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연맹에서는 연차유급휴가수당지급과 관련하여 노동부에 질의를 한 적이 있었다. 주요내용은 2003년 9월 개정근로기준법에 따른 연차유급휴가수당 지급 문제였다. 우리연맹 산하의 한 대학에서는 2004년도 단체협약으로 개정근로기준법에 의한 연차휴가제도 실시를 합의하고 2004년도부터 소급하여 적용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시점에서 학교에서는 미사용 휴가에 대한 수당을 주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연차휴가제도 악용하는 사측

이 제도가 시행되고 나서 학교에서는 회계연도 종료 3개월 전(2004년 12월 초)에 근로기준법 제59조 2항에 의거, 직원들에게 미사용 휴가일수를 알려주고 미사용 휴가에 대한 휴가사용계획서를 제출받았다.

‘휴가사용계획서’는 근로기준법 59조의 2의1호 ‘연차유급휴가의 사용촉진’을 위하여 회계연도 만료시점을 기준으로 3개월 이전까지의 미사용 휴가에 대한 일괄적인 사용계획을 제출하도록 새로 도입된 규정이다. 부서장들은 직원들에게 휴가사용계획서 제출을 지시하였고 이 제도의 실시가 처음인지라 거의 대부분의 직원들은 휴가사용계획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직원들은 연말연시의 바쁜 업무일정과 입시관계로 휴가사용계획서에 제출한 대로 휴가를 모두 사용할 수가 없었고 사용하지 못한 휴가에 대해서는 당연히 유급휴가보상수당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휴가사용계획서를 제출하였으므로 이는 기존의 휴가원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따라서 실제휴가를 가지 못하였더라도 수당을 지급할 수 없다고 하였고 실제 아직까지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하여 우리 연맹에서는 유급휴가보상수당의 지급 기준에 대하여 노동부에 질의하였고 노동부에서는 ①근로자가 미사용 휴가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하여 휴가사용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사용자가 개별적으로 휴가사용시기를 지정하여 통보하지 않은 경우에는 당연히 유급휴가보상수당을 지급하여야 한다. ②근로자가 휴가사용계획서를 제출한 경우에는 연차유급휴가를 사용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이므로 휴가를 청구한 것으로 보아 사용자는 수당지급의무가 없다 ③다만, 근로자가 휴가사용시기를 지정받고도 출근한 경우 사용자가 노무수령거부의 의사표시 없이 근로를 제공받았다면 휴가일근로를 승낙한 것으로 보아 연차유급휴가근로수당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회신하였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②항과 ③항이다.

노동부, 휴가 없어도 계획서만 제출하면 그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노동자는 약자이며 사용자와 부서장이 휴가사용계획서 제출을 종용할 때 이를 제출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그리고 통상 휴가사용계획서는 문구 그대로 ‘계획서’이지 실제 휴가를 가고자 할 때는 본인이 휴가를 가고자 하는 시점에서 ‘휴가원’을 제출하는 게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이 학교의 경우에도 휴가사용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실제 휴가일에는 문서 또는 전자결재시스템에 의한 휴가원을 별도로 제출하였다. 또한 일반적으로 여름휴가를 제외한 일상적인 휴가는 집안일이나 피로누적, 관공서의 업무, 부서상황 등 계획하지 않는 상태에서 발생하며 실제휴가를 하기 며칠전에 신청하는 것이 관례가 아닌가?

그리고 근로기준법 제59조 5항에는 “사용자는…휴가는 근로자의 청구가 있는 시기에 주어야 하며…”로 규정하여 회사의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주지 않는 한 노동자가 휴가사용시기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동부에서 3개월 전에 낸 휴가사용계획서 대로 휴가를 가야하고 가지 못하였을 때는 노동자의 책임으로 보아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휴가사용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이며, 가능한 한 유급휴가보상수당을 지급하지 않고자 하는 사용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근로자가 휴가사용시기를 지정받고도 출근한 경우 사용자가 노무수령거부의 의사표시 없이 근로를 제공받았다면 휴가일근로를 승낙한 것으로 보아 연차유급휴가근로수당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했지만, 부서장이 부하직원이 휴가일에 출근했다고 해서 일일이 휴가계획서 확인해서 당신 오늘 휴가일이니 집에 가서 쉬라고 명령하는 하는 사례가 있겠는가? 그리고 휴가일에 나와서 일했더라도 나중에 부서장이 그때 당시에 노무수령거부 의사표시를 했다고 하면 그만 아닌가?

휴가일수도 줄고, 수당마저 없어지는 현실

주40시간 근로제가 도입되고 휴가제도가 변경되면서 실제 유급휴가일수는 대폭 줄어들었다. 이전의 휴가제도는 월차휴가 연12일과 연차휴가 기본 10일에 근속연수 매1년에 1일씩의 휴가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여성의 경우 월1일의 유급생리휴가가 보장되었다. 그러나 개정된 휴가제도는 1년만기 근속자의 경우 15일의 연차유급휴가를 받으며 매2년에 1일씩의 휴가가 부여되며 최고 25일로까지로 상한선이 정해져있다. 20년 근속자의 경우 구 휴가제도를 적용하면 월차 12일, 연차 19일(여성의 경우 생리휴가 12일)을 합해 총 31일(43일)의 휴가가 보장되었으나 새로운 휴가제도를 적용하면 24일의 휴가만이 보장된다.

이처럼 장기근속자의 경우 근속연수가 늘어날수록 상대적으로 휴가일수가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전체 유급휴가일수가 줄어들어 휴가수당에 대한 사용자의 부담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유급휴가수당 자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가려는 사용자와 노동부의 입장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노동자들이 휴가를 제대로 가지 못하는 것은 수당을 목적으로 고의로 휴가를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업 간의 경쟁 심화에 따른 업무량의 과다와 업무강도의 증가, 대체인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휴가를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제조업이나 사무직이나 연장근무시간 수가 OECD 국가 중 최고를 기록하고, 40대 사망률이 수위를 달리는 것은 적정인력이 부족하여 노동자들이 혹사당하고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부에서는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사용자의 입장에 서서 휴가사용계획서를 휴가원과 동일시하여 휴가를 청구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인 근로기준법의 입법취지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자신들이 속한 공무원 이외의 다른 기업이나 사업장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료적 탁상행정의 소치라고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여전히 사용자 편향적인 노동부

2003년 개정된 근로기준법상의 휴가제도가 실질적으로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단체협약의 유효성과 근로기준법 적용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관철해낼 수 있는 대규모사업장의 노조나 신분보장을 법으로 인정받는 공무원 같은 경우에는 바뀐 휴가제도 속에서도 무리 없이 연차휴가보상수당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조직률이 12%도 안 되고 300인 이하의 소규모 사업장이 80%를 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법 규정과 행정해석은 열악한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근거가 된다.

노동부는 산업자원부가 아니다. 정부부처와 사법기관 등 권력을 가진 대부분의 권위있는 기관들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 경제살리기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법 제정과 해석, 판결에 있어서 대체로 사용자 편향적이다. 노동부가 노동자편이 되어 달라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편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사회적 형평성과 노동관계법의 입법취지를 올바로 이해하여 올바른 행정지침과 해석을 내놓아야 한다.

현장의 관점에서 볼 때는 단체협약이나 근로기준법이 얼마나 실효성을 갖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단체협약이나 근로기준법에는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가 추후 많은 사업장에서 법적 다툼에 이르지 않도록 노동부에서는 조속히 올바른 행정지침과 해석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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