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는 결혼 후 8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아이를 낳겠다는 용감한 결단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아이를 언제 나을꺼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럼 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정부 저출산 정책 어떻게 나오나 보구요.’

만일 내가 당장 아이를 낳는다면 이제 막 노년의 자유를 찾기 시작한 친정 부모나 시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모진 여자가 되거나, 내 월급 이상의 돈을 주고 보모를 들이거나, 아니면 일을 그만두거나, 어쩌다가 있는 영아탁아 시설에 운 좋게 들어간다 해도 돈은 돈대로 들고 마음은 늘 불안한 상태에서 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선택이든 보살핌에 익숙하지 않은 남편과의 육아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일테고. 

아이 낳기 불안한 사회

저출산 문제가 연일 신문을 장식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그 이후로 발표되는 정부의 허접한 저출산 대책을 보면서 난 역적모의하듯이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 낳지 말라고 선동하고 다녔다. 왜냐면 유사 이래 최초의 출산파업이기 때문이다. 단체교섭과 마찬가지로 이 기회에 정부가 ‘돌봄’을 중심으로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파업을 함부로 접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생명을 낳겠다는 결단은 이 사회가 또 하나의 생명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사회인가에 대한 판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일과 가정 중 양자택일해야 하거나, 아이를 낳은 후의 여성의 삶은 육아기와 노년기 밖에 없는, 오랫동안 이어지는 슬픈 이야기는 여기서 논외로 하자. 유치원부터 시작된다는 지독한 입시전쟁,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현실, 정규직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언제 걸릴지 모르는 구조조정의 덫, 사각지대가 너무 많아 복지의 그물망에 걸리는 것이 신기할 정도인 복지 현실 등을 생각하면 어떻게 또 하나의 생명을 한국사회에 발 딛게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지금 한국의 저출산 대란은 경쟁과 효율성을 위해 사회적 돌봄을 무시하고 사람들의 삶을 더 많은 이윤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 한국의 천박한 자본주의가 몰고 온 당연한 결과이다.

따라서 저출산 문제의 해결은 출산수당을 준다거나 보육시설의 확충 등의 정책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근본적인 해결은 일할 의지가 있으면 누구나 일하면서 살 수 있는 사회, 일할 능력이 없을 땐 사회적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돌봄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평등하게 돌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와 교육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준비해야 할 것

구체적으로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만 비정규직을 쓰도록 허용하고, 비정규직에 대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철저히 적용하는 것, 여성에 대한 직·간접적인 차별을 정부가 철저히 단속하고 여성 고용을 늘려가는 일이 곧 저출산을 막을 수 있는 정책이다. 복지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가구별 특성을 고려하여 지원내용을 확대하는 것, 그리고 사회적 일자리를 통해 사회복지 서비스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저소득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이 또한 부모가 새 생명을 낳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정책이다.

어린 시절부터 입시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서로 돕고 보살피는 감수성을 갖게 하고, 남녀가 함께 가사일과 육아를 나누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도록 하는 교육을 만드는 것 또한 여성이 동반자를 믿고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는 정책이다. 무엇보다 저출산 문제는 모든 것을 시장의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이윤의 극대화만 추구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에 정부가 제동을 걸어야 가능한 일이다. 정부가 한편으로 노동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시장논리에 따라 복지의 공공성을 최소화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간다면 저출산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을 거라 확신한다.

만일, 정부가 천박한 자본주의에 제동을 거는 방식으로 저출산 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워간다면, 나 또한 출산 파업을 풀 용의가 있다. 또 모르겠다. 나 같은 사람이 너무 많이 늘어서 정부가 또다시 산하정책을 펴야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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