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운동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빨간불이 켜졌다.

잇따른 비리사태와 극단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노조운동이 자기반성에 기초에 한 과감한 혁신에 도달하지 못한 채 극약 처방에 의존하고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위기,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비리 때문만은 아니다. 노조운동 내부를 들여다보면 ‘만연한 도덕불감증과 반민주주의 불감증, 타성에 젖은 관성적 대중사업과 운영 등’ 위기의 징표는 쉽게 감지된다. 노조운동이 스스로 과감하게 혁신하지 않고 이대로 방치될 경우 수년 내로 그 힘을 상실하고 끝내는 민주노조운동의 깃발을 접는 날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보수언론의 무차별 융단폭격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에 대한 무장언론의 공격은 끝장을 보려는 태도처럼 비춰진다.

요이땅!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언론은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무차별적 융단폭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금주 들어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 일간지들은 연일 사회면 전체를 노동계에 대한 신랄한 원색적 비난을 쏟아 부었고 심지어는 흡사 군사독재정권 시절 간첩단 조작사건의 조직도를 떠올리게 만드는 노동조합운동의 내부 정파분석까지 동원하면서 노조운동의 고립과 분멸에 돌격대로 나서고 있다.

작년 말부터 연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재정비리사건과 극단적 정파주의에 의한 폭력사태와 파행은 노동조합운동의 도덕적 상처를 깊게 만들었음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과거에 발생한 부정비리가 이제 와서 터져나왔다하더라도 재정비리와 같은 사건이 여전히 되풀이되면서 보수언론에 빌미를 노조운동 스스로가 제공했고, 이를 근절시켜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노동조합운동은 그로기 상태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민주노총은 지도부의 책임지는 자세와 과감한 혁신을 통한 자구책을 마련하면서 수습과 대책을 내놓았다. 우리 사회 어느 조직과 집단을 보더라도 이런 식으로 정리한 바는 없다. 아무리 노조운동이 흔들려도 노조운동은 아직까지는 건강하고 희망이 있는 것을 발견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지도부만 책임지는 물갈이 식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또다시 미봉책으로 그칠 소지가 농후하다. 

혁명적 자기반성과 실천

더욱이 한국노총의 경우와 같이 윤리강령을 만들고 노조 간부의 재산을 공개하고, 부정비리 연루자의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등의 새로운 하드웨어를 마련하는 것보다도 중요하는 것은 노동조합운동의 정신을 회복시켜내는 부팅작업이며 버전업된 소프트웨어를 작동시키는 일이다. 노동조합운동은 가장 순수하고 정의로운 것이라는 전태일 열사가 남긴 말처럼 노동조합은 자주성과 도덕성 그리고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대중운동조직이다. 노조운동의 내부 점검은 도덕성과 민주성, 자주성이라는 기본 원칙 하에서 노조운동의 정당성을 회복시켜내야 한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태가 ‘나는 깨끗하기 때문에 나와는 무관하다’ 내지는 기준과 원칙을 제기할 때 ‘너만 잘났느냐’는 식으로 일관한다면 노조운동은 단 한발자국도 바뀌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태되고 말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부정비리와 타락이 외부의 힘을 통해 제기되었지만 정작 노조운동 내부는 미봉책으로 묻어두고 단순 사건으로 취급하면서 환부를 도려내기 위한 메스를 들지 않았고 솔직한 대응과 자기반성으로 이어내지 못했다.

따라서 노조운동은 집단적 불감증을 경계하고 극복하기 위한 혁명적 자기반성 하에서의 혁신과 실천이 현재 위기 증후군을 떨쳐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이다. 

관성으로부터의 탈출

새로운 사회변화에 노동조합운동은 과거의 타성을 버리지 못한 채 대응하고 있다. 노조운동의 역량이 배가되고 사회적 영향력이 높아졌음에도 노조운동은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에 대해서는 매우 둔감하다.

이를 극복해내기 위해서는 이참에 노동조합에 잠재되어 있는 오류와 모순들을 찾아내고 뜯어내어 고쳐야 한다. 불요불식 간에 노동조합에 만연한 관성적 사업작풍을 탈피하고 구조와 운영을 참여와 민주의 확대로 전환시켜야 한다.

현재 노동조합이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가 폐쇄적 의사결정구조와 여론마당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한국노총만 보더라도 근로자복지센터 건립 비리 이후 열린 지난 6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여러 가지 제도장치를 마련했지만 의사결정단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원조합 대표자회의가 독점적 지위를 행사하고 있다. 한국노총이 1994년도에 중앙위원회를 신설한 이후 이를 개최한 회수는 현재까지 열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이고 현 집행부가 들어서고 나서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회의 개최 역시 산별의 요구에 의한 것보다는 총연맹의 필요에 의해 개최되고 부서담당자회의에는 총연맹 임원들이 아예 참석조차 하지 않는가 하면 논의된 결과는 논의로 끝날 뿐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렇다보니 현장 스크린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행부는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강변하게 되고 산별조직들 역시 회의구조의 편협성으로 인하여 소수의견이 반영되거나 개인의견이 80만 조직의 행보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집행부 내에서도 발견된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번거로움으로 생략된 채 의사결정 최고단위의 전시적 지도력에 의존한 나머지 여론마당의 부재라는 결과를 낳고 있다. 

관료주의와 일방주의를 물리치자

노조운동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깊은 병중 하나가 노조간부의 ‘관료주의’와 ‘일방주의’이다. 관료주의와 일방주의는 노동조합운동을 병들게 하는 이유가 된다.

정말로 열심히 활동하던 현장간부가 위원장이 되고 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상급단체와 주변 노조 동지들을 만났을 때 말투부터 바뀌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노조위원장 직을 수십년동안 해오면서 단위노조와 상급단체 위원장을 겸임하고 노조위원장 자리가 본인의 평생 직업으로 둔갑되어 경우도 있다.

심지어 상급단체 지도부가 소속조직에서 결성된 노동조합을 놓고 산별위원장이 직접 나서 ‘직원노조는 인정해도 일반노조는 인정할 수 없다’는 반노동자적 언행을 서슴없이 내뱉고, 노조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채용직 간부를 해고하고, 교섭을 이유 없이 거부하고, 노동위원회 조정회의조차 거리낌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서 벌금을 내면 그만이라는 막가파식으로 일관하는 경우까지도 있다. 소위 상급단체까지 올라간 산별 위원장이 일방주의적 사고로 뒤덮여 조직에 파열음을 내고 노조운동에 심각한 흠집을 내면서 노조운동을 더욱더 고립화시키고 천 길 낭떠러지로 몰아가고 있는 형상이 아닐 수 없다. 노동조합운동이 아무리 맛이 갔어도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지금이라도 더 깊은 수렁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막고 바로 잡아야 한다. 노동운동을 대표해왔던 구호처럼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기준과 가치를 만들어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이 뒷받침되었을 때 노조운동의 건강성은 되살아날 수 있다. 

노동운동 아직까지는 희망이

‘깊은 충격과 실망, 심지어는 노동운동에 대한 회의로까지…’ 올 한해 내내 답답함과 울화통으로 가슴이 터져 나갈 것 같았던 노조 활동가들을 여기저기서 쉽게 발견한다. 치열한 고민과 밤을 지새우는 번뇌 속에서 지혜를 짜내고, 부딪히고 깨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며 용기 내어 현장을 조직했던 노조운동 활동가들이 안타깝게도 심각한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흔들리고 있다.

노조운동은 도덕성을 생명으로 한다. 운동 주체들의 건강성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운동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일부 운동주체들의 잘못이 전체인양 포장되면서 모두가 매도당하고 있지만 문제를 풀고 건강한 노조운동으로 재탄생하게 만드는 것은 활동가들로부터 시작된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희망은 있다. 한국 노조운동의 가장 큰 재부이자 동력인 활동가들이 버젓이 버티고 있고 과거 청산을 위한 반성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한국노총이 변화하고 있고, 민주노총의 진정어린 참회와 자기반성을 보면서 그래도 노조운동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사회 어디를 놓고 봐도 노동운동만큼 순수하고 정의로운 곳은 없다. 일부 노조간부들의 부정비리 사건이 노동조합운동에 해를 입히고 타격을 주고 있지만 노조운동은 꿋꿋하게 극복해나가고 있으며 틀림없이 해 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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