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허물(革)을 벗기는(改)’ 얘기를 하자니, 참으로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감히 누가 누구의 허물을 왈가왈부하겠는가? 개혁의 대상은 누구이고 개혁의 주체는 또한 누구인가? 곤혹스러움을 넘어서 이 지면의 힘을 남용한 알량한 서푼의 입방아로 혹시 마음을 다칠 여러분들이 계신다면 그 또한 의도하지 않은 엄청난 결과일 성 싶어 적이 망설여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내 스스로 ‘겨 묻은 개’가 아니라 ‘똥 묻은 개’를 자처하고 싶은 까닭은 바로 지금 내가 직면하고 있는 이 곤혹스러움의 실체를 과감하게 돌파하는 것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지름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조리 있게 정리할 능력도 부족할뿐더러, 혹시 내 일탈로 인해 불편하게 느끼실 분이 계시다면 미리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각별한 아량과 선처를 부탁드리고 싶다.

노조의 경제적 이기주의, 노동운동 해쳐

IMF를 겪으면서, 그리고 뒤이어 창궐한 신자유주의의 망령을 겪으면서, 현장 조합원이 체험한 절절한 학습의 결과는 바로 ‘믿을 놈 없다’는 것이다. 내 옆의 동지가 아니면 내가 퇴출돼야만 하는 절박한 현실. 그리고 그토록 믿었던 노동조합마저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겪으면서, 그야말로 조합원들은 ‘살아남는 법’을 혹독하게 치러냈어야 했다.

지금 그 결과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아마 모든 분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꼭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노동자의 연대’는 고사하고 개별 노동자, 개별 노동조합 나아가 개별 연맹의 철저한 경제적 이기주의가 노동운동의 정체성마저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른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고 노동조합이니, 연맹이니, 총연맹이니 하는 것들은 만약에 경우에 대비한 보험이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가끔은 피할 수 없는 전선에서 합종연횡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를 바라보는 뜻있는 분들의 우려는 연일 노동(노동자, 노동조합)의 위기를 확산시키고 있지만, 정작 위기의 대상이거나 위기를 타개할 책임 있는 노동자(조합)들의 모습은 지극히 여유롭고 태연한 모습이다.

위기론이 등장하고, 위기타개책으로 지난 몇 년 동안 산별전환이니 지도부 혁신이니, 시스템 개혁이니 하는 급진적(?) 개혁안들이 논의되고 제시되었지만 정작 제대로 실천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개혁의 주체와 대상, 모호한 이분법적 관계설정

최근 몇 년 동안 한국노총 중앙 대의원대회를 비롯한 주요 사업 현장에는 어김없이 뿌려지는 유인물이 있다. 바로 한국노총의 개혁을 촉구하는 절절한 목소리들이 담겨있는 유인물이다. 나는 유인물에 담고 있는 한국노총의 개혁요구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거나 또는 반박하자는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다만, 그동안 총연맹 안팎에서 무수하게 ‘개혁’에 대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논의되었지만 큰 진전을 이룰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선거제도의 개혁을 통한 인적청산의 주장이 되었건,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한 시스템의 개혁이 되었건 그동안 ‘일방적인 요구’수준이 되거나, ‘현실성 없는 이상’으로 폄하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 이유에 대해 나는 ‘개혁의 주체와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 아니 역설적으로 오히려 확연하게 구분되어 진다는 점에서 오히려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개혁의 대상과 주체를 ‘현재의 헤게모니 그룹과 이에 맞서는 그룹’ 정도로 대중들에게 인식시킴으로써 본질을 왜곡해 왔다. 나아가 어느 한쪽이 개혁의 주체가 되면 어느 한쪽은 반드시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는 모호한 이분법적 관계설정이 오히려 개혁의 저해요인이 되어 왔다. 누가 누구를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관계 설정과 해법이 없었다는 말이다.

이는 결국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우리 내부에 대립구도를 명확하게 설정함으로써 지금까지 ‘개혁과 반개혁’, 또는 ‘민주와 비민주’의 지루한 갈등만 반복해 왔을 뿐이다. 단언컨대 지금 이 ‘문제 이전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해법은 결국 어느 일방에 의한 개혁추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개혁의 주체이고 대상이 되는 참으로 어려운 합의를 도출해내지 않으면 결코 우리 안의 산적한 얽힌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없을 것이다.

선거를 통한 검증 시스템 갖춰야

지금까지 많은 개혁논의가 있어 왔다. 그러나 대부분 논의 수준에서 종결되고 실천이 담보되지 않았다. 지금 새롭게 이러저러한 개혁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지금까지 논의된 수준의 아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국노총의 성공적 개혁을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몇 가지 문제점을 제대로 진단하고 이를 바꾸어내는 과제들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개혁의 성공요인이라고 생각하며, 짧은 소견 몇 가지를 밝히고자 한다.

첫째는 역시 사람이 문제다. 금년 초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당시 모 후보는 ‘똑 같습니다’라는 말로 60년 동안 달라지지 않은 한국노총을 비판하고 인적청산을 강하게 주장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 그 후보만의 비판이 아니라 그동안 한국노총 조합원들로부터도 숱하게 들어왔었음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개혁과제 중의 하나였다.

한국노총의 지역과 회원조합 중에는 아직도 선거를 통한 인물 검증 자체가 불가능한 조직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일부에서는 단위노조부터 총연맹까지 조합원의 직접 선거를 통한 조합의 의사결정 자체가 원천적으로 배제된 곳도 있다고 한다.

사람을 제대로 평가하는 선거시스템의 부재가 곧 ‘한번 위원장님은 영원한 위원장님’을 만들어내고, 30년 다선 위원장에, 정년 연장형 위원장까지 참으로 다양한 곡절의 위원장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저런 곡절의 그 위원장들이 정말 제대로 해왔었다면 조합원들의 비판의 목소리도 크지 않았을 뿐더러, 최근의 금품비리 같은 극단적 상황까지도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을 바꿔내는 제대로 된 검증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은 최선의 방법이다.

예컨대 직선제가 됐건 선거인단 제도가 됐건 사람을 평가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을 바꿔낼 수 있는, 그래서 단위노조부터 지역, 산별, 총연맹까지 제대로 된 사람들이 한국노총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

실천을 담보할 수 있는 심의와 결의가 필요

둘째, 내 문제가 아니면 남의 집 불구경하는 ‘조직’이 문제다. 총연맹의 대의원대회나 노동자대회에 참여하다 보면 참으로 의아한 장면들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 중 역시 압권은 20여개 회원조합의 이러저러한 요구사항을 담은 엄청나게 많은 결의문 채택이다.

‘결코 좌시하지 않을’, ‘강력 투쟁을 천명’해야 할 그 수많은 결의문들을 대의원이나 참석자들이 과연 얼마나 가슴에 담고 결의를 모아낼까라는 의구심은 결국 한 두 번 참석하다보면 어느덧 통과의례 정도로 인식되고 만다. 회원조합의 요구를 한 줄이라도 넣어야 하는 조직 배려와 조직 동원을 감안한 연설배치가 이루어져야 하는 척박한 조직풍토가 실천과 결의가 담보되지 않은 결의문을 만들어내는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일상사업도 마찬가지다. 총연맹의 통일담당자 회의에 참석해 보면 지역과 회원조합 통틀어 회의 참석자는 불과 10여명 안팎에 불과하다. 물론 회의뿐만 아니라 일상사업 전반에 걸쳐 산하 조직의 참여는 사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진다.

사정이 이러한데 비정규직 투쟁이나 사회연대 투쟁을 힘 있게 실천하자는 당면한 요구들이 얼마나 조직적 결의를 담보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내 앞에 놓여있는 ‘제6차 WTO 홍콩 각료회의 한국노총 투쟁단 모집’의 FAX공문을 바라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과연 투쟁단 신청자가 80만 우리 총 연맹 전 조직을 통틀어 10명이나 될런지….

마지막으로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대의원대회에서 일사천리로 심의와 결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면 참 무서운 조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결의된 사업들이 제대로 실천되는 경우는 손꼽을 정도라는 자조의 목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의사결정의 문제는 비단 총연맹의 대의원대회 뿐만 아니라, 산하 조직의 각종 회의체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장조합원과 단위노조, 그리고 연맹과 총연맹에 이르기까지 쌍방향의 의사소통 시스템을 복원함으로써 현장의 요구와 의견들이 제대로 반영이 된 사업들이 선정되고 심의되는, 그래서 실천이 담보될 수 있는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의 선순환 구조를 복원하는 길이 급선무 일 것이다.

개혁은 말이 아닌 실천

사회변혁의 중심세력으로서의 노동운동을 원한다면 현 시기 노동운동의 대세를 주도하는 한국노총의 ‘제대로 된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언제까지 눈앞의 오아시스에 안주할 것인지, 그리고 언제까지 힘 있는 세력의 변방에서 굴절의 역사를 거듭할 것인지, 아니면 마지못해 시늉만 하는 노동운동에 매몰될 것인지 선택은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다들 한결같이 개혁을 주창하고 개혁세력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정작 개혁의 실천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그동안의 한계를 우리는 절감해 왔다. 이제 개혁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 되어야 한다. 이런저런 개혁과제를 들추어내기 보다는 확실한 실천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 한국노총 개혁의 당면한 목표가 되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