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 비리혐의와 관련해 민주노총 지도부가 하반기 투쟁을 끝낸 뒤 총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뒤, 사무총국 간부들이 반발하면서 집단사직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또 이후 지도부 거취와 관련해 민주노총 내부갈등이 심화될 것을 보인다. 지도부 총사퇴 주장를 주장하며 가장 먼서 사직서를 제출했던 한선주 전 민주노총 조직국장이 글을 보내 왔다.<편집자 주>



10월7일 민주노총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 배임수재 혐의로 긴급체포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진실을 둘러싼 해석이 분분했다. 그런데 하루이틀이 지나면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되어서도, 심지어 최근까지 금품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민주노총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부끄러움에 거리로 투쟁을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하는 일이 벌어졌다.

민주노조는 정부, 자본으로부터 자주성과 조직운영의 민주성, 노동계급과 사회적 약자 입장에 선 투쟁성을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다. 또한 스스로 노동조합이길 포기하는 대신, 상층간부에게 권력과 금품혜택이 주어지던 어용의 시대를 과감히 거부하고 피눈물 나는 투쟁으로 도덕성을 민주노조의 자랑으로 안고 왔다. 그러한 역사가 있었기에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 도덕성은 민주노조의 자랑스런 상징으로 각인될 수 있었다.

그 가운데서 다른 것은 상황과 정세에 따라 과도하다 호도되며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민주노조가 갖는 건강한 도덕성 앞에서는 정부, 자본도 감히 공격을 못하는 가장 노동자다운 정신으로 존중되어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민주노조의 보루 같았던 도덕성에 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노사협조주의에 뿌리박은 비리사건이 몇건이나 된다는 등 흉흉한 소문마저 떠돌고 있다. 이에 민주노총은 점점 약화되는 조직의 자주성과 민주성, 투쟁성을 복원하고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 조직혁신을 고민하고 있었다. 바로 그 조직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기아자동차 취업비리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이 강승규 수석이었다. 강승규 수석은 그렇게 조직 안팎에서 중요한 문제들을 진두지휘해 온 지도부 가운데 핵심이었다.

이렇듯 조직이 혁신을 고민하고 있을 때 터져 버린 민주노총 최고 지도부 한 사람의 비리사건은 민주노조정신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택시노동자들이 목숨을 바쳐 사납금철폐와 완전월급제 쟁취를 위해 투쟁하고 있을 때, 수년 동안 조합원과 투쟁을 팔아 뇌물을 받아 먹은 검증되지 않은 지도부가 민주노총 심장부에 있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즉각 사퇴해야 하는 이유

어느 노조 후생복지부장이 공금을 횡령했었다. 노조 지도부는 깊이 머리 숙이며 즉각 총사퇴했다. 또 취업비리 문제가 터지자 역시 지도부가 총사퇴를 했고, 상급단체 임원선거에 출마했던 후보들도 총사퇴 했다. 민주노총도 지도력과 투쟁의 문제로 두번씩이나 지도부가 사퇴했던 아픈 역사를 안고 있다. 이렇듯 조직을 위기에 빠뜨리는 심각한 오류를 범했을 경우 지도부가 즉각 사퇴하여 속죄하는 기풍과 원칙이 이어져왔다.

특히, 다른 문제는 변명의 여지가 있을지 몰라도 도덕성에 대한 문제는 가장 단호했다. 즉, 아무리 조직이 곪아터지고 있다 할지라도 도덕성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뒷거래로 얼룩진 보수정치판이나 자본가 사회와 달리 민주노조 스스로 투명하고 자주적이기 위해 쌓아 온 투쟁의 산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사건이 터지자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9일 업무중지를 선언했다. 그리고 11일~12일 비공개로 열린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에서는 즉각 사퇴를 요구하는 중집위원들의 목소리도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집위원들은 다음날 아침 '위원장 업무복귀와 조기선거'라는 상집논의 결과를 통보(?) 받는 어이없는 사태를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지도부는 총총히 기자회견장으로 사라져 하반기 투쟁을 책임지기 위해 즉각사퇴를 보류하고 조기선거를 치루겠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다시 한번 씻을 수 없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명백한 도덕성의 문제로 조직에 치명타를 입히고 민주노조 원칙과 기풍을 무너뜨린 사건에 대해 새로운 상황논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직 내 노사협조주의가 우려되고, 여러모로 조직혁신을 요구받는 상황에서 지금 민주노총에 필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지도부의 모습이다. 즉, 지도부 스스로 결단하고 조용히 물러나 한 사람의 노동자로 역사 속에 묵묵히 동참하는 겸허한 모습이 필요한 것이다.

왜 감히 역사와 전통 속에 만들어진 원칙과 기풍을 하루아침에 거스르려 하는가? 연연해 하는 그 모습이 오히려 조직에 누가 되고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어떠한 상황논리로도 역사 속에 만들어진 원칙과 기풍을 보류할 수는 없다. 상황논리에 꿰어 맞춘 논리는 더이상 논리가 아니라 궤변밖에 될 수 없다.

현 사태를 정파갈등으로 몰아가는 시각에 대한 우려

정파구도가 생산적인 운동관계로 작용하기 보다 갈등이 된 지 오래다. 사업과 사람을 판단하는데 그 사업의 정당성과 그 사람의 활동내용에 기초하기 보다는 정파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병폐가 노동운동 판에 만연하다.

또한 정파구도는 엄중한 현실인식과 현장문제를 발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학적 빈곤과 노동조합 권력을 둘러싼 갈등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파구도는 지금 우리 운동의 발목을 잡는 독버섯 같은 요소가 되고 있다. 정파갈등에 대해 조합원들은 냉소적이고, 보수언론은 선정적으로 부각시키며 이용하기도 한다.

이번 강승규 수석의 금품수수에 맞서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정파적 이해와 조직분열로 바라보는 시각이 더러 있다. 나는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한 13인 민주노총 사무총국 상근활동가 중 한 사람으로 이러한 시각에 대해서는 추호의 양보없이 비타협적으로 싸울 자신이 있다.

이른바 분파주의란 무엇인가? 조직전체의 이해보다는 자신이 속한 집단(정파)의 이해를 우선하는 행태를 말한다. 그런데 강승규 수석 뇌물수수 사건은 정파간 이해와 입장을 떠나 운동의 기풍과 건강성을 회복해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도덕성은 정파간의 이해라는 잣대로 바라볼 문제가 결코 아니다.

역사가 가르쳐 준 교훈을 갖고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으로 바라보는 정파적 발상을 버려야 한다. 따라서 나는 정파간의 입장과 이해를 떠나 이 문제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 민주노조정신을 올곧게 복원하기 위해 하나의 목소리를 낼 때 실천적으로 정파 간의 갈등과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반기 투쟁을 책임지기 위해 현 지도부가 할 마지막 한가지

현 지도부는 대안이 없으므로 일단 하반기투쟁을 마치고 사퇴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부정부패로 얼룩진 지도부가 어떻게 하반기 투쟁을 책임진다고 대내외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조합원 스스로 민주노조정신 복원의 사명감을 안고 하반기 투쟁의 주체로 설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노동조합 지도부와 간부들은 조직의 현실을 용기있게 이야기함으로 조합원 안에 무성한 불신과 냉소를 씻어내야 한다. 그리고 간부, 조합원들을 투쟁과 현장토론의 주체로 세워 조직의 현실을 스스로 진단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 투쟁을 결의할 수 있도록 조직해야 한다. 이제 민주노총 지도부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앞서 밝혔듯이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금품수수 사건 자체(설령 부채였다 할지라도)가 조직이 위기임을 입증하는 대표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도부의 즉각적인 총사퇴는 조합원들이 위기를 위기로 온전히 받아들이게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오히려 즉각 사퇴를 하지 않고 주춤대는 모습은 불감증만 가중시킬 뿐이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며 민주노총 현 지도부가 조직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단 한가지 일은 이러한 불감증에 경종을 울리고 조합원 스스로 하반기 투쟁의 주역으로 나서게 하는 일이다.

때를 알고 떠나는 자의 모습은 아프지만 긴 여운을 남기기 마련이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즉각 사퇴하는 지도부의 모습은 뼈아프지만 민주노조의 건강한 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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