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의 장래를 우려하고, 나아가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쌓여가고 있다. 우리사회가 반독재 투쟁을 통해 형식상의 민주주의는 얻어냈지만, 실질 내용상의 민주주의는 요원하고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후퇴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정치 절차상의 민주주의 핵심을 일컫는 것이라면, 실질적 민주주의는 경제적 민주주의이다. 실제 사회구성원 대다수의 경제적 삶이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에서 평등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사상누각이기 십상이다. 하루 먹고 살기에도 바쁜데 무슨 정치의식이고, 투표하고 정치 참여할 정신이 있겠는가? 극단적으로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불평등한 경제적 차이가 사회적 차이를 야기할 것이고, 정치적 권리의 차이까지 진전되면 그것이 바로 정치적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드는 일이 된다.

노동하는 빈곤, 즉 일하는 데도 빈곤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른바 신빈곤 현상, 단전과 단수 대상 가구의 지속적 증가, 신용불량자 누적의 문제, 전체노동자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 등은 이제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진부한 일이 되었다. 또 한편에서는 민주화이후 사회적 갈등은 엄청나게 폭발하는데 우리 사회에는 이를 해결한 의사도 능력도 없는 것 같다는 한탄도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또 다른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한국경제 전환의 성격 ‘민주주의의 위기’로

협소한 의미의 경제적 효율성을 벗어 버리고 ‘사회 발전’의 측면에서 한국경제의 발전 전망 혹은 비전을 찾고자 한다면, 외환위기를 계기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경제 전환의 한 가지 성격을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는 첫째, 현 구조조정 과정이 노동 대중의 배제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국민 대다수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결정들이 국제금융기구와 자본의 대변인 그리고 극소수 관료 간에 밀실 속에서 결정되고 있다. 산업화 과정의 구체제가 ‘노동의 배제’를 특징으로 했다면 이제는 훨씬 큰 규모로 더 많은 비중의 국민 대중이 의사결정에서 배제되고 있다. 더욱이 왜곡된 세계화의 이념은 그 결정의 결과를 신성불가침의 ‘시장의 결정’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있다.

둘째,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민주적인 절차와 내용을 갖는 의사 결정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할 정책적 수단들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 수익성의 사소한 변화로도 한국사회를 떠날 수 있고, 떠나겠다고 위협할 수 있는 자본을 보완장치 없이 제도적으로 허용한 결과이다. 반면, 자본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건을 만들려는 국가 개입과 개입의 수단들은 오히려 강화되고 정교화 되었다.

셋째, 관치경제의 청산을 명분으로 비현실적이고 불공정한 형태로 정경분리의 원칙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이념과 외자의 지배력 강화는 이를 더욱 강화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초국적 기업의 활동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국제금융기구와 미 행정부의 활동이 경제영역에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듯이, 한국 경제에서 재벌은 더 이상 경제영역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정치적 행위자이다. 경제의 독점화가 일정 정도 이상 진행되면 독점자본에 대한 순수 경제적 규제(시장 규율)는 의미가 없어진다.

정경유착의 폐해를 수정하는 방법이 정치와 사회적 규제로부터 재벌과 초국적 자본을 자유롭게 하는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발전을 목적으로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이들을 규제하는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고 지켜져야 한다.

이미 한국이 처해 있는 세계경제의 구조와 한국경제의 내부 구조가 정치적인 것이 경제적인 것이고, 경제적인 것이 정치적인 단계에 와 있는 상황에서, 정경분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독점자본의 이익에 편향되기 때문에 국민 다수에게 불공정하다.

보수 정치권의 민주화 체제 극복 주장은 우려

이러한 현실과 우려와 회의를 반영하듯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민주화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현 우리사회 체제를 민주화 체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1987년 시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로 민주화 시대가 열렸고, 민주개혁이라는 과제가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우리사회의 지배적 가치라고 보기 때문이다.

일제로부터 해방을 통해 ‘건국’하는 것이 시대정신이었던 시기, ‘잘살아 보세’의 산업화 시대, 그리고 지금의 민주화 시대로 우리 현대사의 시대정신을 나누고 앞으로의 시대정신을 새로 포착해 보자는 제안인 것이다.

현 정부가 민주화 시대의 막내를 자처한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문제의식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또한 민주화 세대에는 결여되었다고 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 동북아에 대한 인식, 탈냉전과 통일에 대한 전망, 즉 우리 안에서 우리문제만 보는 시각을 이제 털어 버리고 시각을 넓혀 보자는 제안은 당연히 바람직하다. 또 한편 별로 설득력은 없어 보이지만 1987년 헌정의 제도적 문제 즉 대통령, 국회의원직의 임기 같은 문제로 삼는 견해도 끼어들어와 있다.

민주화 체제 극복의 주장이 우리사회의 새로운 시대정신과 이념, 사회적 과제를 모색하자는 제안이라면 필자도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약간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것은 민주화 체제의 한계를 논하는 것이 이념적으로 정치적 극우의 입장에서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모 재벌의 위헌 소송을 계기로 약간 논란이 되었듯이 1987년 헌법의 경제조항들은 많은 부분에서 시장근본주의에 입각한 이른바 신자유주의 이념과는 상충되고 있다. 예를 들면 헌법 제 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 규정은 우리시대 민주주의의 진정한 위협 요인인 자본의 독재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가치를 핵심으로 한 극복론이어야

새로운 비전의 제시로 1987년 헌정 질서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위 조항에 반영된 사회적 가치를 지키고 확대·발전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이 두 개를 섞어서 한 두루미로 엮고자 하면 그것은 자본 독재의 길을 여는 일이기 쉽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제기되는 민주화 체제의 극복론 가운데, 경제민주화의 가치를 핵심으로 유지한 구상만이 미래 지향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자면 자본주의의 지속적 발전은 민주주의와 더불어 나갈 때만 가능했다. 자본축적을 가속화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한 경우는 전쟁이나 자기 파괴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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