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누일 곳이 없어 한뎃잠을 자는 사람들. 이슬을 맞고 잔다고 해서 노숙자(露宿者)로 불린다. 88올림픽 때처럼 부산 에이펙 회의 준비 과정에서도 노숙인은 흉물스런 존재로 우리 사회의 보여선 안되는 치부처럼 감추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역사 주변의 노숙인들을 시설에 수용해 보려 하지만 노숙인들은 다시 거리로 나올 뿐이다. 청계천 물길이 흐르는 다리 아래로 노숙인이 또다시 자리를 잡듯이.

‘노숙이냐, 쉼터냐, 쪽방이냐.’ 겨울의 문턱에서 노숙인들은 삶의 위기에 놓인다.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일부 노숙인들이 주인 없이 방치된 집을 찾아 점거에 나섰다. 스쾃(점거, Squat)이다. 예술가들이 서울 목동 예술인회관을 점거하면서 공공건물을 놀리지 말고 예술가와 시민의 품으로 돌려달라고 외치듯 노숙인들도 안정적인 잠자리를 제공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쉼터나 자활의집 등 시설에 수용해 보려 하지만 노숙인들은 ‘돼지우리’라며 거부하고 있다.


방치된 공공주택, 월세내고 쓰겠다

지난 9월29일 노숙인들이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서울도시개발(SH)공사 소유의 다가구 주택에 둥지를 틀었다. 노숙인 생산공동체 ‘더불어 사는 집’ 소속 20여명의 노숙인들은 이미 지난해 7월부터 종로구 삼일아파트에서 1년 2개월여 거주해 왔다. 9월 삼일아파트 철거가 시작되자 새로운 보금자리인 정릉의 빈집을 찾아 점유한 것.

지난 5일 오후 서울시청 정문 앞. 허름한 옷차림의 여러 명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노숙인 빈집점거는 정당하다”, “주거는 소유가 아니라 생존의 권리이다”, “노숙인에게 잠자리를 보장하라”…. 노숙인 생산공동체 ‘더불어 사는 집’ 소속 노숙인들의 시위였다. 피켓을 든 노숙인들은 ‘무슨 이유로 시위를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또박또박 답을 했다.

“정부에서 매입하고도 1년째 방치된 집에서 우리가 살겠다는 겁니다. (빈집) 놀리지 말고, 그것도 월세 내고 살겠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도시개발공사와 서울시는 무조건 안된다고만 하잖아요.” 빈집, 그것도 정부와 서울시가 집 없는 서민들을 위해 주거를 제공해 주겠다고 매입한 다가구주택. 정부와 서울시의 서민주거안정 대책은 허점투성이였다.

서울시는 정부보다 앞서 다가구 매입 임대주택 사업을 펼쳤지만, 접는 것도 정부보다 앞섰다. 서울시는 2002년 6월과 2003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175채 1,251가구를 800억원을 들여 사들였다. 그러나 서울시가 임대한 가구는 584가구에 머물렀고 667가구는 빈집으로 방치되고 있었다. 서울시의회로부터 문제를 지적받자 서울시는 사업 시행 2년 만에 "오래된 주택이라 관리가 쉽지 않고, 유지보수가 힘들다"며 이 사업을 접었다. 되파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상습 침수, 노후 등으로 사람이 살기 힘든 집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구들장도 없지만 우리에게는 궁전과도 같아요.” 노숙인들은 몇 년째 방치되어 쓰지 않는 집을 놀리느니 그들이 이용하겠다는 입장. “보증금까지 낼 형편은 되지 않지만 월세를 내겠다는 데도 ‘당장 나가라’며 단전·단수는 물론 퇴거하라고 위압적으로 나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더불어 사는 집 박충석 대표의 말이다.


“집안에서는 술병 뒹굴게 하지 마라”

14일 다시 찾은 정릉의 점거주택은 노숙인들의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전기를 끌어다 다시 잇는가 하면, 파헤쳐진 구들장을 반듯이 다시 놓고 있었다. 벽 한 쪽에 붙어 있는 공동체 ‘자율요강’도 눈에 띤다. 모든 사안은 민주적 토론과 의결을 거친다. 또 식사, 청소 등은 순번제로 하고, 기증물품은 목록작성 후 공동체 재산으로 한다. 공동체 일원은 한가지 구체적 사업에 종사해야 한다. 이들은 서로의 약속을 정하고 룰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빠져선 안 되는 또 한가지. 주거지 내 술 금지도 있었다. 부랑아, 알콜중독자로 낙인찍힌 노숙인들이기에 조심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집안에서는 술병 뒹굴게 하지 마라.” 서로 수칙을 지키기 위해 토론 때도 물이나 커피를 마신다. 동네 주민들의 좋지 않은 시선까지 받는 다면 ‘빈집 점거’의 의미가 퇴색하기 때문이다.

다시 노숙자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부진 결심이며, 자활해 가겠다는 더불어 사는 집 공동체의 의지가 읽혀졌다. 구성원들은 하나 같이 삶의 의욕으로 넘쳐 있었다.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노숙인 공동체의 훈기는 서로의 밝은 얼굴 표정을 통해서도 나타났다. 가족과 친척들이 외면했던 마음 속 빈자리를 서로가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과거를 굳이 알려고도, 애써 묻지도 않았다. 그것은 불문율이었다.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기에. 쉼터에 입소하면 나이와 학력, 경력 등을 빼곡히 적는 것을 노숙인들이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실례를 무릅쓰고 몇몇 사람들의 과거를 물었다.


자활의지 꺾는 돼지우리, 쉼터보다 공동체가 낫다

이름 밝히기를 꺼려하는 40대 초반의 한 남자. 그는 부잣집 큰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버릇없이 자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도박, 술, 여자 등 세상에서 좋지 않다는 것은 다하고 살았다는 그는 노숙생활 5년째였다. “넌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야.” 방탕한 생활 때문에 이혼은 물론 일가친척으로부터도 외면당했다. 전세에서 월세로, 월세에서 사글세로, 사글세에서 고시원으로, 고시원에서 노숙으로. 그리고는 용산역에서 하루, 서울역에서 하루. 노숙 생활은 그렇게 찾아왔다.

젊어서 음지를 쫓아 생활했다는 그는 공동체를 통해 자활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한 사람이 여럿을 위해 힘쓰는 것. 인간존중이죠. 쉼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온기가 이곳에는 있어요. 밥 먹으라고 깨우는 마음 하나가 사람을 얼마나 감동시키는데요.”

젊어서부터 청계천 주변에서 노점상을 했던 차 아무개씨(59)씨. 개발의 뒤안길에 밀려난 도시빈민들이 그렇든 차씨도 고시원과 노숙을 전전해야 했다. 설상가상 암 투병은 절망을 더욱 가속화했다. “너무 힘들어서 한강에 뛰어내릴 생각도 숱하게 했죠.” 기적적으로 수술에 성공해 살아난 차씨는 공동체를 만나 희망을 발견했다. “세끼 밥만 먹고 살려면 개, 돼지나 똑같지요. 지금은 살아간다는 희망과 목적, 보람이 있어요.”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디를 가더라도 손 꼭 잡고 붙어 다니는 50대 초반의 장애인 부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날도 부부는 병원에 같이 다녀오는 길이었다. 점거 당일 퇴거반원들과의 작은(?) 충돌에 놀라 경기를 일으킨 아내. “병원에서 약 먹으면 괜찮데요.” 손을 맞잡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손을 통해 전달되는 사랑의 온기.

40대 초반, 늦은 나이에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들은 첫눈에 반했다. 집에서조차 불구자 취급받고 귀찮은 존재가 돼버리기 일쑤인 같은 처지였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자연스러웠다. 서로의 상채기를 핥아 줄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들은 주변에서 잉꼬부부로 소문이 나있었다.

“두 분은 서로의 어디가 그렇게 좋으세요.”

“모든 게 좋죠.”

서로를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은 굳이 더 설명이 필요 없었다.

노숙인의 주거보장, 주거권

노숙인에 대한 거리지원과 쉼터지원체계의 한계가 크다는 지적은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응급구호 성격의 쉼터는 쉼터퇴소 이후 일시주거에서 다시 노숙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쉼터에서 자활한 노숙인은 백 명에 한 두 명 나올까 말까 해요. 돼지우리와도 같은 쉼터는 노숙인의 자율성도 인정하지 않고 장기적인 일거리도 주어지지 않아요.” 더불어 사는 집 박충석 대표의 설명이다. 노숙인들에게 물어 본 쉼터는 더욱 원색적인 비난 일색이었다. “그곳은 개, 돼지 기르는 수용소에 불과해요.” “쉼터로 가라고 하지만 거기가면 오히려 병들어요.”

2000년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한 20개의 자활의 집 시범사업도 전세권 설정, 임대 기간, 사후관리 등 운영상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 대두되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전국에 지원된 자활의 집의 수는 90여 개에 달했으나 지방정부와의 마찰, 열악한 재정난과 운영의 문제 등으로 현재는 전국적으로 50여 개의 자활의집이 운영되고 있다.

자활의 집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자 단신남성을 위한 월세지원(다시서기 지원센터 운영), 유료쉼터(노실사 운영) 등의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월세지원 사업의 경우 지원 금액 및 기간 등의 문제로 활성화 되지 못했다. 유료쉼터의 경우도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부동산 투기 열풍에서 보듯 우리 사회의 주택은 주거 목적이 아닌 재산증식 수단으로 왜곡되어 있다. 따라서 노숙인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자는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양극화의 심화 속에 노숙인의 문제는 사회구조적 문제입니다. 방치되고 놀리고 있는 시설을 점유해서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는 의미도 있죠.” 노숙인들과 투쟁을 같이 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중구지역위원회 김민걸 부위원장은 노숙인에 대한 신뢰도 나타냈다. “노숙인들이 무료급식을 하면서 스스로 술도 줄이고, 깨끗이 씻는 등 변화가 있어요. 절제하려는 모습을 보며 새삼 놀라죠.”

자활에서 주거로의 노숙인 정책은 이미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숙인들과 관련단체는 주거가 안정이 되어야 진정한 자활이 이뤄진다고 강조한다. “주거만 안정이 되면 중고물품, 재활용품 등을 판매하고,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급식도 확대할 수 있지요.” 더불어 사는 집 노숙인들은 법인화 준비와 함께 공동체 발전모델을 착착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무단점거, 주거침입 등의 법 규정만 앵무새처럼 들먹이는 행정당국에 노숙인들은 분명히 대답하고 있다. 주택은 거주의 공간이지, 투기의 공간이 아니라고. 그래서 방치된 공공주택의 점거는 정당하다고.

노숙인들에게 안정적인 주거권 보장을
                                                                                                                                       조성준 전실노협 간사


2000년 이후 재연되고 있는 부동산 투기현상에서 보듯이 아직 한국사회에서 ‘집’은 주거로서의 기능 이외에 재산으로서의 기능을 빼 놓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숙인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해야 한다는 말은 늘 ‘소리 없는 메아리’였다. 일부에서는 주거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더욱 낯설게 느껴지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주거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고 개인이 해결해야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이다.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1~2년 정도 열심히 자활을 꿈꾸다 월세방이라도 구해 나가셨던 분이 몇 개월 뒤, 거리에서 혹은 쉼터 재입소를 위한 문의를 하는 경험은 노숙인복지의 실무자들에게는 그리 낯선 경험이 아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동안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던지게 한다.


이것은 현재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노숙인지원체계가 여전히 응급구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 정부의 노숙인 정책이 응급구호에 치중되다보니 ‘노숙→쉼터입소→쉼터퇴소 이후 일시주거→재노숙’으로 이어지는 노숙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몸과 마음은 더욱 황폐화되고, 노숙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깊은 늪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98년 노숙인 지원사업이 시작된 초기부터 쉼터이후 안정적인 주거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2000년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한 20개의 자활의집 시범사업을 통해 나름의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자활의집 사업은 전세권설정, 생활기간, 사후관리 등 여러 가지 개선해야할 점이 대두되었다. 그런데도 자활의집은 확대의 필요성이 더욱 컸다.


그것은 쉼터 이후에 대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는 상태에서 자활의집은 확대되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전국에 지원된 자활의집의 수는 90여개에 달한다. 이중 지방정부와의 마찰로 사업을 시작도 하지 못한 채 포기한 경우, 기관 자체 사정으로 반납하는 등 현재는 전국적으로 50여개의 자활의집이 운영되고 있다.


자활의집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자 단신남성을 위한 월세지원, 유료쉼터 등의 사업을 민간에서 주도했다. 월세지원사업의 경우 지원 금액 및 기간 등의 문제로 활성화 되지는 못했다. 유료쉼터의 경우 나름의 성과를 보였으며 새로운 모델로서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미흡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교부는 지난 8월 3일 작년부터 시범사업으로 진행해왔던 ‘기존주택(다가구주택) 매입임대사업’의 확대를 위한 업무처리지침을 개정하며 ‘노숙인·쪽방거주자 등 단신계층을 포함하는 매입임대사업(이하 300호 매입임대사업이라 칭함)’을 시범사업으로 확정했다.


아직 임대주택으로 활용할 주택매입이 미흡하고, 운영주체 선정 등 주요한 현안이 매듭지어지진 않고 있으나 이번 시범사업은 노숙인의 주거보장이라는, 노숙인의 주거권에 대한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다. 세부적으로 따져 보면 아직 미흡한 면이 많이 있어 보완해야 할 것이 많다.


아직 시행되지는 않았으나 일단 300호 매입임대사업이 가지는 한계는 기존 자활의집이 가졌던 한계 중 전세권 설정을 제외한 나머지 문제를 그대로 안고 갈 가능성이 높다. 노숙인 관련기관에 위탁한다고는 하고 있으나 위탁기관에 대한 인력지원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부분은 사업진행시 사후관리 등의 문제점이 야기될 것이다.


단신 남성 노숙인을 대상으로 했던 그동안의 자활의집 사례를 보면 가장 커다란 문제점이 사례관리였다. 또한 기본적인 생활(식사, 청소, 세탁 등)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서 위탁기관의 선정과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다. 자칫하면 다른 형태의 쉼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300호 매입임대 위탁기관이 단순한 관리기관으로 전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입주자에게 복지서비스 뿐만 아니라 생활, 문화 등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전제로 해야 한다. 또한 300호 매입임대사업의 경우 철저하게 지역사회와의 융화를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위탁기관의 명확한 목표와 입주자에 대한 다양한 지원이 전제되어야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과는 노숙인의 주거권을 확보하는데 있어 주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그동안 노숙인의 주거지원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아직까지는 성과보다는 아쉬움과 한계를 더욱 절감하고 있다. 노숙인은 살 곳을 잃은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안정적인 주거공간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들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주장은 너무나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철모르는 아이의 치기어린 말로 치부되곤 했다. 노숙인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이 당연히 인정받는 사회가 되기 위해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아직도 너무나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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