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지구를 횡단하는 과정에서 각 국가별로 여성들은 여성의 요구를 담아 퀼트(일종의 조각보)를 제작하고, 이 조각보들을 잇는 연대퀼트를 만들게 된다. 이는 각 국의 여성들의 ‘운동’과 ‘운동’들이 만나는 상징의식인 셈이다. 전세계 릴레이 행진을 통해 완성될 퀼트는 ‘여성들도 온전한 권리를 지닌 주체임을 선언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새로운 세계지도’인 셈이다.
지구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행진
‘세계여성행진'은 "2005년 10월17일, 세계 여성들의 '24시간 동안의 페미니스트 단결'이라는 행동은 태양을 따라 지구를 돌 것이다. 태양을 따라 각 지역의 정오에 우리는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과 그 가치를 지지하는 수많은 여성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행동은 오세아니아의 태평양 섬들에서 시작해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유럽에서 동시에 진행될 것이며 미국에서 마무리 될 것이다. 24시간 동안 여성들의 목소리는 지구를 감쌀 것이다"며 태양을 따라 진행되는 전 세계 여성들의 물결을 제안했다.
여성들의 색다른 국제연대가 아닌가. 서로 다른 공간에 있고 다양한 요구를 가진 여성들이지만, 빈곤을 심화시키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투쟁이 태양의 시간을 따라 이어지는 것이다.
한국에는 이 연대퀼트가 지난 7월3일 도착했다. 그러나 한국의 여성운동들은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지 못하고, 7월3일에는 ‘세계여성행진과 함께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 다음날 4일엔 한국여성연합이 각각 주최하는 두 개의 행사가 진행됐다.
이렇게 두개의 행진이 따로 진행된 것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평가와 성노동자 운동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 자체가 여성운동의 힘과 역동성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여성행진’ 내에서도 성매매·성노동자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여성들의 행진과 공동행동
그러나 '세계여성행진' 내에서 성매매에 대한 격한 논쟁과 입장 차이에도 크게 두 가지 분석과 관점을 공유한다.
하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빈곤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현재의 유래 없는 성산업 규모의 확장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빈곤의 여성화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증가시키는 구조에 맞선 투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것이고, 이것이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힘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여성의 장소를 가족으로 한정하면서 여성이 수행하는 노동에 대한 가치절하와 불인정을 유지하는 역사적 가족형태에 대한 비판을 공유한다. 따라서 현재의 불평등한 남녀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은 중요하고, 성노동자들 포함한 여성들의 조직화할 권리 옹호이다.
한국에서 여성들은 곳곳에서 치열하게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비정규직 투쟁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라 할 만큼 하이텍, 경찰청고용직, 한원CC, 엔텍,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절박하고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투쟁하는 여성들이 만나고, 그리고 투쟁은 공동으로 여성들의 권리를 쟁취하는 연대운동으로 새롭게 만나야 할 것이다.
IMF 구조조정 당시 해고 1순위가 되었던 여성들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 인한 가계파탄으로 다시금 노동시장에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사노동 및 양육의 1차적 책임자로 의무를 진 여성들에게는 저임금의 단순업무가 돌아올 뿐이었고, 이는 비정규직의 70%가 여성인 현실을 빚어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여성의 노동을 부차화시키는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해방을 향한 여성운동, 자율과 연대로
전체 여성노동자의 70.5%가 임시일용직이고, 임금은 남성노동자의 63%에 불과하다. 또한 전체가구 중 여성가구주 비율이 18.5%인 것에 비해, 빈곤가구 중 여성가구주의 비율이 45.8%로 2.5배에 달하며, 여성가구주 가구 중 빈곤가구 비율은 21.0%로 남성가구주 가구 중 빈곤가구 비율 7%의 3배에 이른다. 이렇듯 빈곤의 문제는 여성의 얼굴을 띠고 있다. 여성이 저임금 불안정노동층으로 고착화되는 구조에서 여성은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고, 이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가중시키는 현실을 낳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여성고용의 확대과정이 여성운동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여성의 사회참여’, ‘여성의 경제활동’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전체노동자의 노동조건 하락을 목적하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권리박탈은 여성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오던 ‘차별 없는 동등한 권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는 여성노동자의 정신과 육체를 최대한 착취하면서 그에 대한 불만을 유능하게 관리하고 있다.
결국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확대하고 여성의 발전을 꾀한다는 노무현 정부의 여성정책은 자본의 위기, 재생산의 위기를 지연하고자 하는 정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이지, 결코 여성의 요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제도화된 여성운동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여성인력 활용 및 저출산 극복을 위한 양육지원을 여성들의 사회참여 확장과 권익 확보를 위한 기회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축소하고 여성에 대한 이중부담만 강화할 뿐이다.
현재 여성운동 진영이 채택하고 있는 성주류화 전략이 신자유주의가 여성을 그 자신의 위기극복을 위해 활용하는 것을 비판하지 못하고 오히려 신자유주의와 공명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성들이 겪는 억압과 착취를 폐절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여성들 스스로가 행동에 나서고 여성들 간의 연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제도화된 여성운동이 한정된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를 절대화하며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수렴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 간의 연대를 강화하고 그 요구를 집단화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여성의 국제연대로 저항을 세계화하자
10월17일은 신자유주의에 맞선 세계여성들의 릴레이 행진이 서아프리카에서 마무리되는 날이자 세계빈곤철폐의 날이다. 여성행진은 17일 정오, 여성가족부 앞 기자회견과 저녁 6시 홍익대 앞 걷고 싶은 거리에서 연대문화제를 기획하고 있다.
여성행진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고 있는 빈곤의 문제는 여성들 모두의 문제로 제기하고자 한다. 빈곤은 각기 다른 요구들로 저항하고 있는 여성들 모두의 구조적인 문제인 것이다. 가난한 여성들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투쟁과 연대하고 나아가 신자유주의와 전쟁으로 고통 받은 이 땅 모든 민중들의 빈곤에 맞서기 위해,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행진은 계속되어야 한다. 10월17일 그리고 11월 부산 아펙반대 행동에서 여성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에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