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민주노총 서울본부 아름다운 연대 차별철폐 실천단’ 발대식이 있었다. 300여 명의 노동자가 모여 사회양극화와 빈곤, 비정규직 문제 해결, 사회공공성 강화 등의 사회의제를 현장을 기반으로 자주적이고 선도적으로 실천할 것을 결의한 뜻 깊은 자리였다. 정규직 노동조합의 현장 활동가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이 서울실천단은 올 하반기 2대 사업 영역으로 ‘비정규권리입법 쟁취’와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사회공공성 강화’를 설정하며 출범했다.

이 서울실천단이 주목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단협 등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 의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실천을 모색한다는 점이다. 실천단이 처음 주목받은 것도 준비단계에서 최저임금 투쟁에 주도적으로 참여 노숙농성을 이끌었을 때부터이다. 여성노동조합연맹 등 비정규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투쟁을 서울실천단을 준비하던 동지들이 대거 참석했을 뿐 아니라 일부 동지들은 최저임금위원회 점거농성 투쟁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차별철폐 서울실천단 출범의 의의

한편 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적인 자기 이해관계가 있는 사안이 아닌 최저임금과 같은 사회적, 계급적 의제를 중심으로 한 실천에 적극 결합하면서 스스로의 문제의식이 크게 부족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래서 실천단은 준비단계에서부터 사회적 의제에 대한 대중사업 능력 배양을 위한 교육과 토론을 스스로 조직하였다. 서울지역의 공공, 사무, 본건의료, 언론노조, 공무원노조 등의 정규직 현장 활동가와 비정규노동자 등 4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독자적인 수련회를 개최하여 사회공공성 투쟁의 의미와 과제에 대한 토론을 시행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매우 초보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작지 않은 변화의 노력이었다. 임단투와 같은 기업내부 의제 중심의 대중 사업에 익숙했던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비정규 차별철폐 투쟁과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의 사회공공성 투쟁은 당위적으로는 해야 할 일이지만 정작 나서서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의제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의제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실천을 모색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둘째로 이러한 실천을 아래로부터 조직해 나갔다는 점이다. 내년 5월 민주노총은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선언한 바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대대적인 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다. 또한 일부 연맹들은 산별 전환을 위한 조직전환 투표를 추진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투쟁도 산별노조로의 조직체계 변경도 현장에서 받쳐주는 힘이 조직되지 않는다면 성과를 내기 힘들다. 지금과 같이 기업별 임단투 이외에는 이렇다 할 현장 대중사업이 부재한 상황에서 내년의 세상을 바꾸는 투쟁도 사실은 임단투 동력에 겉으로만 ‘세상을 바꾸는 투쟁’으로 포장된 실리투쟁에 머물기 쉽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장에서부터 자발적으로 실천단을 조직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이다. 실제로 실천단은 조직화 과정에서 사업장 단위를 넘어 지역별 체계를 갖추려는 진지한 고민, 노조비가 아닌 별도의 회비를 통해 독자적 멤버십을 갖추려는 시도, 내리먹이식의 관료적 동원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려는 사업방식, 월 1회 사회실천, 주 1회 현장실천 등의 혁신적인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 

정권과 자본의 양면적 노동운동 공세

최근 정권과 자본의 노동운동에 대한 공세는 매우 양면적이다. 한편으로는 노동운동을 부패한 비리집단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대기업 정규직들의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이기주의 운동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 두 문제, 즉 부패비리집단과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집단이라는 이미지 덧씌우기는 동일한 배경에 의한 것으로 취급된다. 지나치게 권력이 비대해서 부패가 생기고 있으며 이러한 거대한 힘을 사회변화가 아닌 자기 이익만을 위해 쓰는 이기주의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듯 조직화된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권력화 되었다며 터무니없는 악선전을 통해 고립시키면서 동시에 정작 노동조합의 절박한 도움이 요구되는 비정규 영세사업장 등 힘없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군사독재정권 시절과 조금도 다름없이 야만적 인 탄압을 밀어 붙이고 있다. 하이텍알씨디, 기륭전자, 현대하이스코에서 보여지는 노동 탄압의 모습이 그런 경우이다.

결국 힘 있는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부패하고 자신들의 이익밖에 모르는 권력집단으로 매도해서 고립시키는 한편, 힘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감히 노동운동에 참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만큼 무자비하게 짓이기는 전략인 셈이다. 이러한 차별화된 대응 전략을 통해 자본과 정권은 노동운동을 철저히 무력화시키면서 동시에 그러한 탄압으로 인해 노동 내부가 결속되는 것도 막아내는 말 그대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고 있다.

이러한 전략의 효과는 매우 분명하다. 힘 있는 조직노동 부문에서는 운동적 긴장감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운동적 긴장감의 결여 속에 의식적으로 생활적으로 중산층화 되고 있으며 이는 연대의식의 약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반면 노동운동을 절실히 요구받고 있는 미조직, 비정규 영세사업장의 하층 노동자들은 심각한 빈곤과 누적된 생활고에도 무자비한 탄압과 운동자원의 취약함으로 인해 노조 조직화로 전혀 나아가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이들 또한 무기력한 노동현실에 대한 불만이 자본과 정권에 대한 분노로 집중되는 게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과 그 대변자 민주노총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으면서 계급적 연대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노선과 정파 넘어 아래로부터의 실천을

이것이 지금의 민주노총의 위기이고 정권과 자본이 추구하는 계급해체 전략일 것이다. 이러한 자본과 정권의 전략에 대해 많은 문제의식들이 제출되고는 있기는 하지만 이렇다 할 모범적 실천이 뚜렷하게 제시되고 있지 못한 게 현재 노동운동의 현실이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위기적 현실에 대한 한의 반응으로서 서울실천단은 비록 소박한 것이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야 할 실천 모델이다.

물론 서울실천단의 아래로부터의 실천이 단지 자족적인 소박한 실천에만 머무는 게 아니다. 새로운 지역실천의 모델 발굴 뿐 아니라 민주노총의 현장 단위의 주체들로서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 구속사건’을 계기로 제기되고 있는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움직임도 적극 모색하려 하고 있다.

‘강승규 사태’는 단순히 민주노총 핵심간부가 사용자로부터 돈을 먹었다는 도덕적 문제 혹은 민주노총의 체면이 구겨진 그런 문제가 아니다. 직접적인 현장실천과 지역실천에서 맞부닥치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한 장애이다. 민주노총 서울실천단의 내부 토론 과정에서 ‘무상의료 무상교육’ 대시민 선전전을 꾸준히 해 온 어느 현장활동가는 강승규 사태 이후 민주노총에서 나왔다는 말을 도저히 꺼낼 수 없어 그냥 선전주체를 밝히지 않은 채 무상의료 선동만 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렇듯 철저히 현장에서부터 부딪히고 있는 이 비리사태에 대해 혁신의 요구는 높지만 현장의 활동가들이 민주노총 혁신에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서울실천단은 민주노총의 혁신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현장 활동가들의 눈으로 위기를 진단하고 그 혁신 방안을 스스로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또한 이 토론의 결과를 바탕으로 혁신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서명운동을 전개함으로써 현장 노동자들을 민주노총 혁신의 주체로 세우려는 실천도 모색할 계획이다.

노동운동 위기에 대한 대안은 과학적 노선과 혁신된 운동주체의 만남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다. 과학적 노선을 수립하기 위한 논쟁은 대안을 만들기 위한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다. 실리적 실천이 아닌 사회적 실천, 기업내부적 실천이 아닌 연대적 실천을 자기의 임무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주체의 형성과 결합되지 못한다면 노선이 아무리 과학적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서울실천단은 그러한 작은 노력을 하고자 한다. 노선과 정파를 넘어 아래로부터 새로운 노동운동을 열어젖힐 수 있는 소중한 주체들을 형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서울실천단 활동에 서울지역의 가슴 뜨거운 많은 동지들의 관심과 참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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