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유노련(ICFTU)은 지난 18일 '노동권 침해 조사보고서'를 내고 2004년 한해에 세계적으로 145명이 노동조합 활동 때문에 살해당했다고 발표했다. 이 수치는 2003년보다 16명이 늘어난 것인데, ICFTU 보고서에 따르면 136개국에서 노동권 위반 사례가 조사되었으며, 폭력을 동반한 공격 행위는 700건, 살해 위협은 500건에 달했다. 물론 이 수치는 노조 활동을 이유로 감옥에 가고, 부당하게 해고되고, 말도 안 되는 차별을 받은 경우는 뺀, 살해를 비롯한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위해나 협박만 집계한 것이다.

최악의 노동탄압국, 콜롬비아

노조활동가에 대한 살해와 테러가 가장 많았던 지역은 중남미였고, 그 대부분은 콜롬비아에서 일어났다. 중남미에선 노조 활동과 관련하여 114명이 살해당했고, 456명이 위협을 당했으며, 120명이 고문을 받았다. 또한 200명 이상이 구속되고 1천명이 일방적인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콜롬비아의 경우 445명이 살해위협을 받았고, 99명이 살해당했다. 이 가운데 몇몇은 군부가 노조간부 암살에 직접 개입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군부가 살해한 노조간부 중에는 아메리카대륙인권위원회(IACHR)가 2002년부터 특별보호조치를 하고 있던 이들도 포함되어 국제사회의 충격을 더했다. 이 밖에도 과테말라에서 2명, 파라과이에서 2명, 브라질에서 1명, 하이티에서 1명이 살해당했고, 도미니카공화국에선 총파업을 조직한 노동자와 경찰이 충돌하여 8명이 죽는 사태가 빚어졌다. 여성노조간부는 물론 남성노조간부의 배우자나 자녀에 대한 강간 위협도 여러 나라에서 보고 되었다.

중남미 사례와 관련하여 관심을 끄는 것은 쿠바와 베네수엘라다. ICFTU의 보고서는 쿠바에 대해선 “독립적인 노조간부들이 감옥에 갇혀 있다”고 평가했고, 베네수엘라에 대해선 “차베스 대통령이 노총 가운데 하나인 CTV를 ‘먼지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공언했다”고 밝혔다. 쿠바의 경우 미국의 봉쇄정책과 체제위협으로 카스트로 정권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베네수엘라의 노총 가운데 하나인 CTV는 혁명정부를 자처하는 차베스 정권에 대한 수구기득권층의 전복 시도를 지지했고 지금도 그런 입장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ICFTU 보고서는 미국에 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았다. 특히 사용자가 ‘노조 때리기’를 전문으로 하는 컨설턴트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고, 사용자가 노동자로 하여금 반노조 집회에 참가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미국의 법제도를 지적하면서 미국에서 반노조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시아 지역 역시 중남미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미에선 콜롬비아가 문제였다면, 아시아에선 캄보디아가 문제였다. 2004년 1월에 캄보디아자유노조(FTUKC) 위원장이 수도인 프노펨 중심가에서 신문을 보다가 총탄 세발을 받아 절명했고, 5월에도 산하 노조위원장이 귀가하다 총에 맞아 죽었다. 경찰의 폭력은 여러 나라에서 심각했는데, 특히 필리핀에서는 경찰과 군대가 불도저와 장갑차를 동원해 설탕공장 노동자들의 집회를 해산하면서 노동자 14명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경제자유구역 때문에 ‘후진국’ 리스트에 오른 한국

중국의 상황과 관련해서 ICFTU는 “노동조합의 자유가 전혀 없다”고 평가했다. 특히 1억 명이 넘는 조합원을 가진 유일 노총인 중국총공회(ACFTU)는 조합원들을 보호하는데 무능력하고, 한편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민영화와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부패사건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구조조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된 실업기금이나 기타 노동자기금을 횡령하거나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사례가 빈발하면서 노동자들의 저항이 거세지고, 이에 따른 중국 정부의 탄압으로 구속·수감되는 노동자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9월에 체포된 콩여우핑과 닌시안화의 경우 노동조합 결사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유령’ 정당인 중국민주당을 지지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국가전복죄'로 기소되어 각각 15년형과 20년형을 선고받았다.

보고서는 수출자유지역 혹은 경제자유구역에서의 노동조합 권리 침해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원래 경제자유구역은 선진국에는 없고, 후진국에 많다. 아시아에서는 방글라데시, 피지, 인디아, 파키스탄, 베트남, 필리핀, 스리랑카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명단에 ‘잘사는 나라’인 한국도 포함되어 외자 유치를 이유로 노동권을 제약하는 나라로 거론된 것이 흥미롭다.

아시아 지역에서 지적된 또 다른 문제는 공공부문 노동자의 노동권 침해 문제였다. 태국과 캄보디아에서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단체교섭은 물론 노조결성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역에서 나름대로 노동권이 앞섰다는 일본에서도 단체교섭권이 제한받아 노동계가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해놓은 실정이다. 더 많은 노동권을 요구한 노조 활동을 이유로 정부의 공격을 당하고 있는 한국의 공무원노조에 대해서도 보고서는 당연히 언급하고 있다.

호주나 싱가포르, 대만 같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들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우리 입장에서 큰 관심을 갖고 주목할 사례로는 단체교섭을 회피하고 개별적인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 사용자들을 장려하고 있는 호주의 경우다. 호주 정부는 더 나아가 산별노조 간부의 사업장 출입까지 막을 목적으로 노동법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대만은 교원의 노조 결성을 아예 금지하고 있기도 하다.

영국, 독일, 벨기에도 노동권 침해국에 올라

이주노동자에 대한 공격도 유념할 대목이다. 보고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할 수 없으며, 그 경우 추방될 수 있다는 말레이시아와 호주 정부의 선언을 전하고 있다. 호주 서부에는 남아프리카 노동자들이 많이 일하고 있는데, 이들은 노조에 가입하려는 시도를 애당초 하지 말라는 사전 경고를 받으면서 호주로 입국하는 상황이다.

ICFTU의 보고서는 과거나 지금의 사회주의권 나라에 대해서는 “전면 탄압국”이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중국, 북한, 베트남, 라오스가 명단에 올랐다. 국가권력이 인정한 단일 노조체제인 이들 나라에서는 독립노조 활동은 전면 금지되며, 기존 노조 이외의 결사 시도는 국가의 탄압으로 이어진다. 보고서는 북한과 관련해서 “고의로 국가산업을 마비시킨 누구에게나 사형선고를 내리는 법조항 등 극도의 탄압에 대해 엄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중남미나 아시아의 나라들과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노동권 침해에서는 유럽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러시아, 벨러루스나 그루지아, 몰도바 같은 구소련 공화국의 사정은 제3세계 나라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 문제가 있는 나라들 가운데는 유럽연합(EU) 회원국들도 끼어 있어 눈길을 끈다. 영국은 동정파업인 ‘2차 파업’을 금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벨기에와 독일은 특정 부문의 파업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ILO 기준에 미달해 노동권 침해 사례로 거론됐다.

노동계가 '한국 노동백서' 내면 어떨까

ICFTU는 매년 노동권침해 보고서를 내놓고 있는데, (콜롬비아가 그 대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살해된 노조간부의 숫자가 작년에 비해 늘어나는 등 국제 노동계의 사정은 그리 나아지지 않는 듯 보인다. 무엇보다 선진국에서의 노동권 침해가 느는 추세인데, 벨기에와 독일의 파업권 제한은 그들 사회 나름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라 쳐도, 노사간의 단체협약체계를 무너뜨리고 개별근로계약체계로 이행하려는 호주의 동향은 한국의 노동계가 미리미리 연구하고 대비할 사안이 아닐까 싶다. 또한 이주노동자들을 기성 노동조합 체계에 어떻게 편입시킬 것인가도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ICFTU의 보고서에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당해 죽음으로 내몰리는 안타까운 한국 노동자들의 사정은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한국은 물론 각국 노동자들의 눈물나고 화나는 이야기들을 모두 조사한다면 누구 말대로 ‘바닷물을 먹물삼아 글을 써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각국의 노동권 침해 상황을 수집한 ICFTU의 보고서를 보면서 양대 노총이 힘을 모아 한국의 노동권침해 보고서를 책으로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노동부가 '노동백서'를 해마다 내긴 하나, 한국의 노동 상황을 이해하기엔 부족한 게 많다. 노동권을 포함한 한국의 노동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보고서 한권 정도 낼 역량은 한국 노동계가 충분히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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