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가 사회협약 이후 실업률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대부분 시간제노동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시간제 노동을 원하는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찾아 준 것입니다”

“시간제노동자들은 임금이 정규직 보다 적고 불안정 고용으로 실업률은 낮아졌지만 결국 고용의 질은 낮아진 것 아닙니까?”

“시간제 노동자라고 해서 임금이나 처우에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과 똑같고 사회보장제도의 적용을 다 받고 있습니다. 오히려 정규직으로 일하기 어려운 여건에 있는 맞벌이 부부나 풀타임(full-time)으로 일하기 어려운 여건에 있는 근로자들은 시간제 노동을 원해서 합니다.” 

한국식 질문에 네덜란드식 답변

지난 5월 빔콕 전 네덜란드 총리가 내한했을 때 일이다. 한국적 질문에 네덜란드식 답변이다. 노동계와 간담회에서 네덜란드의 사회협약 성과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질문을 했더니 빔콕 전 총리가 답변한 내용이다. 1인당 GNP가 2만2천불에 달하는 나라와 우리나라를 직접 비교할 수 없고, 노동시장의 관행과 역사가 다른 사회경제를 비교하는 것도 무리지만 우리로서는 부럽기도 하고 먼 나라 얘기이기도 하다. 비정규직에 대한 동등한 대우가 보장 되고 법과 제도나 노조의 단체협약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노사관계가 부럽다. 임금수준이 우리보다 월등히 높고 임금체계와 고용관행의 차이가 있겠지만 비정규노동을 노동자가 원해서 한다는 사실이 남의 나라 얘기임을 실감케 해주는 대목이다.

“네덜란드 사회적 협약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정부측의 역할은 어떠했는가?”

“노사대표는 서로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고령화사회, 사회보장, 노동시장, 미래와 주변환경에 대한 분석 등 여러 가지 문제와 과제를 서로 주고받고 있다. 정부는 노조대표와 자주 접촉(3개월에 1번의 공식적 만남 이외에 전화, 노동부장관 등을 통한 비공식 접촉 포함하여 최소 주1회 이상 접촉)한다.”

이 또한 우리와는 너무 먼 나라 얘기이다. 빔콕 총리의 말을 빌면 정부의 역할은 노사대화를 진전시키기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대화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노사대화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우리나라의 노사정관계와 너무 다르다.

그러면 우리에게 네덜란드 모델이 불가능하기만 한가. 역사와 문화, 관행과 전통의 차이 등으로 인하여 똑같은 법과 제도를 이식한다고 해서 똑같은 결과가 나올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맞는 사회적 대화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발독재를 겪으면서 정부가 정치사회경제를 장악하고 지금의 수준에 올리기까지 역할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이제 그러한 개발독재 시대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 모델 가능하다

경제개발 초기에 우수한 인적자원과 사회적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유일한 존재가 정부였다면 21세기에는 정부에 못지않은 민간의 인적 물적 자원이 있으며 사회발전의 주체로서 정부가 독점할 수도 없고 민간과 역할을 나눠 가져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민간부문의 투쟁과 갈등의 산물로서 출현한 정부로서의 성격을 갖는 유럽과 달리 우리는 왕토사상과 같은 중앙집권적 전통과 정부가 앞장서서 민간부문을 육성하고 양성해온 역사적 배경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제 그러한 과거의 패러다임을 청산하고 민간과 정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이다.

지난 6일 양대노총과 경총은 우리나라 노사관계 역사상 처음으로 정부나 학계, 공익이 참여하지 않은 노사만의 대토론회를 성사시켰다. 지금까지 노사관계는 중간에 누군가 끼어 중재해야 이루어진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진행되어 왔다. 이번 노사대토론회는 그 내용이 무엇이었냐를 떠나 노사가 스스로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다는데 적지 않은 의의가 있으며 그 내용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노사의 몫이다. 새롭게 시도되는 노사관계 패러다임에 관심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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