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사건으로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사퇴했고, 이미 한국노총 전 위원장은 실형까지 선고받은 상태이다. 양대노총의 도덕성과 지도부에 대한 신뢰는 최악의 상황이 아닐까? 안타까운 심정으로 나 자신과 내가 몸담고 있는 산별, 과거의 지역노총, 현재의 한국노총을 돌아보게 된다.

필자가 운동원으로 참여했던 2002년 2월 한국노총 19대위원장 선거 때 낙선했던 후보의 주된 구호는 ‘부패와 야합을 도려내고 정의로운 노총 건설’이었고, ‘노총개혁의 시작은 부정부패 척결’이라고 주장했다. 투명성 제고를 위해 전문가와 산별회계책임자로 구성되는 ‘부패방지 및 특별감사위원회’를 설치하고 비리사건 및 복지사업 특별감사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선거장에서는 비리를 폭로하는 유인물이 대의원들에게 배부되었고, 특별감사 결과보고가 행해지는 등 실로 긴장된 분위기였다.

돈으로 얼룩진 노조의 선거판

하지만 산별 차원에서 표단속이 잘돼서인지 상당수 대의원들의 모습 속에서는 걱정하는 모습도 별로 없었고, 선거는 압도적인 표차로 이남순 후보가 당선되었다. 3년 후 그는 재임 중에 있었던 비리사건으로 구속된 노총위원장이 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3년 전 그렇게 홍역을 치렀기 때문에 충분한 경각심을 가져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지역, 산별, 노총차원의 대표자 선거를 운동원으로서 여러번 겪어보았다. 차이는 있지만 전국선거치고 돈 선거가 아닌 깨끗하고 공명정대한 선거는 별로 경험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굳이 위안을 삼는다는 것이 그래도 상대후보보다는 돈을 적게 썼고, 꼼수를 덜 부렸다는 정도일지 모르지만 집행부의 프리미엄을 가장한 철저히 불공정한 선거, 실탄이 부족해 다소 과장되었을 법한 상대후보의 씀씀이에 초조했던 기억들, 정당한 선거 운동비를 훨씬 초과하는 비용 때문에 힘들어하는 후보들을 항상 보아왔다.

특히 선거 때마다 경선후보들 사이를 오가면서 표 장사를 하는 선거꾼들의 비열한 행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다들 혀를 내두르면서도 문제제기 없이 모든 게 묻혀버리고, 이같은 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은 미래의 숙제로 남게 될 뿐이다. 이렇게 해서 당선된 조직대표자는 자신을 뽑아준 조직과 구성원에 과연 대해 어떤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못할 것이다. 정당한 권위와 도덕성이 출발부터 흔들리는 셈이다.

비리보다 조직 민주성 위기가 더 문제

비리를 비롯해 조직 민주성의 위기에도 각급조직 지도부가 둔감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필자는 내부토론의 부재와 내부의 감시견제의 취약함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싶다. 각급조직에서 수많은 회의가 열리지만 조직대표자가 상근간부들과 함께 심도 있는 토론을 하면서 방향과 입장을 정리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고, 상대적으로 보고와 지시에 더 익숙해져 있다.

조직대표자는 다 아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상 조직차원의 입장과 집약된 의견이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스스로 토론을 조직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보다는 노총만 바라보고 무엇인가 내려오겠지 생각하는 경향마저 강하다. 상근자들도 이같은 경향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조직 내 회계감사의 경우에도 충분한 내부의 감시역할에는 못 미친다. 몇시간 정도에 상당한 장부와 증빙을 검토하고, 문제점을 파악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고, 여전히 간이영수증을 제한 없이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명성을 점검하기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6개월에 한번 받는 회계감사를 제외하면 내부의 감시견제 기능은 거의 없는 셈이고 내부 고발은 생각할 수도 없다. 이같은 상황에 비춰볼 때 민주노총이 내부고발 기간을 정해 노조비리를 접수받고 있는 시도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근본에는 노조 관료화가 자리잡고 있다

노동조합 조직이 활력과 개혁의지가 약화되는 요인 중에는 갈수록 강화되는 관료화의 폐단이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조직대표자를 구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당연한 주장이 자칫 특정인에게 충성해야 하는 것처럼 변질되는 경우마저 있다. 대표자에게 순종하는 것이 으뜸가는 미덕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한편에서 대표자는 자신의 권한을 철저히 권력으로 이해하는 경향도 있다. 구성원들의 창의성과 자발성은 약화되고 그 자리를 오랜 관행과 적당주의가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수개월전 노동단체 상근자들이 비정규직 조직화를 직접 실천하고 소속조직의 민주적인 사무처 운영을 위해 지역노동조합을 결성하여, 현재까지 5개 사업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노조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노총에서 모범사례로 제시한 경북지역노동조합(노조 상근직과 일반사업장의 수백명의 노동자로 구성)을 모델로 했고, 먼저 필자가 소속한 조직에서부터 단체교섭을 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수개월 동안 교섭은커녕 지역노조의 임원들 대부분이 면직, 정직, 해고, 탈퇴요구 등 만만치 않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이런 시련 끝에서야 며칠전 첫 교섭을 갖기로 겨우 합의할 수 있었다.

상근직원들이 참여한 지역노조에 대한 거부감은 특히 그동안의 일방적인 근로조건 결정을 비롯한 지시명령에 익숙해 있는 사무처 운영과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노조의 생각을 수용하지 못하는데 근거한 것이었다고 느낀다. 노조를 거부했던 연맹 임원이 ‘그렇게 노조가 좋으면 앞으로는 노동자로 대우해 주겠다’란 말을 들었을 때 그 허탈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관료화는 노동단체를 기본적으로 노동자 권익을 위한 투쟁조직으로서 강화하기보다 조직 자체를 관리하는 쪽에 지나치게 치중하게 되면서, 현안과 중장기적 과제에 대해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비정규직 조직화와 2007년 복수노조, 전임자 문제에 대해 사실 거의 대책이 없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벅찬 과제이기도 하지만 조만간 노동운동의 지형과 환경이 크게 달라지는 상황을 코앞에 두고도 산별노조, 산별통합, 비정규직 기본권보장과 조직화를 위해 적극적인 고민과 사업을 배치하지 못하는 조직에 해당된다면 심각한 자기성찰을 해야 하지 않을까?

노동운동 건강성 회복에는 위아래가 있을 수 없다

앞에서 선거문제를 언급했지만 선거를 치를 때마다 접하게 되는 멋진 선거홍보물에 담겨있는 정책공약을 빼놓을 수 없다. 지향점과 현안에 대한 대응, 풀어야 할 과제와 방법에 대해 후보마다 차별성을 갖고 실천을 전제한 엄숙한 약속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번의 선거를 위한 공약으로 힘없이 밀려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으레 말잔치를 벌여놓고 적당히 몇가지 정도 노력하겠다는 생각도 많은 것 같다. 심지어 선출임원 중 하나는 공약은 실무자가 만든 것이지 언제 내가 만들었냐고 하는 황당한 경험도 겪은 적이 있다.

많은 조직이 안 그랬으면 싶지만 한해의 사업계획과 예산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그럴싸하게 사업계획은 짜놓고 언제, 어떻게, 어떤 예산의 뒷받침을 가지고 실천하겠다는 구체성은 없다보니 사업보고는 있어도 당초 사업계획에 대비한 사업결과와 평가는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 실질 사업비의 지출은 적고 조직관리를 위한 지출이 불균형적으로 더많은 경우도 많지 않은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도덕성과 투명성, 민주성이 끊임없이 높아지고 점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아래가 있을 수 없고 상급조직과 단위사업장 간에도 차이가 있을 수 없겠지만 특히 노동운동을 전문으로 하는 상급단체에서는 과감한 조직혁신 방안을 마련하고 그 고통을 이겨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투쟁과 산별노조 건설은 단순히 조직률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이 협소한 기업별, 정규직 중심의 운동을 극복하고 노동자연대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성취해야 할 도전이라면, 비리사건으로 크게 상처를 입은 노동계가 현장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은 도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믿음직한 장치와 점검을 통해 투명하고 변화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외에 무슨 방법이 있을까? 이제는 노동운동 지도부가 경각심과 교훈을 새기고 자기혁신, 조직혁신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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