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최고위원단이 총사퇴했다. 원내진출 이후 1년반, 당활동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의 표현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의 공유는 아직 충분치 않다는 게 당 안팎의 지적이다. 창당 때부터 민주노동당을 밑바닥에서 꾸려 왔던 여러 활동가들이 진단하는 '민주노동당 어떻게 거듭날 것인가'를 연재한다.<편집자주>

 

10월31일 민주노동당 김혜경 당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총사퇴했다. 재보선 패배에 연이은 지도부의 사퇴는 한 사람의 당 활동가로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제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혁신을 통해 민주노동당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의정부였어도 다르지 않았다”

10·26 재보궐선거 결과는 정치권력 재편의 시작이 되기에 충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총사퇴를 하고 비상대책위를 구성하기로 결정하고 위원들에 대한 인선작업에 들어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내년초 취임3주년 시점에서 자신의 진로에 대해 발표한다고 한다.

민주노동당은 10·26 재보궐선거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해야 될까? 뼈아픈 패배에 대한 반성과 혁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울산북구는 민주노동당의 텃밭임에도, 여기에 의원직을 강탈당했다는 국민들의 동정 정서를 등에 업었음에도, 의원직 탈환이 실패했다. 4·15총선 이후 10석의 의원을 가진 제3당으로서 수많은 언론을 통해 당활동이 국민들에게 다가갔음에도 불구하고 제2의 조승수를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는 뭘까?

일부의 평가처럼 지역의 정책문제로 또는 민주노총의 비리문제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갈등 문제만 선거패배의 원인을 지적하는 것은 지극히 부분적인 평가이다. 오히려 지난 당활동에 대한 총체적인 심판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4·15 총선 때만도 못한 다른 3곳의 득표를 보며 암담함을 느낀다.

만약 의정부에서 10월26일 재선거가 실시됐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아니 당조직이 탄탄한 성남중원에서 재선거가 실시되었다면 다른 결과를 얻을 수가 있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지역활동을 넘어 4·15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와 서민들의 기대와 요구에 얼마나 충실하게 활동을 해왔는지에 대한 해답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기획도 점검도 없었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2002년 대선과 4·15총선의 핵심 공약으로 부유세와 무상의료·무상교육, 주거문제 해결을 전면에 내세웠다. 노동자 서민들에겐 꿈같은 얘기로 들리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살 만한 세상이라는 공감을 얻어냈다.

그래서 4·15총선에서 국민들이 당의 실력을 넘어선 과분한 지지를 민주노동당에게 보내주었다. 그만큼 세상을 바꿔야 된다는 절박한 요구의 반영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후 당은 그동안 약속한 당의 정책을 구체화시켜내는 활동을 전당적으로 실천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착각하여 이대로만 간다면 집권이 눈앞에 다가올 것처럼 자만에 빠져 있었다. 그나마 올해 당대회에서 민생사업을 주요사업으로 결정한 게 성과라면 성과이다.

그렇지만 민생사업은 전국적으로 실행되지 못했고 구체화되지도 못했다. 의정부지역위원회에서는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임대료 인하운동을 작년 9월부터 임대아파트를 중심으로 활동을 펼쳐 2004년 10월 기초의원 재선거에서는 16.7%의 지지를 받았다. 그 이후 나홀로 파산학교를 매주 목요일마다 운영하여 이미 23차를 넘어서고 있다.

그렇지만 임대아파트 사업을 통한 당의 주거정책 실현을 위한 활동, 신용불량, 개인채무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도 중앙당 차원에서는 단 한번도 점검 및 평가, 공유 등이 이루어진 바가 없다.

무상의료 사업은 어떤가? 중앙당에서 서명명단에 대한 보고 요청이 최근 한번 있었으나 단순한 연고자 명부를 집중하는 이상의 내용은 없다. 민생 관련한 당사업을 당대회에서 결의까지도 하였지만 중앙당 차원의 전당적인 사업은 지역에서 구체화되고 축적되고 공유되고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를 수렴하여 전국적 의제로 형성시켜 내지도 못하고 있다.

경기북부지역의 당 지역조직들이 그간 주거관련·채무관련 민생사업을 해온 지역을 모아 토론회를 요청하고 이 모든 활동을 총괄해 중앙당 차원에서 전국적 의제로 제시하고 사업을 추진할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정규직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다고 하고 비정규직 운동본부가 각 지역에서 구성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비정규직 문제를 지역에서 중앙에서 의회에서 어떻게 전당적으로 실천하며 사회적 이슈로 제기해 나갈 것인지 커다란 밑그림을 갖고 집중화된 정치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사업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전국 곳곳에서 지역위원회마다 민생사업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 민생사업과 무관하게 어떤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것인지, 이것이 과연 성과를 가지고 주민들에게 뿌리내리고 결합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알길이 없다.

“희망 못준 정당에 대한 냉혹한 평가”

결국 지난 2002년 대선 이후 당의 핵심공약으로 제시된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무상의료·무상교육', '주거문제 해결'은 지금까지 노동자 서민들에게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당이 민생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결과가 10·26 재보궐선거 나타난 득표결과라고 본다.

당이 민중들과 결합하는 민생사업으로 다가가지 못한 데는 그동안 4·15총선 이후 당이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에 관심을 가졌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국가보안법에 ‘올인’하고, 열린우리당 ‘2중대 문서파동’을 야기하고, 최고위원이 당기위에 제소되기도 하고, 기관지 문제로 내홍을 앓는 등 각종 논란들은 사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국민들에게 정치적으로 약속한 것과 무관하게 흘렀다.

일관되게 민생정당으로 활동하면서 보수정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켜내지 못한 결과, 우리는 이번 선거결과에서 울산뿐만 아니라 전국 평균 낮은 득표율을 보인 것이다.

기존의 보수정당 지도부도 선거에 참패하면 심판을 받는다. 선거결과가 바로 그간 당 활동에 대한 냉엄한 국민적 평가이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노동당의 이번 선거결과는 그간 4·15총선 이후 이렇다 할 차별성도 부각시키지 못한 채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정당이라는 냉혹한 평가에 다름 아니다.

“의원들은 유명해졌지만…”

의원단 역시 냉혹한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노동당에 의원이 생기고, 지난 1년반 동안 당은 언론에 적지 않게 나왔다. 원내진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유명해졌다. 또한 많은 법안을 제출했으며, 여러 사회 이슈들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이번 재보선 결과가 말해주듯 그간의 활동이 결코 국민들로 하여금, ‘민주노동당에게 표를 줄’ 이유가 되지 못했다.

한 사람의 지역위원회 위원장으로 느끼는 어려움 역시 많다. 한 지역의 당원을 대표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법을 냈는지, 그 내용은 무엇인지, 의정활동의 중심전략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또한 그 활동들을 어떻게 지역활동과 연결할지 답답할 때가 많았다.

지역의 진보적 의제들이 국회로 들어가야 한다. 국회에서 이뤄지는 의정활동과 맞물리는 지역활동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몇몇 의원들은 이미 국민적 스타로 대우받고 있다. 그들의 활동이 당의 활동으로 부각되기 위해선 당의 일선 당조직부터, 국회의원까지를 포괄하는 활동으로 기획되고, 연결되어야 한다.

진보진영의 지도급 인사이며, 가장 왕성한 정치행위자인 의원단이 현 위기의 책임을 최고위원회에게만 미루고 외면해도 되는 것인지 생각해 볼 때다.

당활동에 대한 전면적 반성을 촉구한다. 진보정당으로 무릇 자기를 혁신하고 발전시켜 내지 못한 채 ‘10만당원시대’, ‘집권’ 운운한다는 것은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전면적인 자기혁신과 새로운 활동을 통해 노동자 서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는 과제가 바로 민주노동당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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