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공동선언 5주년을 맞는 올해 통일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통일운동에서 소극적이었던 세력까지 망라한, 그야말로 각계각층이 함께하는 6.15공동위원회 발족이 바로 그것이다. 서울은 물론 각 지역에서 발족한 6.15공동위원회가 노래자랑, 영화제, 문화제 등의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하여 6.15공동선언 정신대로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합시다!’라는 목소리를 온 국민의 마음에 퍼지게 하고 있다.

특히,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된 통일축구대회에서 6만의 남측민중과 북측대표단이 함께 외쳤던 ‘통일조국’의 함성은 ‘우리의 소원’이 ‘현실’로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끼게 해 준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통일을 향한 여성의 큰 걸음이 시작되다

그 감동이 채 식기도 전 6.15공동위원회 여성본부에서 ‘여성의 힘으로 통일을 열자!’는 구호를 들고 분단 이후 가장 큰 규모인 100명의 여성대표단을 구성하여 9월10일부터 14일까지 4박5일의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다. 실로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고도 통일수레의 한 바퀴를 담당하지 못했던 여성들이 통일의 역사를 여는 큰 걸음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2005년 남북여성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100명의 여성들은 그 구성도 다양하였다. 3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뿐만 아니라 그들이 몸담고 있는 곳도 다채로웠는데 여야정당의 국회의원은 물론 변호사, 교수, 학자, 한의사, 기업인, 언론인, 정당인, 중앙 및 지역여성단체, 각급시민사회단체 등의 각급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이 대표단으로 구성되었다.

이런 다양한 구성에도 100명의 대표단 모두는 낯설 것 같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야할 반쪽을 만날 설레임을 애써 감추지 않은 채 아침 일찍부터 인천국제공항에 모여 평양행 고려항공기에 올랐다. ‘와’하는 함성과 박수소리 속에 도착한 평양하늘의 첫 광경은 ‘이곳은 사회주의다!’라고 말하는 듯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정리된 논과 밭이었다.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주위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무엇이 우리와 다를까?’ ‘무엇이 우리를 닮았을까?’라는 궁금증에 가득 찬 눈망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고운 조선옷의 여맹환영단을 보면서도 평양에 온 것이 실감되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낯익은 자연풍경과 친숙한 얼굴들 때문일 것이다. 

통일은 남과 북이 만나는 그 자리에 있다

평양에 온 것이 실감난 것은 그 다음날인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받은 선물을 전시해 놓은 ‘친선 교류관’을 방문한 날이 되어서였다. ‘제가 받은 선물이지만 이 모두는 인민의 것이기에 인민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라며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한 진귀한 선물들을 보면서 자본주의라면 불가능했을 지도자의 모습에서 이곳이 바로 ‘북쪽’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일정 내내 함께 했던 북측대표단과의 만남에서 내린 결론 또한 제도는 달라도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는 것이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아이와 남편, 그리고 삶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창광유치원과, 평양산원을 방문하면서 아이를 낳기도, 키우기도 좋겠다며 입을 모으는 남측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모두 같은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모란 제1중학교의 학생들의 감동적인 공연과 그 곳에 명예학생으로 등록된 고 심미선, 신효순양의 영정이 있는 책상을 보면서 그 마음이 고마워서 그리고 우리가 한 핏줄이라는 이유 하나로도 만나야 한다는 뜨거운 마음에 서로 눈물 흘렸다. 각양각색의 100명의 여성들이 함께 했지만 평양에서 돌아오면서 가진 하나의 마음은 바로 ‘언젠가는 만나야 하며 그것도 빨리 만났으면…’ 하는 것이다.

통일은 멀리 있지 않았다. 회갑을 맞아 금강산을 다녀오신 나의 부모님도 ‘왜 통일이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렇다. 통일은 남과 북이 만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이 만남에서 우리 민족끼리 힘과 마음을 합친다면 통일은 금방이라도 오지 않을까? 당분간 깨끗한 평양의 거리풍경과 맑은 공기, 양각도 호텔과 묘향산의 향산 호텔에서 먹은 맛있는 음식들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