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금품수수 사건으로 민주노총은 지금 심각한 갈등과 혼란에 휩싸여 있다. 그는 민주노총 내부에서 누구보다 무게 있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 컸다. 비정규사업과 조직혁신 사업을 실제로 총지휘하는 위치에 있었고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평가되곤 했다. 심지어 몇 년 전에 그는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최다 득표를 한 적도 있었다.

위원장의 자발적인 직무정지 선언과 그 철회, 그리고 내년 1월 조기선거를 전제로 한 복귀라는 결정에도, ‘즉각 총사퇴’라는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실질적 총사퇴’라는 평가도 있으나 ‘무책임한 잘못된 결정’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의 입법화 쟁취, 로드맵 저지를 위한 하반기 대정부투쟁은 물론이거니와 민주노조의 조직혁신,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앞두고 일어난 일이어서 더 난감하다.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억압, 놓쳐선 안 돼

전태일 열사를 떠올리며, 민주노총 지도부를 비난하는 댓글을 다는 수많은 노동자 네티즌들의 고통스런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침묵에 잠긴 더 많은 노동자, 활동가들의 고뇌도 그 무게가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또 수많은 국민대중의 비난 여론도 그 자체로서는 정당한 일일 것이다.

사태의 한 복판에서 이 문제를 정확하게 논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흥분하고 분노한다고 달라질 일은 없을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사태를 차갑게 거리를 두고 볼 필요가 있다.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어 깨우며 몇 가지 생각을 늘어놓아 본다.

먼저 사태의 본질, 혹은 그 뿌리에 관한 생각이다. 필자는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으며 이를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운동 위기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하나의 측면은 ‘국가와 자본이 주도하는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억압’이라는 요소이다. 물론 다른 하나의 측면은 ‘민주노조운동의 구조적 위기’가 될 것이다. ‘민주노조의 도덕적 파탄’이라는 사태의 성격 때문에 전자의 측면을 강조할 수는 없겠으나 그 구분은 꼭 필요하다.

주지하듯이 이번 사건은 기아차, 현대차 비리, 한국노총 간부들에 대한 비리 수사의 연장선 위에서 발생하였다. 작년에 대통령과 노동부장관이 ‘노동운동은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라고 선언한 노동통제, 기획수사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물론 조중동문과 한겨레신문까지 포함하는 수구-보수언론의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융단폭격은 예정되고 기획된 수순이었다. 여기에는 자주적 노동운동에 대한 노골적인 지배와 개입이라는 국가-자본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요구는 전투적 민주노조운동의 포기,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 수용이었다.

그러므로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심각한 자기비판과 성찰이 국가자본의 노동운동 일반에 대한 왜곡된 비난과 여론몰이에 합세하는 형국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만 한다. 부정과 비리에 대한 비난이 민주노조운동의 이념적 정신, 그리고 그 투쟁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일 수는 없다. 또 일부 활동가의 부패 행각이 건강한 대다수의 민주노조와 노동자대중의 노조 활동과 투쟁을 매도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여전히 대다수의 민주노조 간부들, 민주노총 간부들은 힘든 조건에서도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조운동의 구조적 위기, 심각한 문제

다음으로 ‘구조적 위기’측면에 대한 이해의 문제이다. 필자는 구조적 위기의 측면을 훨씬 더 중요하게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는 민주노조운동과 그 상징인 민주노총 내부에 깊숙이 부정과 부패가 자리 잡은 것을 심각하게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오랫동안 민주노조와 어용노조를 가르던 그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가 퇴색한 것이다. 사용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는 과거 어용노총의 중요한 표식이었다. 이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핵심 지도부가 모두 그런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일이다. 민주노총 건설 10년 만에 지금 민주노총이 어용노총이 되어 가는 현실은 분명히 위기라고 할 것이다.

더불어 우리는 이번 사태에서 민주노조의 성격을 상실한 채 진행될 ‘민주노총-한국노총 대통합론’의 허구를 한 눈에 감지할 수 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머리수를 채운다고 운동이 발전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현재의 사태를 이수호 집행부의 오류로 제한해서 파악하는 정파적 시각이 있다면 이는 매우 잘못된 일이다. 현재 빈발하는 부정과 부패는 민주노조운동의 구조적 위기로부터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별 노조 체제라는 특수한 조건, 그리고 국가와 자본의 항상적 지배 개입 시도라는 운동의 구조적 특성에서 연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를 제어했던 주체의 능력이 현저히 퇴색해가는 것은 결정적 원인이었다.

그러므로 산별노조 건설을 포함하는 제대로 된 혁신의 계기를 잡지 못한다면 해소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지도부 총사퇴’ 여부는 구조적 위기의 치유라는 전망 속에서 다시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국가의 지배 개입의 강화에도 ‘교섭과 투쟁’의 병행, ‘대화 정치’를 고집하는 현 지도부의 노선이다. 이수호 집행부가 일관되게 대화와 교섭의 자세를 취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되풀이된 ‘선의’에도 사태의 진행은 대화와 교섭을 지금까지 막아왔다.

더욱이 현 정부와 노사정위 뿐만 아니라 한겨레신문, 그리고 심지어는 일부 노동언론까지도 대화와 타협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역설하고 있는데 말이다. 곧 ‘국민적 여론’이 이를 민주노조운동에 강제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 ‘민주성’ 새롭게 재구성해야

왜 그런가? 다시 한 번 스스로 답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조운동 내부에는 대화와 교섭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 내부의 부패조차도 막을 힘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와 자본은 이 조건을 매개로 ‘민주’ 간판을 내리는 대화와 교섭을 강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위기는 국가 자본의 요구, 여론의 향배를 따라 ‘국민과 함께’ 한다고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 길은 위기를 심화시키는 길인 것이다. 위기는 오직 민주노조운동 내부로부터 낡은 사고와 제도를 탈각함으로써 자주적으로 극복될 수 있을 뿐이다. 퇴색되는 ‘민주성’을 새롭게 재구성함으로써만 해소될 위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가 말하는 하나의 중요한 교훈은 국가자본이 민주노조운동과 ‘상생’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된 점이다. 민주노조운동이 노사정 합의의 구도에 들어갔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태가 ‘노조비리 수사’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경우 기업별 노조체제에서 연원하는 민주노조 내부의 부패현상은 더욱 더 심화되었을 것이다. 공무원노조 특별법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자본이 요구하는 노동운동은 ‘집단이기주의’, 협소한 ‘경제주의’ 노동운동이기 때문이다.

수구언론은 이미 보다 급진적인 분파가 민주노총 집행부를 구성하는 일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이번 구속 사태에서 국가는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과 발전을 강제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다만 현 집행부에서 이런 일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가진 한계와 모순, 혹은 자만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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