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간 숙제는 머리 아픈 것이다. 그것도 말랑(?)한 선생님한테서 받은 숙제라면 손바닥 몇대를 헌납하는 것으로 대충 때울 요량을 하면 될 일이나, <매일노동뉴스> 같이 깐깐한 선생님한테서 받은 숙제는 그도 아니니 '가방끈도 짧은' 나는 참 머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어쨌거나 한때 자의반 타의반으로 여의도 싸움판을 기웃거린 경력을 어찌 알았는지 귀한 지면을 할애해 주시겠다고 강제와 압박을 가해 온 <매일노동뉴스>를 원망하며 두서없이 자판과 씨름을 시작한다. 다만 나로 인해 그동안 이 지면을 채워 오신 귀한 분들의 글과 <매일노동뉴스>의 수준이 '하향평준화' 됐다는 지적이 쇄도하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매일노동뉴스>의 책임임을 우선 밝혀 두면서….

<변명 하나〉 비정규직 문제

근래 우리 사회의 화두는 단연 비정규직이다. 비정규 노동자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노동단체, 노사정위, 국회, 정당, 정부, 정규직 노조, 시민단체, 나아가서는 국가인권위까지 나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걱정에 앞을 다투어 나서고 있다.

이상하다. 그런데 어째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자고 나면 마냥 늘어만 가고 있는 것일까?

"비정규직 확대는 정규직 고용의 방패막이가 아니라 곧바로 정규직의 고용불안과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합니다.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 노조에서 조직화 하고 그래서 비정규직에 대한 강제적 교섭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함께 살 수 있습니다.”

한때는 총연맹의 간부랍시고 산하조직 간부들을 상대로 이렇게 역설하고 다녔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들어와서 실행에 옮겨보려니 산 너머 산이고 물 건너 물이다.

우선 계약직, 파견직, 협력업체, 일용직 등등 고용형태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고용형태가 다르니 임금 근로조건도 천차만별이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정된 예산과 넉넉지 못한 복지후생의 일부를 나눠야 한다고 현장의 조합원들을 교육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봇물 같은 ‘요구’와 ‘조직관리’를 어떻게 다 감당할 것이냐고 우려하는 일선 간부들을 설득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조합원도 아닌데 적당히 하시라"며 "너무 그러면 조직 문제로 조합이 어려워 질 것”이라고 점잖은 충고까지 곁들여 가며 사용자는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마지막 카드를 생각해 보지만, 고립된 상태로 물리적 투쟁을 동원하는 것 또한 기업의 존폐를 위협당하는 원하청 관계의 기업구조 하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루에도 몇번씩 일어섰다 앉기를 반복하고 빛바랜 깃발을 들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한다. 정말 절박한 의식은 있는 것인가? 수년간의 정규직 생활이 과거 노가다 현장에서 일용직, 임시직 생활의 뼈저린 경험들을 망각하게 한 것인가? 저들의 아픈 몸부림을 정녕 내 것으로 인식하고는 있는 것인가? 끝없이 반문하고 자괴하면서 세월만 죽이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마주치는 그들의 얼굴을 차마 바로 쳐다보지 못하면서….

<변명 둘> 재정자립에 대해서

지난 추석 전에 한 일간지에 박스로 실린 기사 '노총이 임금체불…' 기사를 보면서 ‘참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는 생각과 함께 총연맹 실무 일꾼 동지들의 망연한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저렸다. 그리고 ‘정부의 지원이 끊겨서’와 복지회관 건립 등 ‘방만한 운영’ 때문이라는 친절한(?) 원인 분석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중앙연구원, 지역상담소 운영 등 공익적 성격의 사업에 정당하게 국회에서 편성해주는 예산을 자신들의 쌈짓돈처럼 여기고, 노동단체를 길들이는 무기로 삼으려 한 노동부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방만한 운영은 또 뭔가? 누적된 빛이 2백몇십억이라니 놀랍다. 매달 상급단체 맹비로 수백만원씩의 적지 않은 금액을 꼬박꼬박 납부하는 단위사업장 위원장의 처지에서는 참 억울하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사무총국 동지들 월급도 못준다니, 특별기금이라도 좀 들고 가봐야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다가도, 언 발에 오줌 누는 것 같기도 하고,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오지랖 넓다’는 소리를 들을 것도 같아 망설인다. 그보다 회의 때면 밀려들던 그 번쩍번쩍한 고급 승용차들 생각에 주눅이 들어 에라 그만 고개를 흔들고 만다.

재정 문제가 어디 총연맹뿐이겠는가? 노사관계 로드맵의 결과가 어찌될지는 잘 모르겠으나, 필시 지금보다 나아질 것은 없을 것이고, 2007년이 되면 사업장 내 복수노조와 더불어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등 노동운동에 불어닥칠 큰 위기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아무런 준비를 못하고 있다. 매달 걷는 기본급 1%의 조합비는 절반 가까이를 40여개 지부, 분회에 다시 배분하고, 2~3개월마다 열리는 대대, 중앙위, 집행위, 분과위 등 각종 회의와 상급단체회의, 집회 참석, 70여 곳 사업장의 온갖 행사, 1주일에도 수건씩 발생하는 애경조사, 상급단체 맹비와 각종 협의회비, 전국 오지에 산재한 사업장 순회, 조직관리와 대외활동으로 지출되는 판공비성 비용 등등 절감하고 절감해도 빠듯하다.

집행부를 시작할 때는 예산을 최대한 절감하여 재정자립기금으로 적치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막상 해보니 이상과 현실은 너무 거리가 멀다. 위원장이 쪼잔하게 예산관리까지 한다고 욕을 먹어 가면서도….

그렇다고 수익사업을 할 생각도 하지 못한다. 수익사업을 할 자본금도 없거니와, 지금까지 나는 노동조합의 수익사업이 성공한 케이스를 본 적이 없다. 고작 보험이나 자판기 정도들을 하나, 필시 나중에는 회계와 관련한 잡음으로 조직에 상처만 입는 것을 무수히 보았다.

날마다 달력을 쳐다보며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마음속으론 조급해하면서도 뾰쪽한 묘수가 생각나지 않으니 참 환장할 노릇이다. 임기 끝나고 현장으로 돌아간 뒤, 집행부 물려받은 후배들이 “세월 좋을 때 자기들은 다 해먹고 우리에겐 전임자도 못 넘겨줬다”는 원성을 듣게 될 것이 밤마다 환청으로 들린다.

<변명 셋> 산별 전환과 관련하여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만이 아니더라도, 세계화된 자본에 맞서는 길은 공장과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산별로, 단일대오로 뭉치는 길뿐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운동가는 없다. 그래서 온갖 방해와 기업별 이기주의, 노동자 내부에 존재하는 계급의 차이를 몸으로 극복하며 산별을 완성시켜내는 활동가들과 조직들을 한없는 존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막상 스스로 실행에 옮기는 길은 왜 이리 더디고 더딘 것인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다르고, 원청과 하청이 다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르고, 급여수준과 근로조건이 다르다. 작업복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총연맹과 상급단체가 다르고 위원장들 성향도 다 다르다. 도대체 같은 것은 뭐란 말인가? 오직 ‘유사산업 임금노동자’라는 한 가지 사실. 이것만 가지고 하나로 묶어낸다는 게 과연 가능할 것인가?

길거리로 내동댕이쳐지는 처절함과 생존의 위협을 경험해 보지 않고서도 ‘모든 차이의 극복’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으려면 얼마만한 수련과 내공이 필요할 것인가? 누군가 목숨 걸고 미쳐야 할 텐데 그 ‘미친놈’을 누가 자청할 것인가? 먼저 전환된 산별이 여러 이유로 겪고 있는 파행을 지켜보면서 내가 먼저 나서서 ‘미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비겁한 놈이라고 스스로 자인하고 만다.

<마지막 변명>

이렇게 변명을 늘어놓다보니 스스로 생각해도 영락없는 패배주의자이고 회색분자이고 어용이다. 알고 있던 지인들이 실망을 금치 못한다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좀 미안하긴 하지만.

나는 지난 명절 동안 현장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우리 조합원들을 찾아다녔다. 명절날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현장으로 올라가는 조합원들의 휘어진 등을 바라보며 가슴 저리게 고단한 동료들의 삶을 안타까워하고 내 역할에 대해 고민하였다.

노동운동이 사회적 지탄 대상이 될 때, 혹은 갈짓자 걸음을 걸을 때, 현장에서 나는 참 곤혹스럽다. 예전 같으면 “하는 짓들 이라곤” 하고 빈정거리고 말겠지만 잠시 총연맹에 몸담았다는 원죄가 있고, 속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나로서 누구를 비난하고 비판할 것인가?

오히려 자신이 서 있는 현 위치, 조합원들과 고락을 함께하는 현장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비판하고 반성하고 채찍질한다. 그리고 때로는 이렇게 변명도 한다.

열사도 아니고 투사도 아닌 나는 맨 앞에서 갈 엄두는 못 내지만 게으르게 맨꼴찌로 가거나 힘들다고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시대, ‘노동운동’이라는 고난의 십자가를 메고 가는 모든 활동가 동지들께 존경을 표하고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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