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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관료주의 늪에 빠지다
  • 전원배 울산지역 노동운동가
  • 승인 2005.10.1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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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부패한 것들이 몰락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온갖 악취와 독기를 내뿜으며 할딱거리는 목숨을 연명하려는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아직 새로운 싹들이 여리디 여린 몸짓으로 힘겹게 성장하는 시기에 글을 쓴다는 것도 힘겨운 일이다. 탐욕과 광기, 전쟁으로 지구를 세계화시키고 있는 자본과 권력에 맞서 하나뿐인 귀중한 생명을 초개와 같이 내던지는 이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기껏해야 ‘너나 잘하세요’, ‘너는 문제없니?’라는 답변밖에 더 듣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쓴다. 이 시대에 침묵은 더 큰 비겁함에 다름 아니기에.

이건 빙산의 일각이다

▲ 전원배 울산지역 노동운동가.
· 울산노동자신문 운영위원 역임
· 메이데이포럼 운영위원 역임
지난 10월8일 강승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구속되었다. 기아차, 현대차 등 대공장 일부 노조간부들의 부패와 타락이 이제는 일천만 노동자계급의 대변자격인 민주노총 상층부 핵심간부로까지 확대되면서 그 심각성을 더 해가고 있다.

9월12일,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가 류기혁 열사의 자결 항의 투쟁과 비정규직 문제를 외한 채 2005년 임단투를 종결지었고, 10월7일, 기아차 노조는 ‘자살총회’라는 형식으로 기만적 임단투 종결에 맞서 싸우는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을 잠재웠다.

이번 현대차, 기아차 노조의 비정규직 운동에 대한 철저한 외면은 대공장노조의 집행부가 관료주의의 늪에 깊숙이 빠져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부패와 타락, 관료주의는 민주성, 투쟁성, 자주성, 연대성에 기초해서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항거투쟁에서 촉발되어 전노협, 민주노총으로 진군해온 계급적 민주노조운동의 비극적 결말이다.

88년부터 울산지역 현대계열사에서 노동운동을 해온 필자가 볼 때 지금 드러난 노조간부들의 비리와 반노동자적인 관료주의적 작태는 불행하게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고급술집에서 관리자들과의 거나한 술자리와, 근태조작, 직권조인 등 92년부터 독버섯처럼 자라난 일부 노조활동가들의 부패와 타락, 반노동자적인 행태는 몇 권의 책으로 써도 모자랄 정도이다.

직권조인하고도 버젓이 활동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기 작업대에 비정규직을 근무하게 하고, 자신은 일을 하지 않으면서 2년간이나 월급을 꼬박꼬박 받아간 자도 있다. 그런 자들이 입만 열면 민주가 어떻고, 신자유주의 철폐가 어떻고, 비정규직 철폐가 어떻고 하면서 자랑스럽게 외치고 다닌다.

부패한 관료주의 운동의 뿌리

노동운동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던 시기인 80년대말, 90년대초에는 직권조인 등 반노동자적 행위를 하면 즉각 응징을 받았다. 그래서 직권조인하면 잠적하는 것이 기본이었고, 불신임총회가 수시로 이루어졌다. 93년 현대정공의 위원장 김동섭의 직권조인, 잠적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제 노동운동은 자기 정화능력을 상실하였다. 검경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수준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면 정규직 노동운동이 부패·타락한 관료주의의 늪에 빠진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조직주체적인 면에 한정해서 본다면 평조합원들이 대상화, 수동화된 것에 그 이유가 있다.

민주노총이 건설되던 94~95년경부터 조합원들은 급속히 수동화 되었고 노조활동가의 관료주의화, 부패, 타락은 썩은 물에 파리 꼬이듯이 창궐하게 된다.

평조합원의 대상화, 수동화는 노동운동 내부적으로 볼 때 세 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거듭되는 단위노조, 연맹, 총연맹 지도부의 배신행위이다.

IMF 직후인 1998년 2월6일, 민조노총 배석범 직무대행 등의 정리해고 합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 합의 이후 현장에서는 거의 모든 민주노조가 각개격파 되었다.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그린 ‘밥·꽃·양’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듯이 선진노동자 활동가들은 더 이상 노동자 단결의 구심이 아니었다. 이에 실망한 평조합원들은 노조간부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다.

평조합원들은 철저히 소외되다

두 번째, 단위노조, 연맹, 총연맹에 이르는 운영체계에서 평조합원들은 철저히 소외되어 갔다.

2005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투쟁에서 나타나듯이 대공장 단위노조 지도부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상황이이 전개되면, 연맹과 총연맹에서 지침을 내려 교묘히 자기 책임을 회피하였으며 간선제로 이루어지는 연맹, 총연맹 선거는 정파들의 집안잔치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 체계에서 대공장 단위노조 지도부는 기업별 노조로서의 권리는 마음껏 향유하면서도 전체 노동자계급의 투쟁요구는 번번이 연맹, 총연맹을 방패로 비껴 나갔다.

현장의 평조합원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연맹, 총연맹 선거과정과 의사결정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이러한 소외는 평조합원 노동자들을 수동적인 침묵의 집단으로 전락시켰다.

세 번째, 극악한 군부독재 정권에 맞선 사회민주화 투쟁과 맞물리면서 급격하게 성장한 민주노조 운동의 거대한 역량이, 91년 구소련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 변혁적인 전망을 상실하면서 단위사업장 내의 임금인상, 처우개선, 고용안정투쟁에 갇히게 되었다.
그 결과 상대적인 고임금과 고용안정을 확보하게 되었지만, 급속히 자본의 영향권으로 포섭당하면서 평조합원들은 개별화, 파편화된다.

이 세 가지 요인은 서로 악영향을 주고받으며 관료주의 상층부를 부패 타락시키고 대상화 수동화 된 평조합원들을 무기력한 상태로 빠뜨리면서 대공장 현장을 붕괴시켜 나갔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직하라.”

1985년 구로동 신흥정밀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박영진(당시 26세) 열사가 경찰 진입을 막다가 신나 뿌린 몸에 불이 붙어 사망하면서 외쳤던 말이다. 당시 민주노조 하나 없는 세상에서 조직하라는 말은 이해되지만, 현재 수만 단위의 단위노조와 60만이 넘어서는 민주노총이 있는데 조직하라니,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아닌가?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직하라"

그러나 그렇지 않다.

부패 타락한 관료들이 대중의 자발성과 주체성을 억누르고, 그 등에 타고 앉아 온갖 횡포를 일삼는 이 시기에 우리는 형식화된 조직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일어서야 한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직하라!’

질병이 오래되고 고질화된 만큼 한 방에 해결책을 도모한다는 것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대안과 관련해서 몇 가지를 제기해 보겠다.

첫 번째는 민주노총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로 의제를 확장해야 한다. 산별관료 과두제에 대한 비판과 그 핵심으로서의 간선제를 직선제로 전환할 것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직선제는 민주노총 대표성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기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만이 아닌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자!

세 번째, 지도부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통제 장치, 즉 선출직임원 소환제, 조합원 발의제 등을 적극 검토하자.

이러한 대안의 구체적 실천과 모색은 다음 편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전원배 울산지역 노동운동가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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