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색돼 있는 노정관계의 해법에 대해 한나라당 제5정조위에서 노동문제를 맡고 있는 허미연 실장이 글을 보내 왔다. 이 글은 한나라당의 공식입장은 아니지만, 노정 갈등을 바라보는 한나라당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 방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이 글의 논지에 대한 반론권은 보장된다. <편집자 주>




요즘은 노사관계 당사자가 노동계와 정부가 된 것만 같다. 임단협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노동계와 정부 목소리만 들리고 있다. 사용자측은 덕분에 일을 덜었다고 하면 심한 표현일까? 사용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부가 있다 보니 노정간 대립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비정규직 관련법을 노동부 장관이 불쑥 내밀어서이든, 직권중재와 긴급조정권 발동 때문이든, 노동계 입지 문제 혹은 항간에 떠도는 노정 수뇌부 간 감정적 문제가 덧씌워졌든 간에 노정관계가 많이도 꼬여 있다.

노사는 없고 노정만 있다

게다가 정부는 계획한대로 노사관계 로드맵 입법안을 하반기에 일괄제출 하겠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는 반면, 양대노총이 합의한 비정규 입법과 로드맵 저지 공동투쟁 상설협의체 활동과 11월 투쟁이 예고되어 있어 노정 간 대화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비정규 입법과 로드맵 관련법

비정규 입법은 여전히 하반기 최대 현안이다. 국회 차원의 노사정실무협의도 사실상 무위로 돌아간 터라 다른 협상중개자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차제에 정부여당이 강행처리하지 않을 것이라면 사실상 보류·폐기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느냐는 극단적인 의견까지 있다.

이렇듯 비정규 입법이 난항을 겪는 것은 협상 기술 탓이라기보다는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양산 방지와 권익보호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 차이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정부입법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그대로 떠안고 가게 된다는 한계가 있다.

먼저, 차별시정 절차가 미덥지 못하다.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차별 해소를 위한 시정 절차가 있으나, ‘차별’에 대한 개념이 불분명해 이로 인해 새로운 갈등이 야기될 소지가 크며, 구제신청에 대한 행정적 준비도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법 적용 이후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정밀한 검토가 부족하다. 법이 시행될 경우 근로자는 자신의 신분·지위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으며, 사용자는 기업 활동의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 법의 적용에 따라 노동시장에 미치게 될 영향이나 파급효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 입법은 노사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일자리를 늘리는 등 우리 경제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노동시장 양극화, 원·하청 문제 등을 포함한 노동시장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며, 이 문제가 노사정 대표가 참여하는 협의체에서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고 본다.

한편, 정부는 2년간 노사정위에 사실상 묵혀두었던 노사관계선진화 방안 34개 쟁점 모두를 한꺼번에 이번 하반기에 제출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노사는 이미 2년전 각각 특정 쟁점에 대하여 편파적이라거나 선택적으로 짜깁기했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어 노사 당사자의 공감을 받지 못할 뿐더러 일부 사항을 제외하고는 시급성도 떨어져 내년 상반기까지는 사실상 논의되기 어려울 것이며, 또다른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입법 수순을 밟는다면 시기상 반드시 필요한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 등을 먼저 다루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2007년 복수노조 허용에 따라 법 정비가 필연적이어서 노동계가 주체적으로 참여해야만 하는 의제이기 때문이다.

'대타협'은 가능한가

노정 간 경색 국면에서 과연 사회적 대타협은 이루어질 수 있는가? 현재로선 어불성설이다.

국민의 정부 이후 노사 대타협, 사회협약에 대한 희망이 회자되었다. 바세나 협약, 아일랜드 협약, 스페인 개혁 등 유럽의 다양한 사회협약 성공사례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었고, 외국사례가 우리에게 맞느니 풍토가 다르니 우리만의 고유한 협약을 만들자는 등 많은 의견이 제시되었다.

사실 참여정부 초기에는 사회협약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았다. 작년에 있었던 ‘일자리 창출 사회협약’은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담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동노력 하자던 약속이 지금은 한낱 기념사진만 남겨 놓은 채 공염불에 불과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사회협약이 불가능한가? 아니 정확히 말해서 실천할 수 있는 사회협약이 가능한가?

지금 상황에서 또 사회협약 운운하면 노사 쌍방이 ‘될 턱이 있나’라고 할 것이다. ‘일정대로 추진’과 ‘대격돌’이라는 서로 자진(自殄)하겠다는 모양새로는 대타협은 허구에 불과하다. 사회원로, 학자, NGO 등에서 노사정 간 논의를 붙여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분들의 걱정과 노력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보자면 노사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지 않는 것은 ‘아직은’ 서로 살 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벤치마킹 대상인 선진 모델도 협력하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솥뚜껑이 내팽개쳐지고, 언제 회사가 문을 닫을지 또 언제 잘릴지 모르는 근로자가 늘어나도 노사정은 모른 척만 할 것인가? 실질 성장률이 제로, 마이너스로 몇해가 지나야만 사업주 탓, 근로자 탓, 정부 탓을 안 할 것인가?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하자

이제 노동계와 정부는 국민과 경제를 무시한 소모적인 갈등을 중단해야 한다. 서로 명분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끝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선 노사 대화 채널을 살리자. 작년의 ‘사회적 대화’를 복원해야만 한다. 지금처럼 실무적인 대화마저 끊긴 상황에서 노정 문제에 매달리기보다는 노사 간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길이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노사정위 역할에 대한 논란이 많은 만큼 그후에 노사정위 개편 또는 폐지, 사회협약 체결 등 다른 노사 채널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수순이라고 본다. 뭔가 실적과 홍보를 위해 정부가 나서서 만드는 조직이 아닌 과거 노개위처럼 노사와 전문가로 구성된 논의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노사가 협상 당사자이고, 정부는 조정자에 머물러 노사합의 도출을 위해 노력하고, 최종적인 정책결정자로 남자는 것이다. 또한 운영의 묘를 살려 ‘참여해야 이익이 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어느 사회나 참여를 통한 타협정신은 존중받아야 한다. 현재 한국노총은 타협 노력의 실효성에 대해 회의를 갖고 투쟁대열 전면에 서 있지만, 내부에서도 많은 고민들이 있으리라고 본다. 그간의 타협 주체로서의 노력들이 결코 사장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이해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대결이 요구되는 시대는 갔다. 이제는 유연하고 미래 지향적인 그룹이 리더가 된다. 청와대로부터 우중(愚衆)이라 불리는 우리 국민이지만 매섭게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이 바로 국민이다. 정치인만이 아니라 이미 공공성을 가진 노조도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자리 창출에 ‘올인’해야

노사 대화 창구에서 최우선적으로 다뤄야 할 의제는 ‘일자리 창출 사회협약’ 구체화 방안이다. 일자리 문제는 국민의 최대 민생문제이자, 비교적 갈등 요소가 적어 노사가 원만히 합의할 수 있다고 본다.

일자리를 더 만들기 위해서는 노사정 공동노력이 필요하다. 기업은 국내투자 확대와 파트너십, 정부는 투자 분위기 조성과 인프라 구축, 노동계는 근로 효율성 제고를 위해 힘써야 한다. 그리고 노사관계 안정을 위해 공동노력 해야 한다.

사회협약에 포함된 임금인상자제, 고용보장 및 비정규직 보호는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부정적인 면만 보면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풀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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