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사태는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정작 부끄러움은 보이지 않는다. 반성은 없고 공방만 있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 올해초 기아차 입사비리를 시작으로 일년 내내 이어진 노조간부의 비리에 대해 자성과 혁신을 촉구하는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힘닿는 데까지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였다. 교육 때마다 이런 얘기를 빠뜨리지 않고 하는 바람에 도덕강사냐는 얘기도 들었다.

그러나 무엇이 변했는지 자문해보면 자신있게 답할 게 없다. 이제는 식상함을 넘어 지겹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까 두렵다. 아니 어쩌면 관심조차도 없는지 모르겠다. 이런 문제로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이지 고통이다. 동어반복 이상이 아니다. 제발,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말말말…수시로 바뀌면 안돼

민주노총 지도부의 사퇴 여부를 놓고 민주노총이 전쟁터가 되었다. 한쪽에서는 즉각적인 사퇴를 주장하고 또다른 한쪽에서는 사퇴를 하되 비정규투쟁에서 책임을 다하고 사퇴하겠다고 주장했다. 언뜻 보기에는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두 주장 모두 모순덩어리이자 서로 다를 게 전혀 없는 권력게임이다. 왜 그런 것인지는 천천히 얘기하도록 하고, 이번 사태에 대한 조합원의 생각부터 소개한다.

양자 중 누구의 주장이 옳으냐고 물었다. “똑같은 놈들”이라고 한다. 비리를 저지른 집행부가 당장 사퇴를 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재차 물어도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가 있고 다 똑같은 놈들끼리 자리싸움 하는 것”이라 한다. 천편일률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겠지만 소위 활동가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조합원의 시각은 이것이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이것이 현실이니까.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비리혐의 구속을 둘러싸고 민주노총은 양분되어 있다.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면서 내 진정성을 믿어달라고 한다. 양자 모두 민주노총에 대한 충심에서 우러난 행동이라고 한다. 불순한 의도는 정말 없단다. 정말 그런가? 나는 양자의 주장이 좀처럼 동의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의문을 갖는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비리혐의 구속은 민주노조 운동의 마지막 보루인 도덕성마저 무너뜨린 사건인가 아니면 새삼스러운 일인가? 또 마지막 보루는 도덕성인가 아니면 또다른 것인가?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비리혐의는 충격적인 일인가 아니면 노조 내 만연해 있던 문제인가? 기획수사인가 아니면 협조주의세력의 부패한 행동인가? 민주노총 지도부가 즉각적인 사퇴를 하지 않고 하반기 투쟁 후 사퇴를 하게 되면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을 깨는 것인가 아니면 즉각적인 사퇴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인가?

이런 의문 속에서 문제를 접근하면 양자의 주장 모두 신뢰할 수 없다. 수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배경에는 어느 것이든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 때문에 자신이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조차 모른 채 이전과 전혀 다른 태도를 보여도 스스로는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 한마디로, 상식적인 판단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부패는 특정정파만의 문제인가

우선 사퇴만을 놓고 보자. 나도 당장 사퇴하는 게 옳다고 본다. 모든 것을 떠나 반성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갖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정규투쟁을 책임지겠다고 하지만 현실적 조건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없다. 그렇잖아도 지도력 없는 곳이 민주노총인데 지도부의 비리까지 겹친 상태에서 투쟁을 책임지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출발이 아무리 순수했을지라도 차기선거를 염두에 둔 행동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설사, 순수했다고 치더라도 이는 잘못된 것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안하무인'격의 아주 위험한 태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지도부가 교체 되었을 경우 투쟁이 어렵다는 논리 역시 궤변이다. 사람이 바뀜으로서 되지 않는다면 시스템을 개선할 일이지 장기집권이 대안은 아니듯이 말이다.

당장 사퇴를 주장하는 쪽의 태도도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장 사퇴하라는 주장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당장 사퇴해야 한다는 것에는 나도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일의 본질은 사퇴만이 전부가 아니기도 하거니와 진정으로 올바른 해법을 찾기 위해서라면 최우선적으로 자기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번 일이 강승규 수석과 이수호 집행부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말이다.

따라서 사방이 비슷한 상황이고 모두의 책임인데 마치 특정 정파조직만의 부패한 행위인 양 몰아가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 행동이다. 특히, 책임을 묻기 전에 지금까지 이중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해서도 반성과 해명이 먼저 필요하다. 물론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다수의 세력들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권력게임에 빠져 있으면 현실을 볼 수 없다

이들은 지금까지, 올해 있었던 모든 비리에 대해 “객관적 사실은 인정하지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노동운동 탄압을 위한 정권 차원의 기획수사이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를 지나치게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기조였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민주노조운동의 최대위기이자 협조주의 세력의 부패한 비리이고, 곳곳에 만연되어 있는 비리를 뿌리뽑기 위해서라도 반듯이 즉각 사퇴를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바뀌었는지 해명이 있어야 한다.

심지어 반성과 혁신을 주장할 적에 “인간의 역사에 비리가 없었던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느냐”며 이상한 사람 취급하던 그 '막무가내'식의 억지는 어디로 갔는가. 또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류기혁 열사의 죽음과, 현중노조가 해고자를 정리하고 박일수 열사의 죽음을 더럽힐 적에, 민주노총이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을 때에는 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비리사건보다 가치가 덜해서라면 모를까 아니라면 나로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일들이다.

권력게임에 빠져 있으면 현실을 볼 수가 없다. 동일한 행위도 극명하게 갈린다. 사회공헌기금만 하더라도 내가 하면 약이고 남이 하면 독이다. “노동자살해프로젝트”라며 온 동네 돌며 큰일났다고 떠들어댔던 것이 엊그제 일인데 내식구가 하니 고요한 밤이다. 로맨스와 불륜의 잣대를 양손에 들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기야 몇년전 노조사무국장의 비리사건으로 노조집행부가 사임을 하자 아쉬워했던 사람들도 꽤 있었다고 하니 이번 사퇴표명에 대해서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왜 없으랴. 기가 막힐 일이다.

조합원들 냉소라도 조직해야

많이 늦었지만 모든 비리를 척결하고 가치와 진정성 회복운동을 시작하자. 지금 현장은 냉소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다. 무관심이다. 그래서 나는 냉소라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내 교육을 받았던 조합원들의 눈이 내게로 쏠리는 것을 고마워한다.

이번에 구속된 민주노총의 혁신위원장이자 기아비리진상조사 위원장께서 기아차노조에 와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쪽 팔려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양심선언이라도 해라”,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는 기색조차도 보이지 않느냐”라고.

이것을 기억하는 조합원들이 다음에는 네가 아니냐는 듯한 눈길을 보내주기를 바란다. 차마 마주보지 못할 만큼 매서운 눈길이었으면 더 좋겠다. 이것도 희망이라면, 권력게임에 벗어나 있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동지들이 더많이 있음을 믿기에 이런 희망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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