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존 스위니가 AFL-CIO 역사상 최초의 경선을 통해 위원장에 선출되었을 때, 앤드류 스턴 서비스국제노조(SEIU) 위원장은 그의 측근으로서 미국 노동운동의 희망찬 새 시대가 열리게 됐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AFL-CIO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던 지난달의 시카고 총회에서 스위니 위원장이 개막연설을 하고 있을 즈음, 스턴 위원장은 총회장 어디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다른 장소에서 팀스터즈(IBT)의 위원장인 제임스 호파와 나란히 서서 두 조직의  AFL-CIO 탈퇴를 선언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조직화 전략과 자원 투입 측면에서 AFL-CIO 지도부와 의견 차이가 있음을 언급하면서 그들은 이제 “다른 길을 걸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4일 후 전미식품상업노조(UFCW) 역시 AFL-CIO 탈퇴를 선언했다. 이처럼 미국 노총 내 3개 최대 조직이 탈퇴함으로써 총연맹의 조합원은 1천3백만명에서 9백만명으로 줄게 되었고, 연간 예산규모도 1억2천만달러(한화 1,230억원)에서 9천만달러(한화 920억원)로 축소됐다.

2년간의 내부논쟁, 무엇을 남겼나?

SEIU와 팀스터즈 그리고 UFCW는 올해 6월15일에 결성된 ‘승리를 위한 변화(Change to Win)’라는 이름의 연합체 건설에 참여한 조직으로서 “아메리칸 드림의 부활과 21세기 노동운동을 재건한다”는 목표를 내건 바 있다. 이 동맹은 지난 2년간 진행된 AFL-CIO 내부의 논쟁 끝에 출범한 그룹으로, 두 조직 외에 UNITE-HERE(섬유봉제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던 UNITE와 호텔식당노조의 조합원을 포괄하고 있던 HERE의 통합조직)와 전미농업노조(UFW), 전미목수노조(UBC), 그리고 북미건설노조(LIUNA) 등이 가세하고 있다.

2003년 이후 ‘승리를 위한 변화’에 참여한 주요 조직들은 AFL-CIO의 조직구조, 정책, 프로그램 등 미국 노동운동의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을 놓고 열띤 논쟁을 벌여 왔는데, 세계화 시대의 노조원 감소 문제는 핵심적인 화두였다.

AFL-CIO는 이에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9년간 존 스위니 위원장 체제 하에서 이룩된 주요한 업적들을 ‘승리를 위한 변화’ 그룹이 제기했던 문제들에 대한 답변이자 총연맹의 강령을 논쟁의 결론으로서 제출했다.

여기에는 10가지의 대중적 정치사업과 온라인 실천 계획, 수백명의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학위과정 훈련, 그리고 은퇴자협회와 유니온섬머(학생운동 출신자들을 위한 조직가 양성 프로그램), 워킹아메리카(지역운동조직) 등 노동조합 제휴조직의 건설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러한 제휴조직들은 AFL-CIO의 정치활동과 입법투쟁, 정책 및 조직화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에서 결성된 것들이다.

그러나 이같은 AFL-CIO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조합원 수와 정치적 측면에서 미국 노동운동은 여전히 심각한 위기 국면에 놓여 있다. 최근 노동조합 조직률은 13% 수준으로 1950년대의 33%에 한참 뒤떨어져 있다. 철강, 자동차, 섬유, 광산 등 제조업 분야의 다수 산업들이 저임금 국가 또는 미국 내 무노조 지역으로의 공장 이전에 의해 축소 과정에 있다. 공공부문의 경우 조직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지만 민간부문의 경우 노조원 비율은 12명당 1명꼴에 불과하다.

정치활동의 경우 AFL-CIO가 기존 사업들을 수정하여 수천명의 조합원으로 하여금 수백만 노동자가구를 접촉하도록 하고 친노조 후보들(대부분 민주당 후보)에게 수백만달러를 쏟아붓는가 하면, 2000년과 2004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앨 고어와 존 케리를 위해 노동조합의 모든 병참을 열어줬지만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현재 백악관과 상원 및 하원은 모두 공화당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친노동 입법이나 정책을 밀어붙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위니가 1995년에 위원장에 당선되었을 때, 그는 조직화사업의 중요성을 대단히 강조했고 총연맹의 예산 가운데 30%를 조직화 사업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당시 56개에 달하던 산별연맹 가운데 실제로 조직화사업에 충분한 예산을 배정했던 조직은 10개 미만에 그쳤으며 결국 그 조직들 중 대부분이 ‘변화를 위한 승리’ 연합에 가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다른 노조들은 조합원들의 급격한 감소를 겪어야 했지만 SEIU와 같은 조직들은 조합원들을 대폭 확대해 왔다. 공세적인 조직화 투쟁 덕분에 SEIU의 조합원 수는 9년만에 90만명에서 180만명으로 늘어났다. 이같은 성공에 힘입어 앤디 스턴은 ‘승리를 위한 변화’를 최선두에서 이끌고 있다.

조직화 vs 정치투쟁, 잘못된 관전평

많은 사람들은 그동안의 논쟁을 단순화시켜 ‘조직화 전략 대 정치세력화’ 진영간의 대립으로 묘사하곤 한다. 즉 ‘승리를 위한 변화’ 그룹은 정치활동이나 입법투쟁보다 조직화 사업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SEIU와 팀스터즈는 실제 정치활동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실제로 SEIU는 2004년 선거 때 AFL-CIO의 다른 어떤 조직보다도 많은 자금과 인력을 투입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AFL-CIO의 내부투쟁을 권력투쟁으로 폄훼하기도 한다. 즉 앤디 스턴이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노동운동을 장악하려는 목적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열의 초기 원인은 조직화 전략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AFL-CIO 총회가 열릴 즈음에 가서는 ‘누가 조직화 투쟁을 지휘할 것인가’의 문제로 변해 있었다. ‘승리를 위한 변화’ 그룹은 당초 조직화 사업의 혁신을 요구했다. 그들의 제안 중에는 조직화 사업에 전력투구 하는 조직에 대한 보상적 교부금의 지급과 같은 인센티브를 부여할 것과 월마트(Wal-Mart) 등과 같은 초국적 기업에 대한 전조직적 차원의 조직화 캠페인, 그리고 산별조직간 통합, 산업적 차원의 조직화 사업 촉진, 노동자 출신 간부에 대한 우대조치, AFL-CIO 관료구조의 개혁 등이 포함돼 있었다.

총회가 열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AFL-CIO는 ‘승리를 위한 변화’ 그룹이 제안했던 내용의 상당부분을 책택할 것으로 믿어졌다. 다만 10%의 예산을 조직화사업에 투입하는 조직에 대해 해당 금액의 절반을 총연맹이 재교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총연맹 예산에 미치는 타격이 너무 크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스위니 위원장이 이 문제를 전격 수용하지 않은 채 내년 3월에 열릴 집행위원회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정리하자, 이 문제는 ‘승리를 위한 변화’ 그룹으로 하여금 AFL-CIO의 키를 누가 쥐고 있는지 선언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됐다.

‘승리를 위한 변화’ 조직들은 스위니에 대적할 만한 표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합원 비중으로는 35%에 달했지만 대의원 비율은 20%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 이제 노동대중을 위해 옳다고 믿는 바를 실천할 수 있는 다른 길을 가야 할 때다. 우리의 목표는 미국 노동운동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동대중이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동운동을 재구축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향한 첫발을 내딛는 것.” 스턴의 말이다.

분열 사태의 상처와 성과

AFL-CIO 내부의 불협화음이 총회 개최시점 이전에 이미 상당히 진행됐고 이에 따라 분열이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실제 탈퇴 선언은 아직도 상당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 AFL-CIO의 총회장에는 미국 노동운동에 대한 혼돈과 탄식,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배신감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특히 ‘승리를 위한 변화’ 그룹과 일정한 공감대를 유지하고 있던 조직의 지도자들에게서 두드러졌다.

이밖에 그들을 노동운동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키는 세력으로 규정한 그룹들은 강력한 분노와 반감을 드러냈다. 반면 ‘승리를 위한 변화’ 그룹의 기자회견장에는 흥분과 낙관주의가 넘쳐났다. 양측이 서로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통합을 위한 공통의 기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드라마의 와중에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미국 노동운동의 분열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1935년에도 AFL의 3개 가맹조직은 산별노조회의(CIO)를 결성하기 위해 총연맹을 탈퇴했던 적이 있다. 당시의 분열은 노동조합의 조직화 투쟁이 AFL이 천명한 것처럼 직업별로 이뤄져야 하는가, 아니면 CIO가 제창한 것처럼 산업별 노조주의에 기반해야 하는가를 놓고 벌어졌다.

그때의 분열이 남겼던 긍정적 효과의 하나는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조직하는 새로운 시대(New Era)를 열었다는 점이다. 최근의 분열 사태도 아마 유사한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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