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8일 세계여성의 날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시작된 ‘2005 세계여성행진’은 지구를 횡단해 ‘세계 빈곤철폐의 날’인 오는 17일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 파소에서 마무리 될 예정이다. ‘2005 세계여성행진’은 전세계 161개국 6천여개 이상 여성조직들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적인 여성운동네트워크로, 지난해 12월 세계여성행진 총회에서 채택된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과 전세계 여성들의 요구를 상징하는 내용을 담은 ‘연대퀼트’가 각 국을 돌았으며 7월3일 한국을 찾은 바 있다. 이제 7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치는 2005년 세계여성행진의 의미와 빈곤과 폭력, 차별에 맞선 여성행진의 전망을 담아낸 기고글을 2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주> 

 

전 지구적으로 여성의 삶의 조건은 불안정해지고 있다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매일 행해지는 노동시간의 66%를 여성이 채우고 있는 반면 여성은 세계 전체 소득의 10%, 그리고 전체 부동산의 1%만을 소유하고 있다. 또한 여성은 세계 빈곤층 13억 인구 가운데 70%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여성은 여성노동의 주변화와 빈곤의 심화로 더욱 고통 받고 있다. 자본의 세계화란 더 싸고 더 유연한 노동을 찾는 자본의 속성에 따라 결국 여성들의 상태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고 있으며, ‘가부장제’를 이용하여 더 많은 여성노동력을 착취하고 자신의 축적구조를 완성시킨다. 기업은 여성을 더 순종적이고 덜 조직적이며, 결혼이나 임신과 같은 사유로 해고하기 쉬운 존재로 보고 있다.

여기에 신국제분업이라는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착취는 노동의 불안정화를 가져오는데, 일단 자본은 싼 노동력을 찾아 제3세계로 이전한다. 제3세계에서 여성노동은 남성노동보다 열등하다고 여겨져 최저임금 이하의 여성임금은 정당화되었고 젊은 여성은 남성보다 권위에 잘 복종하며 열악한 노동조건을 잘 견뎌내기 때문에 고용주는 젊은 여성을 선호한다.

제3세계에 적용된 노동의 신축화가 중심국에도 형성되는데, 결국 여기서도 이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여성노동력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제1세계의 흑인 여성과 제3세계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그 요구를 만족시키는 형태로 드러난다.

미국에 이주 여성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노동착취 공장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멕시코 국경에 위치한 마낄라도라 같은 자유무역지대는 제3세계 여성노동력을 제1세계가 착취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여성들은 보다 극단적인 형태로 착취당하고 있으며, 전 지구적으로 여성의 삶의 조건은 불안정해지고 있다. 

세계여성행진 World March of Women

1995년 캐나다 퀘벡에서는 빈곤 제거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10일간의 행진이 진행되었다. 이 ‘빵과 장미를 위한 행진’이 진행되던 같은 해 북경에서는 유엔세계여성회의를 계기로 결집한 여성들이 ‘빈곤’과 ‘폭력’에 맞서 투쟁하는 국제적인 여성행진을 제안하였다.

전 세계 여성들이 전쟁을 동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아래에서 더욱 가난해지고 더욱 억압당하는 현실에 맞서, 어떠한 저항이 필요한가? 캐나다와 북경에서 결집한 여성들은 여성이 겪는 억압과 착취를 폐절하기 위한 전 세계 여성의 연대행동이 필요함을 호소하며, 세계의 빈곤을 없애는 것과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제거하는 것을 여성운동의 주요한 과제로 삼고 이에 관한 요구목록을 작성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5년 후 이 요구목록을 알리며 지구를 횡단하는 세계 여성들의 릴레이 행진을 진행하였고, 여기에 결합했던 각 국의 여성운동들은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이라는 세계적인 여성들의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전 세계 161개국 6,000개 이상의 여성조직들로 구성된 이 ‘세계여성행진’은 단일한 이념과 전략을 가진 조직은 아니지만, 여성운동이 스스로의 자율성을 증진하고 연대를 도모하여 여성해방을 향한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그리고 여성들의 고유한 권리의 문제를 사회변혁과 결합시키면서 대안적인 사회운동의 중요한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의 결합과 상호존중, 상호확장이 양자 모두에게 필수적인 것이라는 점, 즉 양자 모두가 개조되고 전화될 필요성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여성행진이 결성되는데 단초를 제공했던 북경여성대회 10년이 된 올 해, 다시 한 번 릴레이 행진이 시작되었다. 세계여성행진 총회를 통해 채택된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을 널리 알려내고 전쟁을 동반한 금융세계화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요구를 알려내는 활동이 이 행진을 통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행진은 지난 3월8일 세계여성의 날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구를 횡단한 후 ‘세계 빈곤철폐의 날’인 10월17일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 파소에서 마무리 될 예정이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

지난 7월3일은 ‘2005 세계여성행진’의 ‘인류를 위한 세계 여성 헌장’과 여성들의 요구를 상징하는 ‘연대퀼트’가 한국에 도착하는 날이었다. 세계여성행진의 흐름을 주목하고 있던 한국의 여성들은 2005년의 릴레이 여성행진이 한국을 통과하는 7월3일을 계기로 이 땅 여성들의 절박하고도 다양한 요구들을 모아내고 확산하는 행동을 조직하고자 하였다.

지난 10년 동안,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의 여성화에 맞서는 여성들의 투쟁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정리해고가 합법화 된 이후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되었던 현대자동차 식당노동자들은 성차별적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의 현실을 폭로하며, 정리해고를 막아내기 위한 투쟁의 선두에 나섰다. 골프장 경기보조원, 보험모집인, 학습지 교사 등 대부분이 여성으로 이루어진 ‘특수고용직’의 실상을 폭로하고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역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생계임금을 보장한다는 취지와 정반대로 이들을 저임금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최저임금제의 허울을 비판하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투쟁에 앞장섰다.

가족형태의 변화와 더불어 더 이상 가족 내에서 담보되지 않는 간병노동을 수행하면서도 노동자성 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극심한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간병인 노동자들의 투쟁은, 보살핌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라는 중요한 쟁점을 제기했다.

신자유주의 농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농촌이 붕괴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농사 이외에도 생계를 보충하기 위한 부업에다 가사노동까지 3중의 역할을 하고 있는 여성농민들 역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선두에 나서왔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성매매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성매매 여성들의 시민권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움직임 또한 전개되고 있다.

이렇듯 절박하게 투쟁하고 있는 여성들 간의 연대를 강화하고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투쟁을 확산시키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하에 ‘2005 세계 여성행진과 함께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헌장과 퀼트가 도착하는 날을 맞아 ‘여성들의 연대와 저항’이라는 테마로 집회와 행진을 진행했다. 광주민중행동, 인천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의 힘 여성활동가모임, 문화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빈곤사회연대, 사회진보연대, 세계화반대 여성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전국학생연대회의 등의 참가단위를 비롯하여 집회에서 발언을 한 말레아 무네스 세계여성행진 아시아코디네이터, 라디카 서울경인지역이주노조 조합원, 이간란 여성연맹 청소용역지부 조합원,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 2005 빈활실천단 동지들 및 노래를 선보인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 동지들, 지민주 동지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심화되고 가속화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어우러진 7월3일은 진정 가슴 벅찬 날이었다.

이 땅의 여성들이 빈곤과 폭력에 맞선 절박한 투쟁을 진행하는 과정에 여성운동은 어떠한 힘이 되어야 할 것인지, 자율성과 연대를 실현하는 새로운 여성운동은 어떻게 시작될 것인지, 7월3일의 여성행진이 남긴 과제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실천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성행진은 아직 형성 중인 운동인 동시에, 여성들의 보편적 요구를 형성하기 위한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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