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의 산별노조체제 전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산별노조 조직체계와 산별교섭 의제 및 산별협약의 성격에 대한 논의도 뜨거워지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일부 사람들이 기고문에서 보건의료노조 2004년 산별합의서 10장2조를 문제삼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판단을 지울 수 없다.

이들은 10장2조가 ‘지부의 교섭과 투쟁을 봉쇄’했고, ‘노동조건을 하향평준화 시켰다’고 한다. 그러면서 “산별협약은 ‘통일협약’이어서는 안 되고, ‘(최저)기준협약’이어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10장2조로 인해 ‘모든 문제가 파생됐다’”고 하면서 ‘서울대병원지부의 집단탈퇴’와 ‘공공연맹의 가입승인’ 논란조차 10장2조 탓으로 돌린다.

나상윤 공공연맹 정책위원장이 6월17일자 기고문에서, 정윤광 전 지하철노조위원장이 8월31일자 기고문에서, 정일부 금속노조 정책실장이 지난 9월22일 기고문에서 각각 이와 같은 논지의 주장을 폈다.

그런데 10장2조에 대한 이들의 비판은 구체적 사실에 근거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똑같은 사실에 대해 이중적 잣대를 적용함으로써 논리적 일관성마저 잃고 있다. 구체적인 반론을 대신하여 몇가지 구체적 사실만 갖고 되짚어 반문해 본다.

금속노조 등도 산별협약 우선적용, 통일협약

금속노조가 2003년 및 2004년 산별합의에서 산별협약 우선적용 조항을 합의했다. 또한 공공연맹 산하 소산별노조인 건설엔지니어링노조가 2004년 통일협약을 체결하면서 제1장 2조에 산별협약이 지부협약에 우선한다고 명시했다. 보건의료노조 10장2조(=2005년 산별기본협약 요구 2장1조)는 문제가 되고, 금속노조와 건설엔지니어링노조의 ‘산별협약 우선적용 조항’은 문제가 안 되는가?

보건의료노조는 2004년 산별교섭을 시작하면서 대의원대회에서 “‘주5일제’와 ‘임금인상’을 비롯한 산별 5대 요구는 지부교섭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애초에 지부교섭에서 다루지 않기로 한 것을 산별합의 우선적용 조항으로 명시한 것이 어떻게 지부의 교섭권을 박탈한 근거로 되는가?

또 건설엔지니어링노조는 2004년부터 ‘(최저)기준협약’이 아니라 통일협약을 체결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뭐라 할 것인가? 보건의료노조의 10장2조는 지부교섭권을 봉쇄한 것이고, 건설엔지니어링노조의 산별협약은 그렇지 않은가?

2003년 하반기 양대노총이 총력투쟁을 하고도 주5일제와 관련한 요구를 관철하지 못했으며, 근기법은 개악됐다. 그런 조건에서 보건의료노조는 2004년 14일간의 산별파업을 통해 연월차휴가 감소분은 연차보전수당을 신설해 보전하고, 생리휴가는 보건수당을 신설해 사실상 유급화하는 것을 산하의 4만 조합원이 똑같이 적용받도록 합의했다.

산별교섭이 아닌 지부교섭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공공병원지부들은 정부 가이드라인을 넘기 어려웠을 것이고, 2005년부터 개별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중소병원들도 대부분 개악된 근기법대로 적용됐을 것이다. 사실이 이런데, 무슨 근거로 개악된 근기법보다 상회하는 기준의 합의를 한 것을 두고 노동조건을 하향평준화했다고 주장하는가?

그렇다면 공공연맹 소속 ‘S노조’가 “연차휴가일수를 개정 근기법대로 하고, 생리휴가는 무급으로 하기로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2004년말 노동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280개 공공부문노조 가운데 279개가 연월차휴가와 생리휴가를 (형식상 무급으로하고 수당으로 보전하는) 개정 근기법대로 하는 것으로 합의했는데, 이들 노조도 모두 노동조건을 개악시킨 것으로 보는가? 공공연맹 산하 공공부문노조 중에서 “주5일제도 쟁취하고, 연월차휴가와 생리휴가를 기존 근기법대로 유지한 곳”이 얼마나 되는가?

상향평준화는 미사여구일 뿐

산별교섭에 대한 논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려면 ‘10장2조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산별교섭에 관한 논쟁은 굳이 10장2조를 거론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건강하게 생산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산별노조운동과 관련한 한국적 상황에 대한 진단’에 기초하여, ‘바람직한 산별교섭과 지부교섭 간 교섭의제 배분의 문제’와 ‘올바른 산별협약의 성격’에 대하여 자신의 주장을 펴면 된다.

산별노조운동과 관련한 한국적 상황에 대한 진단은 대부분 비슷하다. 기업별 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하고 있는 전에 없는 사례로, 산별노조라 해도 조합원들의 기업별 의식이 여전히 강하며, 사용자의 지불능력과 기존의 지부단체협약도 기업별로 편차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이러한 한국적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게 산별교섭을 올바로 정착시켜 나가는 것인지 하는 데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산별교섭 의제 설정과 산별협약의 성격 규정의 차이로 나타난다.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논쟁도 결국 이것이었다.

‘기업별 특성이 강한 현실조건’을 중요하게 여기면 ‘기업단위지부의 교섭권’을 강조하게 된다. 산별교섭 의제는 사업장을 넘어서는 ‘임금과 노동조건의 체계’를 만들고, 최저임금제 등 ‘사회임금 영역’을 확대하는 것으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별협약의 성격은 통일협약이어서는 안 되고 ‘(최저)기준협약’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하지만 ‘기업별 특성이 강한 한국적 현실조건’에서 ‘기업단위지부의 교섭권’만 강조하면 산별노조 강화보다는 기업지부별 원심력은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부교섭보다 산별교섭을 중심에 두어야 하며, 조직적 동의가 이뤄지는 한도 내에서는 최대한 산별교섭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옳다. 물론 모든 것을 산별교섭에서만 다루자는 것은 아니며,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또한 사업장을 넘어서는 ‘임금과 노동조건의 체계’를 만들고, 최저임금제 등 ‘사회임금 영역’을 확대하는 것을 산별교섭 의제로 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그 자체는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산별교섭에서 그것만 다루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동의할 수 없다. 그것만으로는 결코 기업별 노동조건의 격차를 해소할 수 없고, 산업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통일시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임금결정권을 기업단위지부에서 가지고 있는 한, 사업장을 넘어서는 산업임금체계 도입은 '그림의 떡'에 그치게 될 것이다.

기업별 노동조건의 격차를 해소하고 산업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통일시켜 나가기 위한 산별노조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과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노동조건에 대해서도 조직적 합의가 가능한 사항부터 차근차근 산별협약으로 통일시켜 나가야 한다.

90% 이상의 기존 지부단체협약에 동일한 내용으로 합의된 사항부터 산별협약으로 통일시켜내는 것이나, 기존 지부단체협약에 없던 사항이라도 산별조합원의 요구가 하나로 모아지는 사항을 산별교섭으로 협약을 체결하는 것이 그런 예가 될 수 있다. 산별임금체계 개편도 산별노조의 통일적 지휘 하에 단계적으로 추진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산별교섭에서 임금체계와 임금수준에 대한 협상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산별협약이 ‘(최저)기준협약’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더 문제가 많다. 이것은 실질적인 교섭은 기업단위지부에서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들이 내세우는 ‘상향평준화’는 미사여구일 뿐 실제로는 기업별 노동조건의 격차가 갈수록 더 벌어지게 된다. 게다가 이 주장은 사실상 산별교섭을 하지 말자는 얘기나 다를 게 없다.

산별협약이 반드시 ‘통일협약’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최저)기준협약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용에 따라 통일협약의 성격을 띠는 조항도 있을 수 있고, (최저)기준으로 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산별협약의 성격을 기계적으로 단정짓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장기적으로 산업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통일시켜 나가는 것이 원칙적 지향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조직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지는 범위 내에서 가능하면 통일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하며, 점차 확대해 나가는 것이 옳다.

전인미답의 길, 서로의 길 존중하자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당부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지금 우리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인미답의 길을 가고 있다. 하기에 우리 앞에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실천을 통해 모범을 창조하고 답을 풀어나가야 한다.

유럽산별노조의 교섭만 하더라도 나라마다 그 역사적 조건과 배경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심지어 독일 안에서조차 금속과 화학의 산별교섭구조가 다르다. 그러므로 특정외국의 특정모델을 수입해서 우리 현실에 그대로 들이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 내에서도 산별조직마다 산별노조 건설방식과 건설시기가 다를 수 있고, 산별교섭 의제 및 방식과 산별협약 체결내용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은 서로가 가는 길을 존중해주는 태도가 중요하다.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에 대해서도 그러한 태도를 가지고 대해야 한다. 보건의료노조는 금속 산별교섭을 두고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또 공공연맹의 산별건설 경로가 보건의료노조와 다르고 건설시기가 한참 뒤쳐져 있다고 하여 시시비비 따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금속노조와 공공연맹의 활동가들도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조직적으로 결정하고 추진한 산별교섭과 그 결과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지금은 각자 자기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길에서 실천적 모범을 창조하는 것이 필요한 때다. 보건의료노조 지도부가 ‘입이 아니라 손발이 필요하다’고 한 것은 바로 그러한 뜻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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