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2일~19일 부산에서 열리는 ‘200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APEC 성격 규정에서 파급효과 분석까지, 최근에는 집회선점 논란까지 더해져 APEC 반대진영과 찬성진영의 공방이 뜨겁다. APEC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APEC반대부산시민행동’ 공동대표인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김석준 대표(부산대 교수)의 심포지엄 발표문 ‘2005 APEC 정상회의와 부산 : 과연 누구를 위한 잔치인가’를 통해 그 맥을 짚어본다. 심포지엄 ‘부산 APEC과 동아시아의 미래’는 지난 10월24일 부산민주공원에서 열렸다.<편집자 주>



‘회원국간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이질성을 극복하고 역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등 궁극적으로 경제공동체 형성을 추구한다’는 APEC 의의에 대한 부산시의 설명을 김석준 대표는 “APEC에 대한 부산시의 이해는 극히 피상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APEC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인식은 거의 부재하다”고 평가하며, 학계와 진보진영의 논리를 통해 APEC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했다.

부산시의 문제의식 부재

김 대표는 학계에서 바라보는 APEC의 한계와 문제점을 여섯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회원국간 큰 경제적 격차가 무역자유화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했으며, 무역자유화와 개발협력 사이의 우선순위를 놓고 회원국간 갈등이 지속적으로 존재했다. 둘째, 너무 성급하게 회원 확대에 나서 자신의 정체성 확립에도 실패했고, 역내 경제통합을 전진시키는 성과를 거두지도 못했다. 셋째, 정상들이 전시효과만을 노린 의제에만 집중했다.

넷째, 회원국들은 주권상실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제도로서 APEC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어 규범이나 합의사항은 법적 책임을 부과하지도 못한다. 다섯째, 핵심의제인 무역자유화에서도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태에서 안보문제까지 확대하는 것은 긍정적인 발전이라 보기 어렵다. 여섯째, APEC이 본격적인 권력장치의 장으로 변질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APEC이 이런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EU와 같은 경제공동체로 발전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APEC에 대해 과도한 기대보다는 현실적인 목표를 가지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APEC, 경제공동체 발전 가능성 미약

신자유주의 반대세력은 좀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김 대표는 다섯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WTO/FTA 체결의 '구원투수' 역할이다. 실제로 UR이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시애틀 APEC 정상회의는 WTO 출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후에도 WTO/DDA 타결은 항상 APEC의 주요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둘째, 부시의 전쟁을 지지하는 역할이다. 2001년 상하이 정상회의에서는 부시의 아프간 침략을 지지했고, 2003년 방콕 정상회의에서는 ‘인간 안보’의 개념이 채택되었고, “아펙 회원국들의 군사주의적 안보 공약을 실제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합의가 통과되었다.

셋째, 반환경의 도구로 교토의정서를 거부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2005년 4월 열린 ‘APEC비즈니스와 기후변화 워크숍’에서, 한국정부도 교토협약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넷째, 곡물 메이저의 이익 대변자다. APEC 기업자문위원회는 98년 WTO와 일관되지 않는 비관세 조치의 단계적 폐지, 수출보조금 철폐, 유전자조작식품(GMO)에 대한 규제 완화를 내용으로 하는 APEC 식량체계(APEC Food System : AFS)를 제안했는데 이것은 거대 다국적 곡물기업들의 요구를 전적으로 대변하는 것이다.

다섯째, 조기 자유화와 사유화의 전도사다. 96년 필리핀 수빅에서는 조기자유화 대상 분야를 발굴하기로 결정하였고, 97년 밴쿠버에서는 9개 분야(환경, 에너지, 수산물, 장난감, 임산물, 보석, 의료장비, 화학, 정보통신)에 대해 99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특히 APEC은 2002년 OECD와 함께 규제개혁합동회의를 열어 ‘발전설비 민영화, 전력 매시장 개혁’에 관한 특별 주문을 하기도 했으며, 지적 재산권을 유난히 강조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렇게 정리한다. “APEC은 다자간 무역협정인 WTO를 보완하거나 역내 소지역협정을 포괄하면서 그것을 다자체제와 합치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최근 들어 다자체제가 한계에 봉착하면서 역내 국가들간의 쌍무 협상체계가 활성화되는 상황에서는 APEC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평가와 전망이 그다지 밝지는 못하다. 그리고 APEC이 미국의 정치 경제적 요구를 주로 반영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첨병 역할을 수행해 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각국 민중들의 반발과 저항도 갈수록 격렬해질 것이다.”

신자유주의 첨병 역할 충실

부산시가 제시한 APEC 유치의 파급효과에 대해서도, 김 대표는 구체적인 연구결과들과 자료를 인용해 비판했다.

부산발전연구원이 내놓은 ‘생산유발효과 4,021억원, 취업유발효과 6,099명’이라는 분석에 대해, 김 대표는 “부산지역 연간 총생산이 45조원에 달하고 취업자가 159만명에 달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경제적 효과는 전체 부산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에도 미치지 못하고, APEC 행사를 위해 2,598억원이 투입된다는 사실을 더하면 생산유발효과는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APEC 유치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도의 엄청난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류의 간접파급 효과에 대해서도, 김 대표는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언론을 활용해 유포하는 근거 없는 낙관론은, 지역경제의 장기적인 침체 상황 속에서 IMF 시절보다 더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대다수 부산시민들로 하여금 APEC 정상회의 유치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유력한 돌파구라고 믿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APEC 개최로 인한 부산의 도시브랜드 가치 상승에 대해서도, 김 대표는 “2005년 APEC 부산 유치가 확정된 상태에서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2004 APEC 정상회의에 대해서 국내 언론의 보도는 그리 많지 않았다”며 “가시적인 효과를 측정하기 어려운 도시브랜드 가치 제고를 강조하는 것은 경제적 파급효과의 미흡함을 호도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밝혔다.

파급효과, 근거 없는 낙관론만 ‘횡행’

김 대표는 결론적으로 “‘잔치판’ 자체는 부산에서 벌어지지만, 잔치의 내용은 한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 민중들에게는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전쟁 위험의 증대라는 고통을 강요하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며 “잔치를 잘 치르기 위해서 정성껏 준비를 했지만, 정작 집주인은 완전히 소외되는 그들만의 잔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반대진영의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가. 김 대표는 “‘그들만의 잔치판’이 가진 문제점을 폭로하면서, ‘우리들의 잔치판’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적극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APEC 정상회의에 대해 ‘반민중적이며 선진국 중심의 APEC 거부’, ‘한미 FTA 협상 개시 선언과 한일 FTA 재개 반대’, ‘12월 WTO/DDA 홍콩 각료회의 지지 선언 반대’ 등을 명확히 요구하고, 노동권, 환경, 빈곤, 사회보장, 기술이전, 중소기업 등에 대한 대책 마련도 촉구해야 한다는 게 김 대표의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빈곤과 종속, 분열과 전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는 다른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 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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