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12시. 부부는 침대 발치에 앉아 장난을 치고 있다. 남편은 아내에게 잠바를 슬쩍 던지며 오늘은 왜 안 걸어 주느냐며 짐짓 '도끼눈'을 뜬다. 아내는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고개를 들지 못하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다. 몇초만 지나면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껴안고 침대에 오를 것 같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연출했던 이원교씨(40)와 김기정씨(41) 부부. 그러나 이 부부가 자리에 누울 수 있는 때는 그로부터 무려 2시간 뒤다. 뇌성마비로 지체1급 장애가 있는 원교씨가 옷을 벗는데 20분, 화장실에 가서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데 40분이 걸린다. 부인 기정씨는 원교씨와 같은 뇌성마비 지체1급 장애지만 정도가 더 심해 옷을 벗는데 30분, 목욕을 하고 다시 옷을 입기까지는 1시간10분이 걸린다.

분위기가 식지 않겠느냐고? 천만에 말씀. 남들보다 시간이 더 걸리면 어떤가. 표현이 더디면 또 어떤가. 아니, 사랑은 시간이 걸리기에 더 깊고, 표현이 더디기에 더 질박한 것이다. '효율'은 사랑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고 밀고들어오지만, 이들 부부의 침실까지는 침범하지 못한다.


'자립'…"개념도입에서 운동확산 단계"

원교씨와 기정씨는 장애인운동 활동가다. 원교씨는 서울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으로, 기정씨는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제는 다 아는 얘기가 됐지만, 장애는 극복 또는 재활의 대상이 아니다. 중증장애인이 자기결정권을 갖고 타인의 봉사나 도움이 아니라 보조를 받아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장애인복지와 관련한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고 바뀌어야 한다는 게 장애인 자립생활의 개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장애인 자립생활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지는 5년 가량. 격리나 수용, 재활치료로 접근하는 기존의 장애인복지제도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장애인들은 자립생활의 개념이 도입되자 스스로 자립센터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장애인자립센터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은 중증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을 연결시키는 일이다. 중증장애인이 센터에 활동보조인을 신청하면 센터는 중증장애인의 장애 정도를 파악해 그에 맞는 활동보조인을 보낸다.

중증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의 관계에서 결정권은 장애인이 갖고 있다. 활동보조인은 중증장애인이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장애인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된다는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장애인이 활동보조인에게 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이 활동보조인에게 지불해야 될 돈은 물론 국가가 부담한다.

그런데 이는 정부의 장애인 복지정책과 관련한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자립생활센터의 활동 중심은 약간 과장해 말한다면 시위라고 할 수 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올해 보건복지부 시범사업으로 전국의 6개 자립생활센터가 예산을 지원받게 되었다. 현재 장애인 자립센터는 전국적으로 25곳이 있다.

'현장'…"투쟁 없이 권리 없다"

올해 1월 발족해 원교씨와 기정씨가 몸담고 있는 성북자립생활센터는 몇몇 장애인 활동가들이 사비를 내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1천만원을 마련해 사무실을 구했다. 상근자 3명, 비상근자 4명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예산부족으로 정작 해야 될 사업인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을 파견하는 일은 6건을 성사시켰다. 활동보조인에게 지급해야 될 돈은 시급 3천500원. 이 사업추진비와 자립생활센터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서울시나 장애인단체의 프로젝트사업을 하기도 한다. 상근자와 비상근자 모두 보수는 없다.

원교씨와 기정씨는 장애인 자립생활센터를 장애인운동의 현장으로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2001년 동대문에 있는 피노키오자립생활센터를 근거로 해서 이동권투쟁에 결합하면서 장애인운동을 시작한 원교씨와 기정씨는 장애인운동에서 투쟁의 현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장애인에게는 현장이 없다. 장애 정도가 심할수록 집도 없고 학교도 없고 사회도 없다. 장애인자립센터가 중증장애인의 현장이 되고, 장애인운동의 길로 나서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어야 한다는 게 이들 부부의 뜻이다.

원교씨와 기정씨는 성북장애인자립센터 일 외에도 할 일이 많다. 장애인의 이동권, 교육권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 차별금지법같은 좀더 근본적인 정책을 놓고 벌이는 싸움…. 투쟁의 현장에서 이들 부부는 선전선동을 하고, 정립회관 문제 같은 장애인 관련 현안 문제들이 터지면 대책을 세우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일과가 끝나면 동료들과 소줏잔을 앞에 놓고 장애인운동의 전망에 대해 논한다.

"여보, 당신은 빠져"…"당신이나 잘 하세요, 호호호"

오후6시.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정립회관에서는 집회를 하고 공대위 회의를 한다. 20일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회관측은 볼륨을 높이고 사이렌 소리를 울려댔다. “정립회관 때문에 성질 다 버렸다”며 화를 내는 원교씨.

원교씨 성질 버리게(?)한 게 어디 정립회관 뿐일까. 원교씨는 이동권투쟁을 하다 경찰서에 끌려간 적이 10번이 넘고, 시위를 하다 전동힐체어를 2대나 망가뜨렸다. 한대는 시위를 하다 박살이 났고, 한대는 고장이 나기 일보직전이라 시위 현장에서 분노의 화장장을 치러줬다. 올 4월20일 장애인 철폐의 날 집회에서는 마포대교에서 경찰과 부딪혀 원교씨의 전동힐체어가 4번이나 넘어지기도 했다.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물불을 안 가리는 원교씨지만, 아내 기정씨가 시위에 참여하는 것만은 슬쩍 막는다.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정씨는 ‘너나 잘 하세요’ 하는 표정이다. 기정씨는 목 디스크로 1년 활동을 쉬었지만 아직도 남성 장애인 활동가들은 김기정이라는 이름 세 글자만 나와도 두려움에 떤다고.

전동훨체어를 타는 이가 술을 마셨다면, 음주운전일까 아닐까? 기정씨는 장애인 자립생활을 강조하는 중증장애인 활동가가 술에 취해 활동보조인에게 지시를 내리지 못하고 의존하게 되는 상황이 일으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활동가들을 '구박'(?)하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맞는 말이다. 그러니 활동가들인 원교씨의 친구와 선후배들이 기정씨를 무서워할밖에.

'행진'…세상으로 가는 휠체어 두 대

어쨌거나 격렬하고 비타협적인 투쟁 덕분인지 원교씨와 기정씨는 정립회관에서 신당동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 아차산역에는 장애인과 노약자가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아차산역에서 5호선을 타고 청구역에서 내린다. 청구역에도 엘리베이터가 있다.

이동권투쟁을 할 때 비난하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요즘은 이 엘리베이터를 아주 잘 이용하고 계신단다. 장애인들이 노인들을 위해 좋은일 했다며 원교씨와 기정씨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뿌듯해 한다.

청구역에서 내려 원교씨와 기정씨가 살고 있는 삼성아파트(14평 공공임대아파트, 전세보증금 2800만원)까지 전동휠체어로 15분 걸린다. 원교씨의 전동휠체어의 속도는 시속12킬로미터, 기정씨의 것은 시속8킬로미터. 원교씨가 앞서가자 기정씨는 “늘 혼자 먼저 간다”며 입을 내민다. 그러나 표정에는 앞서가는 남편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그런 기정씨의 마음을 아는지 원교씨도 돌아보며 씩 웃는다.

불만이든 불평이든 이 모든 게 표현이다. 믿거나 말거나 결혼 7년차인데도 이들 부부는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단다. 이윽고 기정씨의 휠체어가 원교씨 곁을 따라잡았다. 두 부부는 나란히 서늘한 가을밤 하늘 아래를 힘차게 행진한다. 부웅~. 휠체어는 이들 부부의 다리이자 친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초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한마디 덧붙이지 않을 수 없는 게, 원교씨와 기정씨의 행진은 상당히 위험하다. 인도로 갈 수 없고 차도로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인도는 배수 등의 이유로 좌우 경사가 있어 전동휠체어가 자칫 기우뚱해 전복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횡포'…"절박하지 않다며 다수결로 밀어붙일 때"

원교씨와 기정씨는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니다. 장애운동 역시 진보운동이고, 어쩌면 가장 철저한 진보운동일 텐데. 그렇다면 원교씨와 기정씨도 가장 철저한 진보운동가인 셈인데. 게다가 민주노동당은 많은 점에서 아직 부족하지만 이동권 관련 법안을 입법발의해 국회에서 통과시킨 주역인데.

그러나 원교씨와 기정씨는 고개를 흔든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이라고 하지만 제도권 정당이다. 운동이 제도권으로 들어가게 되면 순수성을 잃어버린다. 정치라는 것은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합의를 찾는 것이기 때문에 타협이 불가피하다.” 그만큼 장애인의 현실은 척박하고 절실하다는 것일까.

그래도 모든 것이 한번에 이루어지지는 않는 법인데…. 장애인들 역시 생각이 하나는 아닐 텐데…. 원교씨와 기정씨는 "다수결을 안 좋아 한다"고 툭 던지듯이 얘기했다. 아닌 것을 머릿수로 밀어 부치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잊고 있었다. 그렇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다수결은 횡포다.

장애인운동 안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다고 한다. 제도권으로 들어가서 법제도 개선투쟁에 우선 집중하자는 의견과 제도권 밖에서 세상을 바꾸는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하자는 흐름이 그것이다.

2002년 노무현…2004년 민주노동당

원교씨와 기정씨는 후자의 의견이다. 원교씨와 기정씨는 “법제도 개선투쟁으로 사회복지예산이 늘어나고 제도가 좋아진다고 해서 장애인들이 사회적으로 역할을 하고 대우 받을 수 있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장애인이 차별받는 이유는 자본주의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 부부의 주장이다. 비장애인이 10초에 물건을 하나 만들어내는데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은 똑같은 물건을 만드는 데 10분에 100분이 걸린다. 어쩌면 못 만들 수도 있다.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장애인의 효용가치는 '제로'라는 것.

이리하여 원교씨와 기정씨에게 “장애인운동은 자본과의 투쟁”이다. “자본으로부터 소외받는 가난한 대중들과 함께 투쟁해나가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들 부부의 바램같지만 않다. 같은 진보운동이라면서도 장애인운동은 덜 중요한 문제인 게 현실이다. 혹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차별받는 일은 없을까.

원교씨와 기정씨는 “시간이 걸려야 해결될 문제이고 완전한 해결은 어렵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장애인운동 안에서도 한동안 경증장애인 활동가 중심으로 일이 진행됐으니 다른 운동과 관계에서 어찌 차별이 없었으랴.

원칙적이고 비타협적인 원교씨와 기정씨지만 대통령선거에서는 노무현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 “그때는 누군가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기 때문에, 급해서 그러한 선택을 했다”는 이 부부. 그러나 원교씨와 기정씨는 2004년 국회의원선거 때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했다.

 9월가계부
수입지출
생계비지원금 431,980
장애수당 90,000
장애수당 90,000 

총 611,980
아파트관리비 63,040 
주방용가스료 13,250 
인터넷통신료 30,870 
휴대폰 38,320 
휴대폰 48,440 
우체국암보험 21,630 
우체국암보험 17,440 
주택부금 70,000 
내 용돈 50,000 
그이 용돈 120,000 
기타비용 138,990 


총 611,980

'속도'…"자본주의의 계율"


아침8시. 원교씨와 기정씨도 남들처럼 출근 준비로 바쁘다. 다른 것은 속도가 느리다는 것인데, 세상에 속도라니. 무엇을 위한 속도인가. 원교씨와 기정씨는 천천히 씼고, 천천히 옷을 갈아입는다.

원교씨는 집안에서는 전동휠체어를 타지 않고 앉은 채로 움직인다. 기정씨는 집안에서도 전동힐체어를 탄다. 자립생활을 강조하는 원교씨지만 혼자서는 라면도 못 끓인다. 그렇다면 집안일은 기정씨에게로 떨어질 텐데 14평 아파트 안에서 전동힐체어를 타고 다니며 어떻게 밥을 하고 청소를 할까?

출근을 하고 나면 활동보조인이 와서 집안 살림을 해놓는다. 청소, 빨래뿐 아니라 밥까지 해놓는다. 물론 그것은 기정씨의 지시에 따라서다. 자립센터의 활동보조인과 지방자치단체나 장애인단체의 가사도우미가 다른 점은 활동보조인은 철저히 장애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

기정씨는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면서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고 한다. 원교씨와 기정씨 집에는 가스밸브가 낮게 달려 있지 않아 기정씨는 가스밸브를 열고 잠글 수가 없다. 가사도우미 분에게 가스밸브를 잠그지 말라고 부탁하면 “아유 말이 안 되지”하며 잠궈 놓고 가기가 일쑤다. 장애인이니까 몰라서 그러한 부탁을 하는 줄 지레 짐작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도 자립은 구별이 된다.

항상 신혼부부처럼 사는 이들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다. 결혼하면서 낳지 않기로 합의했다. 원교씨가 싫어하는 말이 “사람은 제 먹을 복은 갖고 태어난다”는 말.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원교씨와 기정씨도 아기를 보면 귀엽고 낳아서 키우고 싶다. 사랑하면 결혼하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과는 아이를 낳고 싶은 법이라고 했나. 두 사람은 둘이서 재미있게 살자고, 또 혼자가 아니라 둘만 해도 다행이라고 위로한다.

아홉살에 세상에 던져진 아내

결혼하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기정씨가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했다. 기정씨와 어머니의 관계는 여느 모녀 사이보다 애틋하다. 기정씨는 어린 시절 할머니댁에서 자랐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을 하셨기 때문에. 기정씨가 아홉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재혼을 하셨고, 기정씨는 경기도에 있는 어느 보호시설에 맡겨졌다. 이혼을 한 뒤 혼자 고생을 하던 어머니는 기정씨가 열아홉살 되던 해 기정씨를 찾았다. 어머니 형편이 어려워 함께 살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받지 못한 사랑을 어머니로부터 한껏 받았다.

기정씨 어머니는 적어도 딸의 휠체어를 밀어줄 수 있는 남자를 원했고, 기정씨가 공부를 하기를 바랬다. 기정씨는 보호시설에 있는 특수학교 고등학교과정을 중퇴를 한 게 학력의 전부. 기정씨가 있는 보호시설의 특수학교는 지능에는 장애가 없는 뇌성마비 장애인과 정신장애가 있는 장애인을 함께 공부하게 했다. 기정씨는 이런 학교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더이상 공부를 하지 않고 90년 보호시설을 나와 직업재활시설로 갔다. 여기에서 원교씨를 만났다.

스물다섯살에 세상에 나온 남편

원교씨는 기정씨와 달리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지냈다. 보통 아들인가. 그러나 부모님은 원교씨에게 극진하게 대해주시는 만큼 거꾸로 원교씨가 세상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말렸다. '저 몸으로 어디를 나가겠나. 나가면 상처밖에 더 받겠나…' 원교씨는 스물다섯살 때까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집에서 책 보고 그림 그리고 공부하고. 원교씨는 초등·중등과정은 검정고시로, 고등학교과정은 방송통신고등학교로 졸업했다.

큰누나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어 원교씨에게도 힐체어가 생겼다. 집 바깥으로 나온 원교씨는 휠체어를 신나게 몰고 다녔다. 장거리도 예사로 움직이고, 오르막도 힘들다 생각 않고 바퀴를 굴렸다. 더 보고 싶다. 더 가고 싶다. 더 듣고 싶다. 결국 원교씨의 어깨는 망가졌다.

부모님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자립생활을 원하던 원교씨는 직업재활시설로 갔고, 여기에서 미래의 부부는 만나게 됐다. 서로 처지가 비슷하고 얘기도 잘 되던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져 직업재활시설의 온갖 눈치를 받으며 연애를 했다. 직업재활시설 내에서는 연애금지였다. 정신장애인들이 보면 안 된다나 어쨌다나.

두 사람은 기정씨 어머니의 반대와 주변의 탄압(?)을 물리치고 결혼에 성공, 안산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생활은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했다. 2001년부터 서울 동대문 피노키오자립센터에서 일했고, 지금은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소장과 팀장이다. 중요직책을 맡고 있는데도 보수가 없어 여전히 기초생활수급자다.

'길동무'…"넘치도록 표현하고 살아야"

동정과 시혜가 아니라 투쟁으로 인간답게 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원교씨와 기정씨는 전동휠체어를 몰고 오늘도 집을 나선다. 아, 그전에 하나 사전의식이 있다. 나서기 전 두 사람은 항상 눈을 마주하고 입을 맞춘다.

험한 길을 가자면 길동무가 있어야 한다. 그 소중한 길동무에게는 넘치도록 표현하며 살아야 된다는 게 이 부부의 지론이다.

길을 나서자 싸워야 할 것 투성이다. 당장 출근길만 해도 그렇다. 청구역에서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있는 성신여대 앞까지 가자면 동대문운동장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야 된다. 그런데 동대문운동장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리프트는 길고 느리다. 그래서 안암역에서 내려 20분을 전동휠체어로 달려 출근한다. 아직도 이 나라는 이 모양이다.

겨울이 되면 손가락은 얼고 출근길은 고행의 연속이 된다. 불편하고 힘들기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그리고 원교씨와 기정씨의 운동도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씨앗처럼 싹을 틔우고 줄기를 올려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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