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이후 국가도산의 위기에서 당시 정권은 생산적 복지를 택했다. 사회적 보장의 책임을 국가가 져야한다고 외쳤던 민중복지 진영의 반대에도, 엄청난 수혜(?)에 따른 도덕적 해이 방지를 위한 정책목표에 정부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입법화한 당사자들은 동의했다. 이리하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명실공이 모든 국민(인간)의 기초적인 생활을 보장하게 되었고, 보완적 장치로 자활제도를 포함시켰다.

그러나 시행된 지 5년이 지난 지금, 기초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각계각층에서 요구되어지고 있는데, 기초법이 이름값을 못하고 있으니 이를 전면 개정하여 확실한 보장을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자활사업의 빈약한 예산지원

자활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자활후견기관은 전국에 242개소에 이르고 있다. 모두 민간위탁으로써 처음엔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 자활이 인간의 자율적 노동을 중시하고 노동능력을 강화하는 단계적 시스템을 이행하는 곳이라야 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중시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상적인 가치에 손을 들어줄리 없는 정부는 민관협력이 무색하리만큼 제도와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대부분의 후견기관은 민간위탁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지자체의 마인드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이들 후견기관이 1년에 지원받는 운영비는 1억800만원에서 1억5천만원이다. 이마저도 인건비와 임대료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242개 곱하기 1억5천은 큰 예산일 수 있으나, 역으로 쪼개보면 한 기관의 공간과 그에 종사하는 실무자들의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점점 늘어가고 있는 자활참여주민들이 앉을 자리하나 없는 사무실에서 쫓기듯 출퇴근하는 일은 다반사인 것이다. 실무자들의 임금도 4년 동안 동결되어 오다 2004년부터 인상률을 적용했으나, 운영비총액이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는 소용없는 지침이거나, 호봉 높은 실무자가 눈치 보게 되고, 계약직을 양산하게 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게다가 보건복지부는 입법예고를 통해 기초법 일부 개정안을 발표하였는데 이를 살펴보면 개정안의 내용이 자활에 국한한 것도 한심하지만,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노동권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포함한 것은 행정편의적인 억지가 아닐 수 없다. 조건부 이행을 강화하여 노동을 강제화 하면서 노동자가 아니라고 규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단지 그에 따른 예산편성과 노동조합 설립에 의한 투쟁의 화살을 막아보려는 것이 아니고는 다른 이유가 없다. 수급자에 대한 노동권 제한이 자활활성화에 대한 기대로 이어진다는 발상은 담당부처 스스로 비웃음을 자초하는 것이다. 

자활참가자 노동자성 부인은 ‘억지’

애초 자활사업은 탈빈곤이라는 목표를 두고 자활공동체, 창업, 사회적일자리 등의 사업을 진행하였으나, 탈빈곤이 수급에서 탈피하라는 것이라면 그만큼의 사회적 진출에 대한 보장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사회는 그러하지 못하다. 정부는 제도에 안주하려는 태도를 막돼먹은 사람 취급하나, 근로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비정규직에 허덕이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조건을 강화로 강제노동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보다 진출에 대한 상응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보호된 시작을 구축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얼마 전 한 집회에서 만났던 기업의 해고 노동자에게 자활노조 선전물을 건네며 자활을 설명한 적이 있다. 안 그래도 자활이 궁금해서 이리저리 물어보았던 그 노동자는 딱히 시원한 답변을 얻지 못해 자활을 나름대로 오해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이게 바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인데” 라고 무릎을 탁 쳤다.

자활은 사회와 떨어져서 국가가 정한 빈곤선 이하의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다. 자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기업의 해고 노동자일 수 있고, 자영업 운영자일 수 있고, 젊은 20대일수도 있다. 이들에게 질적인 일자리, 보호된 시장, 개별에게 맞도록 전달체계 강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지역·사회적 공공성과 만날 수 있도록 관의 협력과 예산편성으로 위상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활참여자들이 사회로 나가 다시 근로빈곤층이 되는 정책이라면 이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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