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과 농민단체들의 강한 반발 속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쌀협상 비준동의안을 전격처리 했다. 통외통위(위원장 임채정)는 27일 ‘질서유지’를 위해서라며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보좌진들의 회의장 입장을 물리력으로 막은 채 10여분만에 비준안을 신속하게 처리해 본회의로 넘겼다.

하지만 강기갑 의원이 단식농성에 들어가고 농민단체들도 국회 앞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는 등 반발이 거세 본회의 심의에서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임채정 위원장은 27일 회의에서도 민주노동당의 회의장 점거 등이 예상되자 26일 오후2시부터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회의장에 국회 경위를 배치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마쳤다. 상임위원장은 국회법에 따라 질서유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해당 상임위 의원을 제외한 의원들과 외부인의 방청을 제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경위들과 열린우리당 보좌진들은 민주노동당의 ‘기습 점거’ 사태에 대비해, 26일부터 27일 오전까지 회의장을 지키며 밤샘 ‘경계근무’를 섰다. 물리력을 써서라도 비준안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


이에 맞서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이날 오전 대책회의를 갖고 오전 8시50분께 보좌진 등 40여명과 함께 통외통위 회의장 앞으로 몰려가 회의장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회의장 밖을 지키던 국회 경위들은 민주노동당 의원단과 보좌진을 에워싸고 팔다리를 잡은 채 복도 바깥으로 끌어냈다. 끌려 나가지 않으려는 보좌진과 당직자들도 경위들과 멱살잡이를 하거나 고함을 지르는 등 회의장 밖은 30여분 동안 아수라장이 됐다.

의원들과 보좌진들은 복도에서 ‘쌀 비준안 졸속 강행처리 반대한다’는 플랫카드를 든 채 연좌농성도 벌였고, 감정이 격해진 강기갑 의원은 “이번만은 통상협상을 제대로 심의하고자 했는데 국회는 역시 거수기 노릇만 하고 있다”며 “먹는 문제를 이렇게 소홀히 취급해도 되냐, 두고 봐라”고 소리쳤다.

회의장 안의 임 위원장은 “합의내용 가운데 올해 이행분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쌀 비준동의안 처리를 더 늦출 수 없다”며 처리에 들어갔다. 박계동 한나라당 간사는 “비준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관세화로 갈 수밖에 없고, 이는 전면 쌀 개방”이라며 쌀 협상 사후대책을 전제로 비준안 처리에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은 “정부가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해 농민들의 신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고, 같은당 최성 의원은 기권 의사를 밝혔다.

임 위원장은 “비준안을 원안대로 의결하겠다”며 의원들에게 이의를 확인한 후 표결 없이 가결을 선포했다. 임 위원장은 “농민들의 아픈 마음을 느끼지만 비준동의안 처리는 어쩔 수 없는 과제”라며 “농민들의 걱정과 우려를 후속조치에 최대한 반영해 달라”고 덧붙였다.

비준안 통과 소식이 전해지자 권영길 의원은 “두 당은 농민의 호소를 외면하고 기습적으로 졸속 강행처리 했다”며 “쌀 협상만 한다고 하고선 다른 농산물까지 끼워넣은 ‘양자협상’은 위헌”이라고 분노했다.

민주노동당은 즉시 기자회견을 갖고 본회의에서도 막겠다는 뜻을 밝혔다. 심상정 의원단 부대표는 “국회가 350만 농민을 또다시 배신하고 가뜩이나 상처가 깊은 농심에 또 깊은 상처를 남겼다”며 “본회의 일방 강행처리를 막기 위한 강도 높은 투쟁 논의 중이며, 두 당이 아무런 대책 없이 본회의 강행처리를 기도한다면 온몸을 던져서 막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강기갑 의원은 이날 오후부터 국회 본관 2층 세종대왕상 앞에서 비준안 졸속 처리에 항의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강 의원은 단식에 들어가기 앞서 가진 회견에서 “쌀 협상 결과가 농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기본 분석조차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제시한) 농업보호대책도 미봉책이 불과하다”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우리 쌀과 농업을 위한 결단이었다는 해괴한 주장을 하지 말라”고 일침했다.

민주노동당은 △쌀 협상 결과가 농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내용 제출 △쌀값 폭락 대책과 식량자급율 목표치 법제화, 대북지원 특별법 제정, 직접직불제 전면 확대, 농가부채 해결, 농업재해보상법 제정, 학교급식법 개정 등 농업회생대책 수립 △쌀 협상 과정에서 체결한 별도의 ‘양자합의문’ 일체 제출 △정부-농업계-국회 3자 협상 △12월 WTO각료회의 결과 보고 비준안 처리 여부 결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