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또 '껀수'를 '언론'에 '제공했다'라고 하면 틀린 말일까. '취업비리'로 시작된 2005년. '각목 사태', '권오만'에 이어 '강승규'까지. 노동계는 정말 죽을 맛이다. 잘못은 인정하고 도려내면 된다. 그것은 당사자의 몫이다. 그러나 언론은 하나의 잘못을 그 하나로 놓아두지 않는다. 뒷골목의 법칙은 항상 '틈을 주지 않고 몰아치는 것'이기에.

언론은 왜, 어떻게 노동을 박해하는가. 그렇다면 노동은 언론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매일노동뉴스>가 여덟차례에 걸쳐 기획을 준비했다. 이 연재는 일주일에 한차례씩 게재된다. <편집자 주>



기아차노조의 비리사건에 이은 현대차노조 일부 전현직 간부들의 채용비리가 불거지자마자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하이에나떼'처럼 달라붙었다. 항운노조, 택시노련 등 한국노총의 비리는 노동계 비리를 총체적인 것으로 몰아붙일 좋은 먹잇감이었다. 지난해 ‘귀족노조’ 비난에 이어 올해에는 노조의 ‘도덕성’이 집중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위기의 노동계 ‘내부 책임론’ 불거져(조선, 6.1) “노동계 도덕성 어디까지 추락하나”(국민, 5.25) “<벼랑끝에 선 노조-5·끝>권력화한 노조 ‘내부 민주화’가 살길”(문화, 5.20) “노조 환골탈태 말로만 될 일인가”(매경, 5.17) “[위기의 노동운동]‘존재의 이유’ 도덕성이 흔들린다”(경향, 5.17) “견제없는 노동권력…비리 백화점”(조선, 5.17) “‘범죄 노조’ 사과만으론 안 된다”(동아, 5.16) “<벼랑끝에 선 노조-1>노조 ‘도덕성’ 무기를 잃었다”(문화, 5.16) “대기업 노조 도덕성 상실, ‘갈만큼 갔다’”(뉴시스, 5.13) “노조비리, 끝은 어디인가”(연합, 5.10)

그리고 이번에는 강승규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언론들이 노조의 생명은 ‘도덕성’이라고 친절하게 가르치려 든다는 사실이다.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노조가…”, “도덕성이 생명인 노조가 이 지경까지…” 등등. 끝이 없다. 노조와 노동운동이 맛이 갔다는 폭로였다. 한 언론은 사설에서 내부 범죄의 뿌리를 뽑기 위해 ‘내전불사’라는 주장까지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러나 의문이다. 언제 언론들이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이 '도덕적'이라고 한번이라도 인정해준 적이 있단 말인가?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결사인 노동조합은 법적으로 존재를 보장받지만, 노조는 언제나 불순한 세력으로 낙인찍혔다.


‘왜’ 빠진 파업보도 … ‘모든 파업은 불법’

그간 언론의 노동관련 보도의 특징은 무엇일까. 파업 원인과 과정 설명이 없는 ‘왜’가 빠진 파업보도. 그리고 파업의 경제적 '역효과'를 강조하며 논리를 비약시켜 왔다. 또한 공권력 개입을 당연시하며, 문제보다는 사건중심의 보도경향, 전문성 결여,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 보도태도가 이어져 왔다. 이와 함께 갈등형태를 왜곡해 보도하거나, 사용자와 정부측의 입장에서 보도하거나, 사측과 정부에 불리한 내용은 침묵 또는 과소 취급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지난 봄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파업과 관련한 언론 보도는 위에 지적한 사항을 총체적으로 만족시켰다. 교섭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나 결렬된 과정은 생략된 채 파업의 폭력 현상만 집중적으로 보도됐다.

“건설플랜트 노조원, 1급 국가보안시설 점거농성”(SBS, 5.1) “울산 플랜트노조 정유탑 점거농성”(경향, 5.2) “노조의 ‘신무기’에 깔린 경찰”(연합, 5.17) “쓰러진 경찰”(연합, 5.17) “두들겨 맞는 경찰”(연합, 5.17) “민주노총, 누구 아들한테 쇠파이프 휘두르나”(조선, 5.18) “쇠파이프로 경찰잡는 게 민주냐”(데일리안, 5.18) “노조원들에게 뭇매 맞는 경찰”(연합, 5.20) “무기 든 시위대가 사회 약자입니까”(조선, 5.20) “서두른 중재… 노측 ‘환호’ 사측 ‘씁쓸’”(조선, 5.29)

신문만이 왜곡, 편파보도를 일삼았던 것은 아니다. KBS는 지난 1일, SK 울산공장에서 파업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로 상경해 SK 본사 진입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실었다. 그러나 노동절 집회 관련 보도 끝자락에 한 줄 걸치는 데 그쳤을 뿐이다. 내용은 더 기가 막혔다. “경찰과 충돌로 기대를 모았던 폴리스라인 제도의 의미가 퇴색했다”고 소개하는 수준이었다. 상경투쟁에 나선 원인은 생략한 채 폴리스라인 제도라는 엉뚱한 내용을 들이대며 사안의 본질을 철저하게 비껴나갔다.

방송보도의 한계로 늘 지적되는 ‘겉핥기’식 보도관행에서 SBS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당일 SBS는 '8시뉴스'에서 울산방송의 보도를 내보냈지만, 건설플랜트 조합원들이 정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원인은 전혀 짚어내지 못했다. 대신 “노조원들이 1급 국가보안 시설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며 단순한 현상만을 중계하는데 그쳤다. 그나마 MBC는 관련 소식을 아예 보도하지도 않았다.

이에 대해 언론노조 민실위는 “취재기자나 데스크가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겉핥기’식 보도관행을 고집하는 한 방송뉴스는 수용자들의 기본적인 정보전달 요구를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방송에 대한 공신력마저 상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문들은 한 술 더 떴다. 언론들은 지난 18일자에 일제히 ‘매 맞는 경찰’이라는 설명과 함께 1면에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이 경찰을 때리고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19일에는 ‘민주노총, 누구 아들한테 쇠파이프 휘두르나’라는 사설을 통해 노동자들을 ‘패륜집단’인 듯 매도했다.

법질서의 수호자인 경찰이 노동자들에게 뭇매를 맞는 17일 연합뉴스 사진은 다음날 거의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하지만 그뒤 경찰을 보호하려는 조합원들의 모습은 보도되지 않았다. 노조원들이 방패에 찍혀 다친 사실은 보도될 필요도 없었다. 언론들은 제 입맛에 맡게 사실 가운데 일부를 취사선택할 뿐이었다.

일부 경제지들은 ‘호화농성’ 운운하며 전복죽에 통닭, 족발을 들먹였다. 물론 사실무근이었다. 이틀 뒤 정정보도가 나갔지만 이미 보도가 나간 효과는 감쇄되지 않았다. 보도를 접한 노조원들은 “죽고 싶은 심정”이라며 가슴을 쳐야만 했다.

언론이 다룬 주요 파업 사례
1990 : 현대중공업 골리앗 파업, 전노협 출범 봉쇄
1991 : 현대차노조 파업, 한국중공업노조
1992 : 현대차노조, MBC노조 파업
1993 : 현총련 파업
1994 : 지하철·철도 파업
1995 : 병원노조 동시파업
1996 : MBC 강성구 사장 퇴진요구 파업, 노동법 개악 민주노총 총파업
1997 : 노동법 개악 민주노총 총파업
1998 : 현대차 정리해고 반대투쟁
1999 : 서울지하철노조 파업,
2000 : 사회보험노조, 롯데호텔, 금융노조 파업
2001 : 민주노총 총파업, 효성 울산공장 파업
2002 : 철도·발전노조 파업
2003 : 철도민영화저지, 전교조 네이스 거부, 화물연대, 현대·기아차, 오웬스코닝 파업 등
2004 : LG칼텍스노조, 공무원노조 파업
2005 : 울산건설플랜트노조 파업
 파업이 끝난 후, 6월 들어 언론 지면에 '노동'은 사라진다. 울산건설플랜트노조와의 협상을 방기하는 사측의 또 다른 ‘태업과 파업(?)은 신문에 단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언론보도는 매사가 이런 식이다. 극렬한 파업이 있을 때만 보도가 될 뿐 파업의 원인이나 수배간부들, 타결 등 사후 취재는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물론 조선, 동아 등의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파업에 관한 보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파업의 과정이나 원인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시위로 통행불편” 항의하던 장애인 폭행;울산건설플랜트 노조원들(조선, 3.30) “울산건설플랜트 노조 과격폭력시위 치달아”(조선, 4.8) “울산 건설플랜트노조원, 파업불참 직원 쇠파이프 폭행”(동아, 4.8) “비노조원 폭행·폭언 물의;울산 건설플랜트 노조”(조선, 4.15)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임승철 정책기획 담당은 “언론의 보도는 파업 무력화의 방편이었다”며 “협상 타결이후 근로조건 변화 등이 현장에서 지켜지는지 보도하는 언론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언론의 악의적 보도에 손해배상 등 적극적인 대처가 이뤄지지 않은 것과 관련 “한 사람이 여러가지 일을 처리하다보니 못한 것”이라며 “향후 여력이 닿는 대로 손배청구 등 대응을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KBS의 시사투나잇과 MBC의 암니옴니, SBS의 세븐데이즈 등 일부 시사프로그램에서는 협상타결 즈음 울산건설플랜트노조원들이 ‘왜’ 파업을 하게 되었는지 추가보도가 있었지만 ‘병 주고 약주는’ 꼴이었다.

파업보도 ‘고립, 분열, 섬멸’ 군사작전 방불

언론의 이와 같은 노동운동 진영과 노조, 파업에 대한 시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에도 언론들은 노조의 파업에 대해 ‘고립, 분열, 섬멸’이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단계별 보도 양태를 보여 왔다.

“경제에 먹구름이 끼어 있고 이렇게 살기가 힘들 때 파업이 웬 말이냐.” “숫자의 힘으로 밀어붙여서야.” “대우받고 가진 자들이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시민을 볼모로 파업을 하다니.” “정부 길들이기 파업은 안 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2003년 6월 총파업을 앞두고 정부와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쏟아졌다.

경제가 좋을 때는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는다는 이유로, 경제가 나쁠 때는 불경기를 이유로 파업하지 말라는 해묵은 논리의 되풀이인 셈이다. 심지어 가뭄과 장마,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 등 파업을 해선 안 되는 이유는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자본측의 파업반대 논리는 모든 파업에 ‘불법 씌우기’에서 ‘경제가 어렵다’, ‘이 가뭄에’ 등 다양한 국민 감정론이 등장한다.

자본의 입장에서 1년 365일, 노동자들의 파업을 용납할 수 있는 날이 있을까? 생존권을 지키려는 파업의 정당성과 원인은 간단히 생략된 채 노동자들의 파업은 시작과 함께 ‘불법’의 올가미가 씌어진다.

2001년에는 “농심이 타들어 가는데 파업이 웬 말이냐”며 언론이 ‘가뭄이데올로기’로 파업을 막으려고 했다. ‘국가신인도 추락’ ‘제2의 환란 우려’ 등 즐겨 우려먹던 소재들에 추가된 신소재였던 셈이다.

2001년 6월12일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함께 우리 언론들은 ‘이 가뭄에 웬 파업이냐’며 비난에 찬 목소리들을 쏟아냈다. 이정호 전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이를 “해방 이후 언론이 노동쟁의에 보인 ‘고립, 분열, 섬멸’의 전통적 노동보도를 답습했다”고 분석했다.

“이 가뭄에 연대파업 비상”(조선) “엎친 가뭄에 덮치는 파업”(중앙) “가뭄에 연대파업 겹쳐 경제 상반기 최대고비”(동아) “가뭄 이어 경제 또 시련 연대파업 비상”(한국) 등 파업 당일의 언론보도는 한결같았다. 다음날부터 신문들은 고액연봉자들의 파업, 가뭄의 고통도 모른 채 하는 파렴치한 불법 집단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시민 불편론’ ‘경제 악영향론’ 등 파업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약방의 감초들이 죄다 동원되었음은 물론이다.

당시 대한항공조종사노조의 파업이 타결되자 신문들은 ‘분열’ 작전에 돌입했다. “기 꺽인 민노총”(중앙) “민노총 연대파업 한풀 꺾여”(조선) “제 발목 잡은 세 과시 파업”(동아) “연대파업 사실상 종결”(문화) 등을 내보냈다.

이후 주말로 접어들며 타결사업장이 늘어나자 언론들은 3단계인 ‘섬멸’ 작전에 돌입했다. “한국 강성노조 투자 걸림돌”(조선) “노조 불법파업 처벌조차 받지 않아”(조선) “제프리 존스 미상의 회장 불법파업 강력대처”(동아) “불법파업에 강력 대응해야”(세계) “정부를 물로 보는 사람들”(동아) “붉은 띠를 풀어라”(중앙) “노동운동 새 방향 모색할 때”(국민)

2001년 6월 대다수 언론에게 파업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가 아니었다. '파업=범죄자=빨갱이'로 취급했다. 이정호 전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언론보도는 당시 단병호 위원장과 노조간부들에 대한 검거령과 민주노총 전면탄압을 안내하는 자본의 길잡이였다”며 “언론이라기보다는 ‘백색테러 전단지’라는 게 더 어울릴 듯 했다”고 비판했다.

서울지하철노조는 2003년 7월 궤도연대 파업 시 노조를 악의적으로 매도한 문화, 국민, 파이낸셜뉴스, 헤럴드경제 등 신문사 4곳에 대해 언론중재위에 중재를 신청했다. 그러나 언론중재위 제소는 중재 불성립이 내려졌거나 몇몇 정정결정은 한달 뒤 지면의 후미진 곳에 실리는 것으로 끝났다.


'노조 죽이기' vs '기업 살리기'

“잘못한 파업 사실상 자인한 노조”(문화, 7.24) “지하철 파업 무엇을 얻었나”(국민 7.25) “세상 속으로 ‘파업도미노’”(헤럴드경제, 7.23)

2003년 문화일보는 서울지하철과 도시철도공사의 누적적자는 8조원에 육박하고 2003년에만 증원, 임금인상에 필요한 1조2천억원을 보조금으로 충당했다고 했다. 하지만 2003년 서울지하철의 신규 인력채용은 펜싱선수 2명에 불과했다.

국민일보는 “한달 19일 근무에 연봉 4,500만원을 받는 근로자들이 근무일수를 14일로 줄여달라고 요구한다”며 노조를 비난했다. 하지만 한달 19일 출근(야간교대)을 근무로 바꿔치기 한 것이다. 19일 출근은 근무일수로는 26일이 되기 때문이다. 헤럴드경제도 기사에서 “지하철노조가 동시다발적으로 파업을 벌이고 있다. 역시 관건은 임금인상”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지하철 파업의 핵심쟁점은 ‘인력충원’ 문제였다.

악의적인 언론보도에 따른 상처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다. 사회적 약자인 ‘노조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권력과 자본, 언론의 횡포는 계속되고 있다. 기업들은 노조 자체를 불온시 하는 데다 임금 및 단체협상에 성실히 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섭 회피와 해태를 밥 먹듯이 해온 게 사실이다. 체불, 구조조정, 비정규직 전환, 재계약 금지, 불법파견 등 각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부당노동행위는 부지기수다. 자본의 폭력은 항상 있어 왔지만 검·경, 노동부 등 법을 집행해야 할 권력의 대응은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늦거나 없었다.

손석춘 한겨레 비상임논설위원은 노사정 가운데 가장 전투적인 것은 ‘사’로, 자본이 가장 전투적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손 위원은 “우리사회 구성원들은 물론 민주노총과 노동자들조차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며 “파업에 대해 ‘해외투자나 경제회복의 걸림돌’ 등의 기사를 보며 노동자들은 한국경제를 걱정하고 있는데, 이는 터무니없는 걱정”이라고 말했다. 알게 모르게 자본과 언론의 이데올로기 최면에 노동자들이 빠져들고 있음을 지적한 말이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규제를 풀고, 정부권한을 줄이라는 줄기찬 목소리만 나올 뿐이다. SK 분식회계 등 재벌의 불법행위는 여전하다. 수십조를 빼돌리고 해외로 도주한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귀국할 때 대다수 언론의 논조는 '사면론’이었다. 전경련 등 경제 5단체장이 파업이 지속되면 ‘고용을 줄이고 기업을 해외로 이전할 수 있다’는 협박 속에서 우리는 자본의 극렬한 불법파업을 수시로 목격하고 있다. 지난 5월 사측은 아예 권오만 전 한국노총 사무총장의 비리 건을 트집잡아 비정규법안 협상까지 거부하겠다고 나선 적도 있다. 이러한 ‘자본의 파업’에 언론들은 왜 입을 다물고 있는 걸까?

최근 발표된 한 설문조사에서 벤처사장들의 의식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인사전략연구소가 지난 5월16일부터 23일까지 전국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 214개사 대표와 해당기업 직장인 1,877명을 대상으로 ‘노조설립에 관한 의견’ 조사에 따르면 중소벤처 CEO의 79.5%는 노조 설립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설립 허용’ 응답은 겨우 14.1%에 그쳤고, ‘잘 모르겠다’는 의견도 6.4%로 조사됐다.

반면, 직장인의 68.1%는 노조설립 필요에 동의해 대조를 보였다. 조사대상 기업체 214곳 중에서 노조가 실제 설립되어 있는 회사는 11곳(5%)에 불과했다. 노조의 설립조차 반대하는 사장들의 황당한 의식. 이 충격적인 설문조사 내용에 언론은 왜 비판의 목소리를 던지지 않는 것일까?

방송사, ‘뉴스 따로 시사프로 따로’
내부 노동보도 준칙 ‘있으나 마나’…보도 무의식 중 사측 편으로 
영국의 글래스고우대학 미디어그룹은 6년간 영국 TV뉴스(76~82년)의 노동쟁의 보도 연구 끝에 “뉴스란 애당초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일정한 편향을 지닌 기자집단에 의해 생산된 메시지 체계”라고 밝혔다.


미디어그룹은 또 “우리는 방송실무자들이 자신들의 직업을 왜곡하고 편향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며 “공평성·객관성·균형 등의 신화로 구성되어 있는 전문직업적 이데올로기가 방송실무자들로 하여금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 즉 사회는 본질적으로 합의에 기초한다는 ‘자유주의적 사고’를 묵시적으로 허용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20년이 지난 현재 이러한 뉴스의 기조는 여전히 유효하다. 편파·왜곡보도가 그치질 않기 때문이다. 2003년 10월말 KBS는 노사합의로 ‘노동·사회 갈등 보도준칙’을 마련했다. 당시 화물연대와 전교조의 네이스 투쟁 보도에서 ‘대란’ ‘막대한 피해’ 등 불공정 보도를 시정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준칙에서는 파업은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이고, 피해액 부풀리기식 보도행태를 없애기 위해 피해액 집계 검증 등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논조의 일관성’이다. 단일 사안에 대해 부서별, 개인별 입장 차이를 조율해 일관된 논조를 유지한다는 것. 그러나 울산건설플랜트노조 파업에서 보듯 같은 방송사에서 조차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이 따로 논다.


이러한 엇갈린 보도가 나오는 이유는 출입처를 통해 매일매일 기사를 작성하는 뉴스 제작국과 호흡이 상대적으로 긴 프로듀서들 간의 취재시스템 차이도 존재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의식이다. 언론노조 KBS본부의 한 노조관계자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젊은 기자들이 노동문제에 보수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며 “자신이 언론노동자이면서 노동자로서 의식보다는 기자라는 특권의식이 앞서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사의 노동보도준칙 의미의 퇴색과 관련 또다른 노조 관계자는 “재난, 노동보도 등 준칙은 많지만 기자들이 체화하지 못하고 있거나 모르는 기자가 태반”이라며 “울산건설플랜트노조 파업에서처럼 ‘원인진단’ 뉴스는 단 한 건밖에 없었다. 그것은 기자들의 중계방송식 관행적 보도체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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