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은 위기다. 여당이라고 할 수 있는 울산북구에서의 패배는 한마디로 1998년 이래 구정을 운영해 왔던 정당에 대한 냉혹한 평가이자, 1,300만 노동자의 대변자이고자 했던 집단에 대해서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어린 심판이다. 울산 현지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외면은 이미 어제 오늘일이 아니나, 그들의 냉랭함은 이제는 적개심으로 변하였다는 것이 선거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전언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원내대표를 제외하고 사퇴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도부의 사퇴는 본격적인 당내 투쟁의 신호탄일 뿐 당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질지는 대단히 미지수이다.

기이한 정파구조

민주노동당의 위기가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는 당내 정파들의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파는 당내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집단이나, 현재 존재하는 정파는 민주노동당이 당면하고 있는 주요노선과는 무관한 집단간의 연합이라는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

80년대 운동을 나누었던 양대 진영은 민주노동당에 그대로 온존되었으나, 당시에는 현실적인 문제였던 NL-PD 논쟁은 현재는 대단히 굴절되어 나타나 있다는 점이다. 즉, 민족과 통일의 문제는 이미 DJ 이후 국민 다수의 동의 하에 정부에 전폭적으로 수용되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과연 진보야당으로서 효과적인 주요 노선이 될 수 있느냐는 대단히 불투명해져버렸다. 계급문제를 강조하는 PD적 경향도, 현대판 소작인이라고 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맞닥뜨려서는 더이상 아무런 해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리하여 현재 이들에게 남은 것은 노선과 이념이 아닌 한마디로 과거에 누구와 친했느냐는 계파적 의미의 모임만 남았고, 민주노동당의 모든 선거를 좌우하는 이 두 경향과 이 두 경향에 친화적인 사람들은 이제 학연, 혈연, 지연에 이어 운동권 인맥인 ‘권연’을 구성하고 있을 뿐 민주노동당이 직면하고 있는 주요노선이나 당무집행에 있어서의 문제점은 이들에게는 전혀 관심 밖이었다.

하나의 예를 들어 윤 국방장관 해임 건의안 반대 사안은 민주노동당의 노선을 흔들 수 있는 사안으로 민주노동당의 독자노선을 심각하게 훼손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연정론을 자초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서 거의 아무런 논쟁도 일어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이 심각한 재정적자에 직면하여 상근자의 급여를 체불하는 사태에 이르렀음에도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다. 한마디로 당내 정파들은 도끼자루가 썩어감에도 침묵으로 일관하였고, 모든 관심은 다만 당직선거를 언제로 할 것인가, 당권을 수성할 것인지 되찾아올 것인지에만 집중하였다.

당직공직 겸직금지를 유지하기로 한 중앙위원회 과정에서 당내 정파의 주요인사들이 이 안건에 대한 찬반의 논거로 의회주의에 대한 반대와 사회운동정당 유지를 든 것은 대단히 기이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민주노동당의 의원의 자율성은 이미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을 능가하는 수준이며, 의원 중심 정당으로 빨려들어갈 때 이들 역시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파구조가 무능하고, 무책임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조는 바꾸기가 대단히 쉽지 않다. 이미 민주노동당의 정파는 전국적인 자기완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항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노선의 확신 부재

오히려 오래된 문제인 정파구조보다 가장 큰 문제는 노선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한국정당사에 유래 없을 정도로 의원이 없는 상태에서 출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틱한 원내진출을 한 비밀은 한마디로 그동안 정치의제가 되지 않았던 대중들의 사회경제적 권리를 옹호하며 이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내진출 이후 1년6개월이 지난 지금, 민주노동당의 주요 인사 중 민주노동당의 노선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의원들은 당의 정책이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발언을 공공연하게 하고 있으며, 끊임없는 열린우리당 친화노선을 걸어왔다. 원외지도부는 의원들의 이러한 경향을 제어하기는커녕 이들의 활동을 방임했다.

역설적으로 구체성이 떨어지는 민주노동당의 정책은 열린우리당이 속속 받아들이고 있다. 당내에서 강남에 집 한채 있으면 10억인데 부유세를 과세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2004년 12월 주택에 대한 과세기준을 9억으로 하는 종합부동산세법을 통과시켰다. 이는 명백하게 강남에 집 한채 있는 사람들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당의 주요 지방자치 공약인 참여예산제는 울산북구나 동구가 아닌 광주 북구에서 먼저 시행되었으며, 열린우리당의 주도하에 지방재정법에도 반영되었다. 이의 의무화를 반대한 한나라당의 의도가 관철되었으나, 참여예산제 도입을 임의화 하는 안에 대해서 소극적이었다.

무상의료에 대해서는 가장 원칙적인 공약인 비급여항목의 급여화 주장에 주저했으며, 정부가 추진하던 중대상병 중심의 급여화를 추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민주노동당의 노선이 흔들렸던 가장 큰 사건은 윤광웅 국방부장관 해임건의에 반대했던 사건이다. 당시 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서는 노동자위원이 퇴장한 속에서 사용자측 안에 가까운 안이 결정되는 폭거가 있었다. 이는 사실상 노동부측의 방임 없이는 불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은 수백만의 노동자에게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안 통과보다는 열린우리당 정부의 장관 살리기에 골몰하였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하락은 최장집 교수가 지적하였듯이 대중들의 사회경제적 권리를 도외시한 탓이다. 민주노동당의 패배 또한 자신의 강점을 잊어버리고, 열린우리당의 뒤꽁무니를 쫓아간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몇가지 대책들

사실 지금은 대책을 논하기 앞서 혁신하지 않으면 민주노동당은 영원한 10% 정당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뼈저린 반성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이러한 처절한 반성만이 울산북구에서의 패배와 지도부 사퇴의 충격을 넘어 제1야당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년 당직선거까지의 과정에서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것은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한 민주노총과의 관계 재정립 등 포괄적인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전체 노동자의 60%를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정당이 노동당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지는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노동할당 문제를 조정하고, 노동담당 최고위원을 비정규직에게 할당하는 등의 대책 또한 생각해 볼 일이다.

둘째, 노선에 대한 확고한 확인이 있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길은 분명히 민생독자노선이다. 대중들의 사회경제적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국민이 민주노동당에게 한 명령이다. 이 명령에 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준열한 평가와 반성이 있어야 한다.

셋째, 당내 현존하는 정파들을 어떻게 양성화하고 책임지울 것인지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정파명부제의 시행 등도 이제는 검토할 때가 되었다.

넷째,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북측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에 대해서도 충분한 토의가 필요하다. 통일의 대상으로 북측을 이해하는 것과 북측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는 분명 다른 것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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