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바지다. 의정활동 3년여 동안 의원입법으로 발의한 조례만 일곱 건이다. 하지만 이번 조례는 또 다르다. 한 여성장애인과의 만남으로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대한 지원을 고민하게 되었고 결국 주민발의로 조례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법적 요건보다 많은 8천명을 넘겨 2만6천여명의 주민 서명을 받았다. 그리고 9월28일이면 ‘장애인자립생활지원조례’ 광주시 청구인 명부 접수 기자회견을 갖는다. 

‘부결’ 의원

조례 하나를 만들 때 마다 사연도 그 만큼 쌓인다. 첫 번째로 발의한 조례는 ‘광주시금고 선정 및 운영조례’였다. 광주시 예산 2조원을 맡기는 금고 은행의 선정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로 시작되었다.

어떻게 지난 33년 동안 한 은행과 줄곧 수의계약했는가. 그리고 타시도 금고 은행과의 이윤을 비교한다. 역시 시금고 운영에 따른 수익의 차이가 크다. 공개경쟁으로 금고 은행을 선정하도록 제안한다. 광주시는 의지가 없다. 그렇다면 조례를 만들어 강제해 가야 한다.

금고 선정방식과 운영에서의 공개성과 투명성 그리고 공정성을 담는 조례 안을 만들었다. 조례모음집을 참고하며 형식을 짰고 시 법무담당관실의 자문을 거쳤다. 다음은 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전체의원 1/5의 서명을 받아야 의원발의가 가능하다. 의원회관에서 대기하며 출근하는 의원들을 찾아 서명을 받기도 하고 그도 모자라 의원의 근무지까지 찾아 나섰다.

그렇게 19명의 의원중 9명의 서명을 받았다. 그런데도 불안했다. 의회 안에 지방은행을 살려야 한다며 조례제정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시의회 의장이 시금고 은행 출신이기도 하다. 시민단체와 간담회를 마련한다. 조례제정 취지를 설명하고 지원을 호소한다. 시민단체가 성명서를 내며 의회에 조례제정을 촉구한다. 그러나 시금고 조례는 부결되었다. 이례적으로 본회의 표결까지 몰아갔지만 결국 결과는 발의 서명 수보다 적게 나왔다. 지방은행의 집요한 로비 결과였다. 
 
두 번째 발의한 조례는 ‘환경시설공단 설치조례’ 개정이었다. 분뇨정화조를 청소하는 노동자들이 때때로 분뇨 수거량을 부풀려 더 많은 요금을 받아왔다며 양심선언을 하였다. 각 구청으로부터 위탁받는 분뇨정화조 업체가 사실은 독점이었다. 노동자들은 민간위탁이 아닌 시나 공적 책임의 강화를 요구하였다. 시청 앞에 농성차량이 24시간 운영되었다. 집회가 정기적으로 개최되었다. 또 긴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광주시의 각종 환경 기초시설을 관리하는 공단에서 이 업무를 맡도록 조례 개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광주시의원들은 작은 정부, 시장만능 논리에 이미 포섭되어 있었다. 개정 조례 안은 부결되었다. 그리고 나도 ‘부결’ 의원이 되었다.

기획이 필요하다      
    
이것저것, 개정해야 할 조례도 많고 제정하고 싶은 조례도 있다. 그런데 연거푸 두 번씩이나 부결되고 나니 힘이 빠진다.  이러다가 아무 일도 못하는 것 아닌가 은근히 불안하다.

아이디어 상태로 묵혀두었던 ‘태양에너지’ 조례를 꺼낸다. 이제 치밀해야 한다. 집행부와 폭넓게 의견을 교환한다. 알겠다. 광주시는 조례를 만들 생각은 있다. 그러나 명분만 갖추어 국비 확보용으로 활용할 셈이다. 광주시를 신재생에너지 도시로 만들겠다는 의지는 약하다. 환경단체를 만난다. 신재생에너지 문제를 가지고 광주시를 어떻게 견인할 것인가 의견을 나눈다. 좋다. 같이 준비하기로 한다. 입법정책실에 연구과제를 준다. 그리고 환경단체, 광주시, 의회와 에너지 관련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토론회를 개최한다. 유가 인상이 연일 방송에 다루어진다. 한 여름 공공기관의 에너지 절약 운동이 형식에 그치고 있다고 폭로된다. 여건이 갖추어 졌다.

이렇게 준비된 ‘광주태양에너지 도시’ 조례는 원안 의결되었다.  이어 ‘광주광역시영유아 보육조례’, ‘5?18 사적지 보존 및 관리조례’ 등이 본회의에서 의결되었다. 마찬가지다. 생각이 같은 의원들의 협조를 구하고 관련 조직이나 단체의 지원을 최대한 조직했다. 그리고 지역 언론을 움직이는 토론 등을 기획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외국인 이주노동자 지원센터 설치조례’는 또 다시 부결되었다. 지방자치단체 사무가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1억원 정도의 예산을 확보해서 외국노동자 관련단체에 지원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늘 진이 빠지다

조례 한 건을 발의할 때 마다 다른 의원들보다 몇 배나 힘이 든다. 한 사람의 민주노동당 의원으로 우선 동료의원들의 서명받기가 만만찮다. 조례의 내용을 보면 공무원들은 부담스러워 한다.

예를 들어 위원회의 구성 방식과 위원장의 선출도 행정 편의대로 구성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위원을 공개 모집하라 하고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하라고 한다. 주민 참여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이다. 그렇다 보니 조례 안에 대한 심의 과정에서도 신경전을 벌여야 한다. 쉽게 쉽게 관행대로, 집행부 의견을 반영해 주자는 의원들의 설득과 공세가 이어진다. 버틴다. 정말 그들 눈으로 보면 사소한 일에 목숨 건다. 타협하면 쉽다.

그러나 그런 조례는 나 말고 어떤 의원도 만들 수 있다. 시민에게 개방적인 행정, 열린 행정은 말 뿐이다. 또 이해관계인들은 저마다의 입장에서 유리한 조항을 넣으려 한다.

보육조례가 특히 그랬다. 교사와 시설장의 이해가 다르다. 법인시설과 가정보육시설의 이해가 또 다르다. 의원들도 대변하는 집단이 다르다. 집행부는 조례보다 더 구체적인 보건복지부의 지침이 있는데 웬 조례냐구 투덜댄다. 조례제정 과정에 참여한 운동단체는 법체계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조항마다 원칙을 담고자 한다. 또 공무원을 믿지 못하기에 세세한 부분까지 모조리 조항에 명시하려 든다. 이제는 운동단체를 설득해야 한다. 조례하나를 만들려면 이렇게 늘 진이 빠진다.     
 
이번에는 주민발의

운동이 그렇듯이 의정활동 역시 늘 주민을, 당사자를 주체로 세우고자 한다. 시민 스스로가 시정의 주인임을 그들과 함께 매번 학인하고 있다.

막바지에 다다른 ‘장애인자립생활지원’조례를 그렇게 준비하고 있다. 애당초 이 조례는 의원발의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의 정도도 많이 다른 의원들과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방안을 논의하기가 쉽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지원 방안을 전혀 새롭게 접근하는 진보적 내용의 조례다.  거기다 예산이 실질적으로 따라야 하는 조례다. 중증장애인들이 이를 악물고 주민 서명 2만 6천장을 받았다. 장애인 당사자의 힘으로, 시민의 지원으로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조례가 이제 제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지 못하고, 법보다 주먹이 먼저고, 법 위에 정치가 있음을 확인할 때면 언제나 씁쓸하다. 하지만 힘의 균형을 맞추고, 약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법 만들기에 오늘도 나는 골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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