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혁 동지가 자결한지 며칠 되지 않아 또 한 명의 비정규노동자가 자기 몸을 불사르고 마침내 운명하였다. 지난 6월 특수고용노동자 생존권 보장을 위해 투쟁하다 산화한 김태환 열사에 이어 올해만 벌써 세 번째다.

언론에 보도된 김동윤 동지의 모습은 투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선하고 여린 모습이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말해주듯 김동윤 동지는 가족의 행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평범한 생활인이었을 것이다. 달랑 전세방에 남게 될 사랑하는 부인과 어린 두 딸에 대한 걱정은 오죽했을까. 그런 그가 분신을 선택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열혈청년학생이 아닌 오십 고개를 바라보는 평범한 노동자가 자기 몸을 불사를 수밖에 없는 현실은 사회양극화로 치닫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단면이다. 

오십고개 노동자가 죽음을 선택하는 사회

하지만 정부는 말이 없다. 한마디 사과조차 없다. 그나마 김태환 열사 때처럼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일어난 사건이다’라는 식의 말로 자극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될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선진노사관계’를 위한 로드맵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완전 코미디다. 1인당 국민소득 1만4천불 시대에 노동자의 기본 생계가 파탄나는가 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 계속돼도 정부가 이를 방치하는 상황에서 ‘선진노사관계’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 노동부는 당연히 비정규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기본권을 먼저 챙겨야 한다.

그러나 노동부는 거꾸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입법을 추진할 뿐이다. 그나마 자신들이 만든 입법안이 수정되는 것에 반발하여 사회적 대화를 통한 비정규직입법 논의를 외면하였다. 결국 노정관계는 파탄이 났고,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이제 와서 노정관계 파탄의 장본인인 노동부장관이 로드맵을 논의하자고 제의하고 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로드맵의 내용에도 문제가 많다.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전임자임금 지급 여부는 입법적 관여 사항이 아니므로 법개정 할 것’을 수차례 권고한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외면한 채 ‘법으로 정한 일정수의 전임자는 예외로 한다’는 수정안을 통해 노동조합에 대한 통제를 기도하고 있다. 반면 노동조합의 쟁의권 억제와 같은 내용에서는 ‘국제기준’을 들먹이고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지 말아라

노정관계가 파탄난지 오래됐다. 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전원이 사퇴하고, ILO 아태지역 총회 불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이 동원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정부가 노정관계 회복을 위해서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의 어느 누구도 꿈쩍하지 않고 있다. 한 라디오프로의 진행자조차 ‘오늘 노동부장관과 인터뷰해보니까 노동계로서도 참 대화하기 어려운 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일견 갖기도 했다’라고 할 정도이다. 노동계가 퇴진을 요구하면 할수록 노동부장관은 경질되지 않을 거라는 얘기가 들린다.

하지만 역사가 주는 교훈을 정부는 기억해야 한다. 지난 1996년 김영삼 정권은 노사간의 합의안조차 무시하고,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그 결과 양대노총의 전국적인 총파업투쟁에 결국 김영삼 정권은 국민 앞에 사과하고 노동법을 재개정하였다.

현재의 구도 하에서 노정관계 회복은 불가능하다. 비정규직 문제가 곪을 대로 곪은 상태에서 비정규직의 양산을 획책하는 입법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 더 이상 비정규노동자들의 죽음이 계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하반기 비정규보호입법 쟁취는 최우선의 과제이다. 나아가 정부가 일방적으로 ‘로드맵’을 강행할 경우 양대노총은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1

0년 전과 같은 노동계의 전국적 총파업투쟁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라도 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이나 총리가 나설 것을 촉구한다. 한국노총은 노동부장관이 퇴진하고 새판이 짜인다면 사회적 대화를 통해 비정규입법과 로드맵을 논의할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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