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단체협약시 여성교섭위원은 여성국장 혼자였다. 남녀평등과 모성보호와 관련해 안건을 발굴하고 요구안과 논리를 개발하고, 자료준비하고 협상테이블에서 발언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혼자의 몫이었다.

그나마 협상에서 발언할 기회는 한 번이었다. 한 번의 교섭 이후 나머지는 실무소위원회에서 쟁점들을 좁혔고, 실무소위원회에는 여성국장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은 단체협약의 당사자로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여성이 현장에서 받는 차별과 불평등한 조치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투쟁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노조 간부와 지도부들의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노력이 가시적으로 있어야 한다.” 지난 10월31일과 11월1일 이틀간 열렸던 IUF(국제식품노련)-ILO 동북아시아 모성보호 워크숍에서 사례 발표한 한국 한 노동조합 여성국장의 말이다.

모성보호는 여성보호인가?

모성보호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성보호가 여성보호인가?’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해 왔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 나설 때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누구도 나를 대신하여 싸우거나 나를 위해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어렵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들이 나서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고, 여성의 문제는 또 여성이 스스로 나서야 하는 것이리라. 모성보호는 항상 여성(노동)계의 과제였다. 그러면 모성보호도 여성문제라는 것인데, 정말 그런가? 아이를 낳고자 하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도 여성들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하는 것인가? 그 과정에 함께하는 어쩌면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남편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가?

직면한 문제를 인정하자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또는 비정규직을 자신들의 바람막이로 삼고자 하는) 정규직 노동조합들의 태도, 애 낳고 키우는 것은 애 낳은 당사자가 해결해야 한다는 태도를 갖는 대다수 남편들의 태도, 남녀평등과 모성보호는 여성국장이 알아서 하라는 많은 노동조합들의 태도, 뿌리는 하나이지 않은가?

처지가 다르니 현실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인가? 아니라면 얼마나 자신의 처지를 넘어서서 사회를 볼 수 있는 것일까?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사회가 직면한, 특히 소위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인 것 같다. 내가 속한 조직이, 특히 나 자신이 이러한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선 인정하는 것이 출발일 것이다. ‘진보’는 구호나 말이 아니고 실천이고 일상의 행위이다. 내 조직을 돌아보고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문제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 시기 ‘진보’는 ‘돌아봄’이 아닐까?

한 가지 제안

10월31일자 매일노동뉴스에 의하면, 영국에서는 내년 4월부터 아버지들에게 6개월의 출산육아휴가를 부여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녀들을 양육하는데 더 적극적인 역할을 원하는 아버지들이 계속 늘어나서…”라고 영국의 관계 장관은 말했다. 물론 이 기사로는 이 법을 만드는 과정에 아버지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인지, 여성계가 중심이 되서 한 것인지, 아니면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의 일환인지 등은 알 수 없으나, 남성과 여성 모두가 가정과 직장을 함께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5월 산전후휴가기간 급여를 전액 고용보험에서 지급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그 당시 배우자 출산휴가를 여성노동계가 요구했었으나, 정부(노동부)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었다. ‘아버지들에게도 출산휴가를 달라! 아버지 역할 좀 하자!’고 남성계(?)에서 요구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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