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사회적 책임투자운동이 낯설게 들리지만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서는 그 역사와 전통이 꽤 깊다. 초기에는 감리교와 퀘이커(Quaker) 교도 등 교회단체와 자선재단 등이 주도적 역할을 했지만, 80년대 이후에는 환경운동단체를 포함한 시민단체(NGOs), 뮤추얼펀드(Mutual Fund), 공적 연기금, 미국의 노조연금(Union Fund : Taft-Hartley Fund) 및 캐나다의 노조 주도 투자기금(Labour-sponsored investment fund) 등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가세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초국적 거대기업 및 새로운 금융자본마저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 강화와 사회적 책임투자를 제기하고 나섬으로써 사회적 책임투자운동의 성격이 훨씬 복잡다단해졌다.

사회적 책임투자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분리 안돼

사회적 책임투자운동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 CSR) 내지 기업시민권(corporate citizenship)을 강화하는 운동과 맞물려 전개되고 있는 이상, 사회적 책임투자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사회적 책임투자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면에서 사회적 책임투자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이란 기업이 자신의 활동 기반이 되는 사회와 이해당사자들에 대해 지게 되는 책임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대상영역은 주로 인권·노동기본권의 보호, 소비자에 대한 안전한 제품·서비스의 제공, 공정한 경쟁조건의 확보,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 환경보호, 투명한 기업지배구조 등 극히 다양하다. 그리고 개개 기업에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성(CSR)의 구체적 내용은 기업의 사업내용, 사업 활동을 수행하는 국가 및 지역 그리고 시장의 특성, 나아가 그때 그때의 시대적 요청 등을 반영하여 달리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기업이 주주가치 극대화 경영만 하면 사회적 책임성을 다한다고 보는 밀튼 프리드만(M. Friedman) 류의 기업관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을 기대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사회적 책임투자는 위에서 정의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쉽게 끌어낼 수 있다. 사회적 책임투자란 종교·자선단체, 환경운동단체 등 시민단체, 일부 뮤추얼펀드, 공적 연기금, 노조연금과 투자기금, 그리고 사회적 책임투자회사 등이 포트폴리오를 선정하고 운용하는 데 있어서 단순히 종래의 재무·금융 분석에 따른 투자기준 내지 금융수익성 기준이 아니라 환경보호, 인권 및 노동권보호, 협력적 노사관계 및 인적자본투자, 소비자의 효용 극대화,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등 사회·윤리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으로써 사회적 책임투자는 사회, 환경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대해 투자하여 이들 기업이 보다 책임 있는 기업시민이 되도록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책임투자의 다양한 사례들

이중 캘버트(Calvert), KLD, FTSE 등 사회적 책임투자 회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지수를 개발·공표함으로써 다른 연기금들이 사회적 책임투자에 관여할 수 있도록 제반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동시에 이들은 펀드를 조성하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탁월하게 수행하는 기업들에 직접 투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KLD사의 창업자 중의 한 사람인 도미니(A.Domini)는 사회적 형평기금(social equity fund)을 설립하여 직접 사회적 책임투자에 착수하였다. 이외에도 이들은 뮤추얼펀드, 각종 공적 연기금 심지어 노조연금 및 투자기금이 사회적 책임투자를 하고자 할 때 다양한 자문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회적 책임투자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자, 영국, 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는 사회적 책임투자가 입법화되기에 이르렀다. 영국에서는 2000년 7월부터 직역연금과 지방정부연금의 수탁자들로 하여금 사회적 책임투자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도록 명시했다. 이와 동시에 기업들이 사회·환경지침을 수용하도록 함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자 했다.

호주에서도 2002년 연기금에 사회적 책임투자에 대한 준수를 공시하도록 함과 동시에 증권투자거래위원회에 이 준수 여부를 감시하도록 했다. 이 밖에 독일의 녹색당은 2001년 Reister 연금개혁법안에 사회적 책임투자(SRI)조항을 삽입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볼 때 영미형 자본주의에서 사회적 책임투자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이행 정도는 아직 미미하다. 왜냐하면 영미형 사회에서는 기업의 주인이 주주(shareholder)이고 따라서 주주의 이해를 극대화하도록 기업을 경영해야 한다는 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업이 주주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적 책임성을 갖는 사회적 제도라는 관념이 희박하다. 또한 금융수익성(포트폴리오가치)의 극대화라는 수탁자책임원리(fiduciary duty)가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의 수탁자들에게 엄격하게 부과되어 있다는 점도 연기금의 사회적 책임투자를 제약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윤리적 목적이 항상 자본시장의 강제와 주가극대화논리에 의해 주변화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결과 사회적 책임투자펀드의 매니저들은 투자대상 기업의 주요결정에 영향을 줄만큼 시장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사회적 책임투자를 수행하는 펀드의 규모도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그나마 이탈(exit)전략보다는 적극적인 개입(voice)을 행사할 수 있는 거대 연기금이 기업연금과 뮤추얼 펀드보다는 사회적 책임투자를 수행하기에 더 적합하다. 이런 점에서 기업행태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려면 거대연기금이 사회적 책임투자에 대거 참여할 필요가 있다.

퀘벡주의 노조 주도 사회투자기금의 시사점

기업지배구조에서든 연금지배구조에서든 주주가치극대화와 수탁자책임원리보다는 주주와 경영자 이외에 종업원, 고객, 지역사회, 공급자 등 기업의 주요 이해당사자(stakeholder)의 이해를 종합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캐나다 퀘벡 주의 연기금과 노조 주도의 사회투자기금이 보여준 여러가지 시도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대부분의 연금기금과 뮤추얼 펀드가 보유 자산의 운용에서 노동자들의 참여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는 데 비해 퀘벡주 연기금과 사회투자기금에서는 미국의 태프트-하틀리 펀드(일명 노조기금)와 네덜란드의 기업연금에서처럼 노동자대표가 기금의 포트폴리오 운용의 기본 방침을 정하는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이사회 구성에 기초하여 퀘벡 주의 연기금과 사회투자기금은 퀘벡 주의 고용창출과 환경보호,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나아가 지역개발을 중시하는 사회적 책임투자를 가장 모범적이고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다. 노조가 주도하고 있는 퀘벡주의 연기금과 사회투자기금의 실험은 시민운동단체를 중심으로 사회적 책임투자운동 및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고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과 교훈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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