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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1년짜리 계약직이 낫다”
  • 이윤경 전국보육노조 사무처장
  • 승인 2005.10.1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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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짜리 계약직이 오히려 나아요.”

최근 지역 간부 한 명이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했다가 어느 보육교사로부터 들은 말이란다.

“어차피 열악한 처우에 저임금인데 정규직, 비정규직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채용 때 약속했던 월급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많고 연장근로며 잔업이 얼마나 많을지 알 수도 없는데 오히려 계약기간을 길게 했다가 나쁜 원장에게 걸리면 더 괴로울 뿐이다. 명쾌하게 1년만 근무하고 다른 자리를 알아 볼 기회를 갖는 게 낫다.”

이것이 그 보육교사가 1년짜리 계약직으로 살겠다는 이유이다.

노예문서와 같은 근로계약

▲ 이윤경 전국보육노동조합 사무처장.
그만둘 자유를 위해서 단기 계약을 맺는 편이 낫다는 이런 생각은 보육현장에 만연해 있는 노예문서와 같은 ‘근로계약’ 때문이다. 보육시설의 50%가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법적보호를 제대로 못 받고 있는데다 워낙 저임금에 열악한 노동조건이다 보니 보육노동자의 한 사업장내 평균 근속년수는 2년이 채 안되고 이직률이 매우 높다. 그러다 보니 원장들은 약속한 기간만큼 근무를 하지 않을 경우에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거나 매달 월급의 일부를 떼고 1년 근무를 해야만 그 돈을 줄 수 있다는 둥의 말도 안 되는 계약서를 쓰게 한다.

“1년 계약 위반 시 월급의 2배를 배상해야 한다는 근로계약서를 썼어요. 그만두고 싶은데 어쩌죠?”

“원장의 폭언과 인격적 모독 때문에 신경안정제까지 먹으며 일하다가 너무 힘들어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후임자 구할 때까지 못 나간다고 하면서 저보고 후임자까지 구해놓고 나가래요.”

“처음 월급으로 80만원을 준다고 해놓고 첫 달 월급에서 10만원을 떼고 주더군요. 그렇게 뗀 돈은 1년을 근무해야 줄 수 있다고 하네요. 그전에 그만두면 안 준다는데 받을 수 있나요?”
(보육노조 상담사례에서)

위의 사례는 개인이 운영하는 민간어린이집 사례이지만 정부지원시설 역시 고용불안은 마찬가지이다. 정부에서 인건비의 일부를 지원 받는 국공립이나 법인시설의 경우 상대적으로 장기 근속자가 많은 편이지만 이런 경우에도 보육노동자는 원하지 않는 사직을 강요받는다. 정부지원시설들은 인건비를 지원받는 대신 정부에서 정한 인건비 지급기준을 지켜야 하는데 근속년수에 따라 호봉이 오르게 되니 시설에서는 이들을 쉽게 해고하기 위해 계약직을 요구한다. 또 대부분의 국공립어린이집이 민간위탁이어서 수탁체가 변경될 경우 일방적인 정리해고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정부지원시설은 쉽게 해고하고

“이번에 신설법인어린이집에 공개 채용된 교사입니다. 근무를 하고 있는 중에 원장선생님께서 사전 설명 없이 근무조건계약서를 제시하여 서명하도록 하였습니다. 근무조건은 1년 계약을 원칙으로 하며, 어린이집 사정상, 언제든 임용이 취소될 수 있다는 계약조건이었고, 이 계약 조건에 서명하도록 강요하여 서명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학부형 앞에서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을시 언제든 교사를 교체시킬 수 있다 이야기 하였습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원장의 비민주적인 운영방식과 보육노동자에 대한 무시와 인격적 모독으로 인한 자발적(?) 비정규직이든, 호봉승급을 피하기 위한 강요된 비정규직이든 오늘도 보육노동자들은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보육노조 상담사례에서)

보육노동자의 잦은 이직은 아동의 입장에서도 매우 문제가 된다. 일반적으로 어린이집을 다니는 영유아들은 대개 2~3년 이상을 다닌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자주 보육교사가 바뀌게 되면 아이들은 안정감을 가질 수 없다. 보육노동자의 잦은 교체는 0~7세까지의 영유아에게 가장 중요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관계형성’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보육노동자의 고용안정 문제는 보육을 받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이윤경 전국보육노조 사무처장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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