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떨린다. 공무원노조 특별법의 시행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 때문은 아니다. ‘공무원도 노동자’라 외치며 사회 통념과 금기를 깨고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탄생한 지 4년. 짧았지만 그 길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었으며 심장에 새긴 동료들의 이름은 또 얼마인가. 가야 할 길이 험하지만 걸어온 길의 의미를 알기에 가슴 떨린다.

공무원 노동자의 단결을 위해 지새운 밤이 없었다면 툭하니 등장한 특별법 앞에 갈팡질팡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담담하다. 조급하지도 두렵지도 않다. 아직 부족함도 많으나 그것을 채우기 위해 비울 수 있는 용기가 있기에 투쟁은 ‘당위’가 아닌 ‘믿음’이다. 14만 조합원에 대한 믿음.

우리 노동조합의 대의원 그리고 조합원은 결코 우매하지 않다. 현실에 대한 판단과 미래를 개척할 지혜가 없어 특별법 거부라는 단순한 결론과 투쟁을 선포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다 밝힐 수 없지만 특별법 하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다양한 경우의 수를 두어가며 연구하고 토론했다.

조합원의 입장에서 국민들의 입장에서 무엇이 과연 현명한 길인지 모색했다. 조직의 실력과 준비에 대한 검토도 치열했다. 일반법 개정, 시행령에 대한 대책, 실질적 교섭력을 확보 방안 등등 다양한 내적 준비도 착실히 하고 있다. 그렇게 분석하고 모색하고 마음을 모아온 과정이 소중하기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조합원님들에게 오히려 미안할 뿐이다. 이런 반론을 쓰는 일 외에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입법의 관점과 태도

학자는 자신의 소견을 밝히면 그만이지만 당사자는 자신의 목줄을 거는 일이다. 쉽게 판단하려야 할 수가 없다. 중식시간을 지켜 집회 하나 하는 것만으로도 목줄을 걸어야 하는 공무원으로 눈물을 머금고 결의했다. 쉬운 길을 몰라서가 아니다. 합법적으로 ‘제대로’ 활동할 수 있다면 누가 그 길을 마다하겠는가. 몰라서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이 아니라 어렵지만 가야 할 길을 택한 것이다.

그 최선의 결정이 특별법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법 시행 자체가 노동권 보장이 아닐 뿐더러 보장을 위한 법이 아닌 통제를 위한 법이라는 것이 문제의 초점이다. 그렇다면 왜 이 길을 가려고 하는가. 공무원노조의 진심은 무엇인가.

한국사회 민주주의가 성큼성큼 전진하고 있을 때, 공무원 노동자는 민주주의를 위해, 정의를 위해 피 흘려 본 경험이 없다. 오히려 민중 탄압의 집행자가 되기도 했으며 잘못된 지시와 지침에 항거하지 못했다. 복지부동 무사안일이라는 국민들의 비판을 받을 때, 고위공직자들이 비리로 배를 불리고 있을 때 복종과 침묵에 익숙했다. 이런 뼈아픈 과거를 어떻게 돌아보고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의 고민이 바로 공무원노조 출발 지점이었다. ‘공직사회 개혁, 부정부패 척결’은 당위적 구호가 아닌 우리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리고 이제 공직사회 개혁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주체가 되고자 한다.

특별법, 잘된 법을 만들고 그 법에 따라 가고 싶다. 그러나 그보다 우리가 더욱 원하는 것이 있다. 정부가 14만 공무원노동자 조직의 실체를 인정하고 공직사회 개혁이라는 진심을 공유하고 신뢰를 만들고 싶은 바람이다. 민중을 위해 버릴 것이 있다면 과감히 버리고 공직사회 개혁, 부정부패 척결을 정부와 함께 하고 싶다. 이것이 진심의 시작과 끝이다. 특별법의 적실성, 교섭의 방향 등은 어쩌면 부차적인 이야기이다.

법 내로 들어가 대화를 해도 될까 말까인데 거부하고 나서면 누가 대화에 나서겠다고 말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입법안만큼 중요한 것이 입법을 하는 관점과 태도이다. 노동3권 중에 얼마를 보장하느냐를 넘어 1권이라도 보장적 측면에서 접근했는가 우리는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누차 우리의 의견을 들어달라 했지만 가장 기초적인 당사자와의 대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특별법이라는 도로가 만들어졌지만 그 진입로가 막혀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지금 노조는 그 진입로를 제대로 만드는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길 어떻게 넓힐 것인가는 다음의 문제이다. 당사자의 의견을 듣거나 논의 과정도 없이 만들어진 길에 그것도 왕복2차선은커녕 1차선도 안 되는 일방통행로를 만들어 놓았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새로운 사회에 걸맞는 공무원노조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공무원이 과거처럼 정부 정책의 대리자, 집행자로 머무른다면 변동하는 시대적 가치에 뒷걸음을 치고 만다는 것이 현실의 교훈이다. 정치적 가치, 공공이익, 소수 보호 문제에 둔감한 것이 아니라 정부시스템 안에서 그 구조와 체계, 운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공무원노동자가 정부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법률과 조례 개정에도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필요하고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노총의 가입이나 민주노동당과의 공동활동도 그래서 제기되는 것이다. 굳이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social movement unionism)니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주의(public service unionism)니 하는 것을 여기서 거론하지는 않겠다.

방폐장 문제로 주민투표를 할 때 주민 설득만을 위해 공무원이 뛰는 것이 아니라 진정 공익을 위해 노조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지가 고민되어야 한다. 사회 양극화로 다수 국민의 삶의 질이 떨어질 때, 사회적 약자를 위해 노조가 무엇을 할 것인지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무원노조가 자신의 경제적 이익, 복리증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면 특별법을 받아들여도 진작 받아들였다.

우리는 선진국 수준에 못해야 하나

이런 것들을 교섭을 통해서만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사례를 살펴보면 분명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에 대해 보수적인 국가도 많으며, 공무원노조가 사회적 역할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곳이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선진국도 그렇지 않는데 우리가 주제 넘게 그런 것을 주장하는가 하는 태도는 잘못되었다.

선진국의 사례도 엄밀히 살펴보면 이미 부정부패척결 등이 국가정책 속에서 해결되어 공무원노조가 이에 대한 사회적 지향성을 가질 이유가 없거나, 공무원 개개인의 정치활동의 자유가 질 높게 보장되어 있거나, 좌파정당의 정당원이 다수를 점하고 있어 굳이 노조가 정치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있다. 교섭구조를 살펴보더라도 교섭 외에 공동결정제(co-determination)나 사회적 합의기구 같은 구조를 통해 국가 정책에 대해 제안하고 결정해 나가는 구조를 가진 곳도 있다.

제도와 관련하여 몇마디 덧붙인다면, 교섭과 관련하여 정부가 가진 위임입법권을 통해 법령제출 의무 조항을 넣거나 의회의 승인을 조건으로 협약을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등의 방안, 정부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갖추는 문제 등은 이 글의 성격 상 차후에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그러나 제도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 사회적 토대와 기풍의 문제이다. 노사협약이 명문화되지 않아도 합의에 대해서는 신의가 지켜지는 나라와 아직도 반노동자적인 사용자측과 전쟁 같은 싸움을 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한마디로 한국사회의 문제는 한국사회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 변혁운동의 역사적 경험과 총화를 바탕으로 한 분석과 전망이 나와야 한다.

이제 화살을 정부에게로 돌려주었으면 한다

특별법의 일부 비판 지점에 대한 강조와 부족하더라도 교섭의 첫 단추를 끼우자는 권고를 노동운동에 대한 애정으로 포장하지 말았으면 한다. 누구의 관점에서 어떤 입장과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의 문제는 여기서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

공무원노조가 바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법 내로 들어가라는 식의 종용을 그만두고 공무원노조가 진정한 합법화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진입로를 잘 만들자고 정부에게 권고했으면 한다. 한국사회 노동운동의 발전을 바라는 진심에서 나온 이야기라면 이제 화살을 정부에게로 돌려주었으면 한다. 박 교수가 갖춘 경력과 실력이라면 그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공무원에 대한 국민정서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이 아프다. 사랑하는 마음을 몰라주는 연인에 대한 감정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조급하게 일치를 구하지는 않겠다. 그것이 비록 짝사랑이라 할지라도 그 진심만은 버리지 않겠다. 일치를 향해 몸부림치며 끝까지 사랑하겠다. 자만하지 않을 뿐더러 움츠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 앞선 노동운동 선배들의 경험을 소중히 하고 노동운동의 새로운 역사는 쓰여 질 것이다. 공무원노조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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