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위기, 산별노조, 사회공공성, 비정규직…. 최근 다양한 논쟁 지점을 만들어내고 있는 노동운동의 주요한 화두이다. 그것은 노동운동의 역사적 경험과 현재의 상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에 기반하여 일정한 미래 예측과 기획, 실천을 핵심 줄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한 논쟁과 실천은 한편으로 현시기 노동운동의 역동성과 추진력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할 것이다.

열린 토론과 소통의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보다 적극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넘어섰으면 하는 것들, 그리고 가꾸었으면 하는 것들에 대한 단상을 적어본다. 

잘못된 가치를 새로운 가치로 바꿔내야

한국사회 노동운동은 참으로 치열하게 싸우며 성장해왔다.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한 구속, 해고, 징계는 하도 많아서 헤아릴 수가 없다. 노조 간부를 하는 것에 대한 주변과 사회의 곱지 않은 눈초리를 견디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간부를 한다는 이유로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여기까지 왔다. 정리해고, 위장폐업, 직장폐쇄, 손배소송, 가압류, 직권중재, 긴급조정권 말로만 들어도 살벌한 것들에 한국사회 노동자들은 맞서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학력이 다르다는 이유로 벌어지는 온갖 차별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생활임금 쟁취, 노동시간 단축, 고용안정 쟁취, 차별철폐, 탄압분쇄, 민주노조 사수, 노동3권 쟁취…. 우리는 지금도 그렇게 싸우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점점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은 왜일까? 어떤 이는 노조 간부들의 헌신성이 약화되고 현실에 타협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이는 조합원들이 점점 자신의 생존을 위한 실리주의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노동운동에 희망이 안 보인다며 가슴 아파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물론 자본주의의 무한경쟁 체제에서 구조화된 위기가 노동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로 이어지고 이것이 노동운동의 대응력을 넘어서 가속화되고 있는 데 있지만 한편으로는 치열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 노동운동이 자본주의가 생산하는 잘못된 가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고민과 노력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 아닌가 반문해본다.

우리는 열심히 투쟁했고 그리고 그 투쟁은 여전히 유효하고도 중요하다. 그러나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다 물질적으로 편안하게 잘살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한다면 노동운동은 결국 방향성을 상실하고 실패할 것이다.

즉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차별, 빈곤, 전쟁, 환경파괴, 물질만능 소비주의, 불평등, 무한경쟁, 사회갈등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 채 조합원들의 임금인상과 고용안정 만을 위해 싸우다보면 어느덧 조합원들은 자본주의의 잘못된 가치 체제 내에서 어떻게 자신이 잘 살 것인가 고민하는 왜곡된 소비노동자로 자리 잡게 되고 노동조합은 실리주의로 변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연대, 노동자와 민중의 연대는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조합의 요구, 교섭, 투쟁, 활동을 다양하고 치열하게 전개하되 노동운동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자본주의의 왜곡된 가치를 대체하는 새로운 가치 - 사회정의, 평등, 연대, 민주주의, 지속가능성, 다양성, 평화 등 - 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그것을 지속시키기 위한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데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노동자행사의 노동의례에서 ‘이 땅의 민주주의와 노동해방을 위해 싸우다 산화하신 선배 노동열사에 대한 묵념…’ 이렇게 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노동운동의 궁극적인 지향점이기 때문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을 지향해야

노동운동이 궁극적인 지향점을 놓치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의 투쟁과 활동의 영역을 사업장에서 지역과 사회, 전세계로 확장하고 임금과 고용안정의 요구를 사회공공성 쟁취 투쟁에 녹여내며 노동자의 의식과 삶의 방식을 건강하게 바꾸는 노동자 문화운동을 새롭게 전개해야한다.

기업별 노조 체제든 산별체제든 노동운동이 궁극적인 지향점을 잃어버린 채 자기 사업장의 생존과 그 안에서의 임금과 고용안정 보장 논리에 갇힌다면 투쟁을 열심히 하더라도 그 결과물이 노동자의식의 성장과 연대의 확산이 아니라 종업원의식과 노동자간 경쟁과 분절의 확대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실리주의와 사회공공적 의제에 대한 소극적 태도로 나타난다.

이는 결국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담론을 넘어서지 못한 채 투쟁력과 사회공공적 의제의 관철력을 상실한 무기력한 사회적 합의주의나 의회를 통한 해결에만 몰두하는 협소한 의회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그리고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구조적 모순과 미국의 패권주의 극복이라는 중요한 명제가 자칫 노동자 없는 민족주의 노선의 강화로 이어지고 이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오히려 강화하거나 폐쇄적 국수주의로 나타나면서 노동운동을 동시에 약화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한편으로 자칫 조직형식주의로 흐르는 산별노조운동은 경계해야한다. 사업장에 갇힌 전투적 조합주의, 노동자 연대와 투쟁력을 상실한 무기력한 사회적 합의주의, 협소한 의회주의, 노동자 없는 민족주의, 그리고 조직형식과 교섭구조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산별노조운동 등을 넘어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그러한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은 자본주의가 생산하는 왜곡된 가치를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는 노동자 운동, 전투적 조합주의의 사회적 영역으로의 확장, 노동자 연대와 투쟁력에 기반한 사회공공성 의제의 관철, 노동자가 주도하는 사회운동, 통일운동, 사회운동적 진보정치 운동, 여성 및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하는 계급적 산별노조운동, 그리고 노동자 문화운동의 혁신적 결합을 내용으로 한다. 

정파 뛰어넘는 헌신적 활동가 절실

현 시기 노동운동의 특징은 한편으로는 정파운동의 성장이고 한편으로는 대중의 생존권 투쟁이 다발적이고 역동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정파운동은 상층부 간부와 현장 활동가들에게 한편으로는 긴장과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한편으로는 활동의 에너지를 공급한다.

자기 노선을 가진 정파간의 건강한 경쟁은 노동운동에 있어 불가피한 발전의 과정이고 내부의 긴장과 역동성을 제공하는 활력소이다. 그러나 현 시기 정파운동은 기존의 노선을 극복하지 못한 체 결국은 내가 잡아야 바꿀 수 있다는, 그 과정에서 약간의 위험한 이탈(?)과 비민주주의도 감수하게 되는 왜곡된 분파 패권주의의 부정적인 경향을 동시에 갖고 있다.

당신은(저 사람은) 어느 정파에 속해있지? 라고 묻고 평가하는 것이 습관화되고 그래서 결국은 정파운동의 한계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왜소화시키고 줄을 설 것을 강요당하는 현실 앞에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 문득문득 드러난다면, 그리고 건강한 노동자 의식과 품성, 성실함과 능력보다 정파에 속해 있느냐 아니냐가 우선시된다면 그것은 과연 노동운동의 발전적인 모습일까? 그 속에서 대중은 형해화 되고 대상화된다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정파운동의 건강성을 확대하고 한계를 최소화하려는 정파 내부의 혁신 운동과 정파를 뛰어넘는 헌신적인 활동가 부대의 확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현시기 자본의 공세와 사회양극화의 확대 속에서 일어나는 대중의 고통과 다양한 사회 변화 요구, 자발적인 생존권 투쟁에 함께 하며 그것을 사업장, 지역, 전국으로 소통시키는 일에 헌신적으로 복무하는, 그리고 그것을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으로 승화시키려는 혁신적인 활동가들이 많아질 때 진정으로 노동운동의 미래는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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