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는 소식을 귀경길 고속도로에서 연합뉴스 기자로부터 들었다. 아침 뉴스보도 때까지만 해도 타결이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예상을 뒤엎고 결론이 났다. 올초 설 연휴 다음날 북 외무성의 핵무기 보유 공식 발표 이후 추석 연휴까지 2005년은 명절을 북핵 문제로 장식한 셈이다.

기자에게 구두논평을 한 뒤 이지안 대변인실 언론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논평 요지를 이야기해서 공식 대변인 논평을 냈다. 논평 마무리를 미국의 적대정책 비판과 전향적 태도 촉구로 맞췄다. 격론은 아니었으나 논평에 비판과 반비판의 쪽글이 달렸는데 ‘미국 비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과 ‘북핵 문제에 대한 원칙적 입장이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6자회담 타결에 대한 논평에 북핵 보유 유감 또는 비판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포괄적으로 동북아 평화를 언급하는 정도가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북핵문제에 대한 당내 논란에서 비롯된 것을 모르지 않기에 한번쯤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비핵화가 당론 아닌가요?”

추석연휴 다음날 바로 열린 의원단총회에서 권영길 의원이 모두발언에서도 밝혔듯이 “경수로 제공 문제와 평화적 핵 이용권이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북이 “합의는 해놓고 이행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도 생길 수 있으며” 북핵문제가 아직 종료된 것은 아니다.

이 문제가 우리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언제든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고 우리는 그때 또다시 논란을 겪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 문제는 내가 대변인이 된 후에 당내에서 벌어진 가장 큰 논란 가운데 하나였기에 이에 대한 당의 대응은 물론 대변인으로서의 나의 대응에 대해서도 성찰의 기회가 필요하다.

올해 2월 북 외무성 핵무기 보유선언 직후에도 연합뉴스 기자의 전화를 제일 먼저 받았다. ‘북핵문제에 대한 우려’와 ‘미국의 대북 강경책이 원인’이라는 양비론적 입장으로 구두논평을 하며 기자에게 당내 논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심경을 이야기 했다. 그 점에 대해 ‘비핵화 원칙’을 분명히 하면서 ‘미국 비판’을 동시에 하는 게 민주노동당 당론이 아니냐며 의아스럽다는 기자의 의견을 들었다.

공식논평을 내려고 당사로 가던 중 최고위원회에서 긴급하게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으니 공식논평을 회의 결과 브리핑으로 처리하자는 전화 연락을 받았다. 회의 전 기획조정회의에 정책위 제1정조위 남북관계 담당 연구원의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북핵 보유에 대한 당의 원칙적 비판 입장이 빠져 있는 보고서였다. 기획조정회의 논의를 거친 후 보고서가 초안대로 최고위원회에 제출되었다. 최고위원회에서 북한의 핵보유에 대한 우려 입장을 구두논평 했으며 보고서 내용과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밝혔고, 이에 대해 최고위원회에서 논의할 것을 주문했다.

비핵화 원칙에 기반한 북핵보유에 대한 비판 입장을 공식 브리핑에 포함할지 여부가 논란이 되었다. ‘북한의 핵 보유 단계가 무기 이전 단계이며 협상용이라는 점’, ‘북핵문제를 야기한 것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인데 북핵 보유에 대한 비판이 이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는 점’, ‘북미 핵공방을 풀기 위한 남한의 외교적 노력에 도움이 안 된다는 점’ 등 대동소이한 논리들이었다.

중앙위의 격론…반려된 안건

본인 스스로 ‘핵주권 옹호론’을 펼치거나 민주노동당의 강령인 ‘비핵화 원칙’에 반대한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남북이 상호합의 한 ‘한반도 비핵화 원칙’ 파기에 대해 원칙적인 비판을 하는 것은 다수가 불가 입장을 제시한 것이다.

논란 끝에 이정미 최고위원의 수정제안으로 “민주노동당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해 온 정당으로서 이번 외무성 성명으로 한반도 긴장이 더욱 고조될 수 있다는 국민적 우려를 불식시키고 북미 사이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로 최종 입장을 정리했다.

브리핑 이후 곧바로 당원들의 찬반 양론 쪽글이 달리고 당 게시판에서도 격론이 벌어졌다. 이후 2월19~20일 중앙위원 발의로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위한 특별결의안 채택의 건’이 올라왔다. 찬반 논쟁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권영길 의원이 원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초당적 결의안을 준비하고 있으니 의원단 총회에 위임해 달라는 주문을 했다.

그러나 이정미 최고위원의 안건반려안이 제출되어 성원 200명 중 118명이 찬성해 안건이 반려되었다. 이정미 최고위원의 반려안 요지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를 위해 민주노동당이 외교적 노력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결의안이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었다.

이 안은 이후 당대회 대의원 발의로 다시 안건이 상정되었으나 유예되어 처리되지 못하였고 그 다음 3월26일 열린 중앙위원회에 재상정 되었으나 재석 243명 중 114명 찬성으로 부결되었다. 반대토론의 요지는 ‘핵보유 유감 표명이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라는 본질을 가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비핵화는 반북의식?

중앙위원회 전 당 환경위원회는 별도로 ‘평화적 핵 이용을 포함한 모든 핵 반대’ 입장을 부서의 입장으로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중앙위원회 결의안 부결로 공식 당론은 최고위원회 결정 사항으로 남게 되었으나 이 문제로 당내 논란도 계속되었고 진보진영 내에서 민주노동당의 ‘진보성의 한계’로 종종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내가 고민했던 것은 민주노동당과 다른 당이 똑같이 북 핵 보유에 대한 유감 표명을 하는 것이 일면 ‘비핵화 원칙’과 ‘왜곡된 한미동맹 혹은 반북의식’으로 뭉뚱그려진 진보에 반하는 입장과 동일시 될 우려였다. 그러나 그런 고민은 아예 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이후 북핵문제 공방에 대한 입장을 낼 때마다 최고위원회 결정에 묶여 있는 입장이 많이 불편했다.

최대한 당내 논란을 피하는 정도로 입장을 정리했지만 이 문제는 나의 대변인으로서 활동 전체를 아쉽게 하는 대목이다.

조선사회민주당과 정당교류 이후 방북 평가에서 당대당 교류가 민간 교류와 다르다는 점을 방북단 공히 이견 없이 평가했을 때 주요하게 지적된 내용 중의 하나가 ‘협상’의 방식이었다. 지난 방북 최대의 관심이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 만남’이 성사되지 않은 것에 대해 우리측에서도 방북 규모부터 의제까지 방북의 목적을 구체화하고 그 목표를 정점에 두고 ‘협상’을 했어야 한다는 심상정 의원의 평가에 대해 누구도 반대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북핵 논란과 맥을 같이 하는 문제는 아니나 통일을 지향하는 민주노동당의 북한에 대한 태도에서 이번 방북에 대한 평가가 하나의 이정표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이번 방북 초행길에서 내가 간접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차이를 발견했고 상상 이상의 무한한 동포애를 간직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통일로 가기 위해서도 우리가 갖고 있는 ‘북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당의 원칙을 견지하는 게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정치행위 부족 아쉬움으로 남는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문주 이야기>에 남긴 일화가 떠올랐다. 1994년 북핵문제가 뉴스의 초점이 되던 때였다. 이회창 총리가 국무회의에서 남 장관에게 주무와는 무관한 북핵문제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는 이야기다.

남 장관은 정부의 북핵문제 대응에 대해 외무장관으로 창구 단일화 하지 않고 비서실장이 다루는 문제에 대해 비판적 문제의식을 제기했고, 이회창 총리는 남 장관 발언을 들은 직후 국무회의를 정리했다고 한다. 남 장관의 직언을 아끼지 않는 발언을 예상하고 그렇게 했을 것이다. YS가 북핵문제에 대해 총리를 제치고 비서실장이 주도하게 한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그렇게 드러냈다는 것. 이후 YS와 이회창은 파경을 맞이했다.

북핵문제에 대한 입장 혹은 이회창 전 총리에 대한 호 불호를 떠나 그 정치적 행위가 인상 깊게 읽힌 것은 나의 대변인으로서의 태도에 대한 깊은 아쉬움 때문이었다. 북핵문제는 앞으로도 우리 당에서 계속 논란이 될 것이다.

내가 이 문제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중점을 둔 것은 나의 정치행위의 부족함에 대한 평가이다. 이 평가가 당내 논란에 불신의 골을 깊게 하기보다 당내 논쟁의 깊이를 더하고 당론 결정을 정치화 하는데 따뜻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면 그나마 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을 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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