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철폐”. 850만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민주노총의 구호가 공허하게 들리고 있다. 50억 비정규기금 모금, 비정규권리입법쟁취 등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계의 다짐에도 '현장'은 아직 '냉랭하다.' <매일노동뉴스(레이버투데이)>는 4회에 걸친 기획을 통해 현재 투쟁중인 비정규직사업장 중 정규직노조의 연대 수준을 되짚고 정규직, 비정규직 활동가로부터 침체된 현장조합원 정서의 원인과 분석을 직접 듣는다.<편집자 주>



정규직 노동자에게 묻는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 다소 무리하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대답이 “예”라고 하면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다. 그러나 당신이 “아니오”라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이거나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대기업노조 집행부는 비정규 문제에 대해, 현장에 있는 간부나 활동가들의 주장이 때로는 지나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바뀐 집행부의 생각도 같다. 오히려 회사의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비정규 문제로 내홍을 겪을 때에는 회사관계자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위로받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 격화될 때에는 노심초사 안절부절 못한다. 물론 '강심장'들도 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손놓고 회사에 맡기는 경우이다.

상이한 조건, 지킬 수 있는 계약관계였나

4년 전 일이다. 비정규노조가 결성되고 원청 노동자들과 충돌이 있었다. 원청노조는 비정규노조를 탄압한 이유로 징계되었지만 노동운동 내 다수의견은 원청 못지않게 하청노동자들의 요구와 행위를 문제 삼았다. 그리고 그냥 끝났다. 반성도 교훈도 없이.

그랬다. 원청노조의 반노동자적인 행위와 하청노동자들의 어설픈 태도는 내게도 불만이었었다. 하지만 나의 본질적인 걱정은 이것이 아니었다. 충돌이 일어난 노조의 원·하청노동자들은 대한민국 모든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지극히 평균적인 상태였다는 것이다. 최근 현대, 대우, 기아 등의 상황은 결코 놀랄 일도, 낙담할 일도 아니다. 이미 4년 전 서막이 올랐고, 아무런 반성과 교훈 없이 끝났을 때부터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지금도 그 연장선에 서 있다.

이 일을 계기로 원·하청 연대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3대 원칙까지 등장했다. “공동결정, 공동투쟁, 공동책임.”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들떠 있을 때 나는 4년 전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프로크로테스의 침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 맘대로 줄였다 늘렸다 할 게 뻔했다. 접대용 문구로는 그럴싸 했지만, 솔직히 말이 좋아 3대 원칙이지 이게 어디 지킬 수 있는 계약관계인가?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진주목걸이도 돼지에게는 소용없는 일이고, 아무리 날이 선 칼도 아이 손에 쥐어져 있으면 위험한 법이다.

서로 상이한 조건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발상부터가 의심스럽고 못마땅했다. 하청의 절박한 현실과 불균등한 힘의 관계를 고려하면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백번 모두 계약파기의 책임은 하청에게 지워지게 되어 있다. 또 3대 원칙에는 원청노조의 사업은 예외적인 것이라 애시 당초 불평등한 계약관계일 수밖에 없다.

자신들은 하청의 의사와 무관하게 뭐든지 마음대로 해도 되고, 하청노조는 인정된 범위 내에서 활동하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하청노조의 동의 여부도 마찬가지다. 강도에게 돈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를 감안해야지, 이를 무시하고 돈을 줘서 받았다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따라서 3대 원칙 합의는 무효이다.

원청노조, 회사와 하청노조 간 중개상

대기업노조 원청과 하청의 문제를 의지적 현실의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된다. 객관적 현실은 의식과 토대 모두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한다. 공동행동과 공동책임은 뒤로 하고서라도 우선 공동결정부터가 일방적이다. 어른과 아이가 시소 양쪽 동일한 위치에 각각 앉아 균형 잡겠다고 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처지와 기준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는데 이것이 조정을 거쳐 하나의 의견으로 모아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조정의 기준은 당연히 가치와 현실적 조건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떤 원청노조에게도 가치와 현실적 조건이라는 잣대는 없다. 그간 이루어진 모든 공동결정도 사실은 차마 합의 틀을 깰 수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청의 일방적인 양보에 따른 것이라는 게 나의 진단이다.

노동3권은 노동자의 권리로서 모든 노동자들에게 보장되어야 하고 여하한 이유로라도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도 노동자라면 마찬가지다. 남용 여부는 별개사안이자 행위자의 책임이며 이에 대한 판단은 원청노조가 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원청노조는 회사와 하청노조의 중간에 끼어 중개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도매냐 소매냐의 차이만 있을 뿐 연대를 내세워 기본권리를 부정하고 제한하는 게 그 소임이다. 과거 일이지만, 상급단체 간부가 투쟁 중인 노조에 와서 어용행각을 하던 짓과 다른 게 뭔가?

‘조합원 정서’ 뒤로 숨기

현실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수년 동안 원청노조의 집행부는 많이 바뀌었지만 애창곡은 변함없이 ‘조합원 정서’다. 조합원 정서 운운 하며 내세우는 현실은 무엇인가? 4년 전, 이론적으로야 옳지만 조합원의 정서를 전혀 고려치 않는 현실성이 부족한 행동이라는 비판에 대한 나의 답변으로 대신한다.

“선거권이 없으면 현실이라는 범주에 포함될 수 없는가? 당신은 선거에서의 영향력에 우선적인 가치를 두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정규직보다 더 많은 비정규직, 정규직보다 더 힘든 일을 하는 비정규직, 그럼에도 정규직 임금의 절반밖에 받지 못하고 인권까지도 차별 받는 게 비정규직인데, 이것이 노동자의 현실이 아니면 무엇인가? 또 노조는 무엇이고 당신은 왜 노조활동을 하는가? 부당하게 차별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삶과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게 아닌가? 현실을 왜곡하고 기만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다.”

물론 비정규직의 현실이 절박하다는 이유로 모든 행위가 옳다거나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또 비정규직 역시 당위만을 내세우기보다 현실적 관계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과에 대해서도 주체적 조건에 따라 행동할 일이지 정규직노조를 탓할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의 투쟁에 대해 비난하거나 통제하려 할 게 아니라 동일한 행동을 할 수 없으면 할 수 있는 만큼의 행위라도 하면 되는 것이다. 정규직조합원의 준비 정도가 아직 낮은 단계라면 이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대우자동차노조 창원지부나 금호타이어노조처럼 의지라도 있어야 한다.

자칭, 전투성을 내세우는 강성노조보다 알려지지 않아서이지 협조적이라고 비난하는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훨씬 비정규문제 해결에 적극적이고 실사구시적인 곳도 많다. 다양한 노력은 개량으로 치부하기 일쑤이고, 대우자동차 창원지부의 행동은 초짜들의 해프닝 정도로 규정하면서 입으로만 비정규직 철폐를 내세우니 진정성마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직이기주의·승자독식구조 바꿔야

노조운동의 성패가 비정규직 문제에 달려있다면 노조운동의 일대 혁신은 시급하다. 매번 반복되는 실패에 대해 어떤 반성도 하지 않고, 책임을 지거나 묻지도 않은 채, 또다시 동일한 주체가 동일한 장소에서 명패만 바꿔 달아 유사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조직이기주의와 승자독식주의의 관행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

최근 연달아 이어진 비리에 온갖 구실과 궤변으로 양심마저 저당 잡힌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기실 제 사람보호라는 조직이기주의의 산물이다. 대기업노조 간부는 조합원 챙기는 것에 몰두하고, 대기업노조의 잘못된 사업에 대해 나무라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외려 눈치를 보거나 옹호하는 일까지 있으니, 적당히 관계 잘 맺어 이후 포지션을 확실하게 보장 받겠다는 게 아니고 뭐겠는가?

노조운동이 권력화 된 것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중의 이해관계보다 조직의 권력이 우선되는 현실은 국민은 차치하고서라도 조합원마저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과거 노조운동은 독립운동, 반독재운동의 성격으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현재는 소수이기주의집단운동으로 추락했다. 대중의 시각과 현실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자파조직의 이익에 치중해 가치를 상실한 결과 기본적인 신뢰와 감동조차도 줄 수 없었다. 신뢰와 감동을 줄 수 없으니 ‘그들만의 리그’라는 수모를 겪어도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나는 근래에는 비정규직의 개념을 바꿔서 교육한다. 자본에게 착취당하고, 정권에게 탄압받고, 정규직에게 차별받는 노동자가 비정규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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