원칙을 세워야 하고, 자본 및 사측과의 비공식적 만남과 부적절한 관계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가기 이전에 자본 및 정권과의 모든 관계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그 이외의 모든 관계는 단호히 부정하고 단절하는 일대 결단이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자주성을 세우는 것, 이것이 민주노총 혁신의 첫 걸음이다.

관료화된 대리주의를 넘어 조합원을 주인으로

노조 간부가 되면 돈을 받을 수 있는 위치가 된다는 건 과거 어용노조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노조 간부를 하면 한 밑천 잡을 수 있었던 그런 노조를 엎고 조합원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그런 노동조합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던 것이 바로 민주노조운동이었고, 조합원의 피와 눈물로 세운 노조가 바로 민주노조이다. 그런데 지금 그 민주노조에서 비리 사건이 터지고 있다는 건 민주노조 자체가 조합원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왜 민주노조운동이 조합원으로부터 멀어졌는가? 개인적으로는 노조 위원장에게 ‘체결권’을 부여한 노동법이 통과된 그 시점부터 노조의 권력화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민주노조운동은 그런 내용의 법 개정에 반대했다. 하지만 그 법이 시행된 이후 민주노조운동은 ‘위원장으로의 권력 집중’을 알게 모르게 수용하고 있다. 아니, 산별노조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내세워서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하고 있다. 그러면서 ‘효율적인 조직 운영’을 위해 중앙집권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천연덕스럽게 내세운다.(부르조아 정치집단들이 권력분산을 말하기 시작한 이 때에 너무나 뒤쳐진 모습으로) 교섭도, 투쟁도, 재정도, 인력도 중앙으로, 중앙으로 집중시킨다. 그러니 상급단체는 엄청난 권력을 갖게 되고, 그 권력을 누리는 자들은 비리의 표적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대리주의’가 덧붙여진다. 민주노총 산하 대부분의 노조들은 1년에 한 번씩 대의원을 뽑고, 2년 또는 3년에 한 번씩 집행부를 뽑는다. 선거가 있을 때면 모두 조합원이 주인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선거 때만 그런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일상 조합 운영은 위원장을 배출한 특정 정파의 영역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물론 이러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의원은 대의원대로, 조합간부들은 간부들대로 조합원의 ‘이익 챙겨주기’에 나선다. 계급적 대의와 미래를 향한 전략적 선택 따위는 현장에서 사라진 지 꽤 오래되었다. 국회의원 선거를 할 때면 지역 민원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서듯이 노조 대의원 선거와 노조 위원장 선거에서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물론 자기 이익을 우선하고 민원을 청탁하는 조합원들을 탓할 수도 있다. 이미 조합운영의 주인된 자리에서 밀려난 조합원들은 간부와 대의원을 통해 자기 이권을 챙기는 것에 만족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민주노조의 운영 시스템이 이미 조합원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전제로 짜여 있는 현실에서 조합원들로서는 자기 이속을 챙겨주는 그런 대표자를 선택하는 것이 어쩌면 현명한 일인지도 모른다.

민주노총 임원 및 대의원 선거 조합원 직선제로

이제 민주노총과 그 산하 노조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는 자’와 ‘위임하는 자’로 구분하는 노조의 구조를 유지할 것인지 아닌지. 민주노조라면 마땅히 노조의 운영과 그 결정의 위치에 조합원을 세워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의 상징이었던 ‘직접 민주주의’의 원칙을 모든 곳에서 적용해야 한다. 권력을 위임받은 자를 견제하는 장치가 아니라 권력 자체가 조합원들에 의해 쓰여지는 그런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각에서 거론하는 민주노총 임원 및 대의원에 대한 조합원 직선제는 조합원을 노동조합의 주체로 세우는 작은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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