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말 전국공무원노조는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내년 1월말, 공무원 노조법이 발효되더라도 설립신고서를 제출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노조활동의 곳곳에 가시철망을 들이대는 ‘공무원 노조 특별악법’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강경한 표현인 셈이다.

공무원 노조법이 적잖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사실은 어렵잖게 인정할 수 있다. 국제노동기준에도 어긋나는 단결권의 과도한 제한은 그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이런 점에서 공무원 노조가 법개정을 노조의 생존차원으로 인식하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전국공무원노조가 노조의 합법화까지 거부하며 전면투쟁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그나마 애써 잡은 새를 날려 보내는 빗나간 화살이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낳는다.

다시 말해 사실상 14만 조합원을 포괄하는 전국최대의 단일노조이자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 이루어진 조직으로서는 무책임한 결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과연 노조활동은 불가능한가?

전국공무원 노조의 한 간부는 현 특별악법은 당나귀 귀 빼고 X 빼듯이 노조활동의 기본권조차 박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3권은커녕 합산하더라도 채 1권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과연 그러한가? 지난 번 글(“공무원노조, 이제는 단체교섭이다”, 레이버투데이 8. 23일자)에서도 밝혔듯이 노조의 기본활동에 속하는 단체교섭에 관한 규정은 몇 가지의 사족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법’에 속한다. 법은 으레 그렇듯 얼개만 그릴뿐 나머지 빈공간은 시행령이나 구체적인 교섭을 통해 채워나가야 한다. 그것은 고스란히 노사 모두의 과제로 남아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양측 교섭대표단의 구성이나 교섭권의 위임, 교섭의제의 설정, 교섭결과의 구속력 보장 등이 포함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법이 최소한의 기준이 아니라 최대한의 한계치로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공무원노조법의 개정이 중요하다면 합법조직을 기반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게 차라리 현실적이지 않을까 하는 게 두 번째 물음이다.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한 법이 시행도 해보기 전에 쉬이 바뀔 것으로 보이지도 않지만 시행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그것이 국민의 공감대를 얻기 전에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체교섭은 물론이거니와 공무원 세계로 파고드는 신자유주의를 분쇄하고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라도 조직의 합법화는 중요한 전제가 된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노조도 새로운 노사관계 위한 사명 있다

셋째는 만일 경쟁노조(가령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가 설립신고서를 제출하고 교섭을 할 경우 전국공무원노조는 팔짱만 끼고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간부와 조합원 사이의 의식격차가 분명한 가운데 조합원들이 손에 잡히는 성과를 요구할 때 전국공무원노조는 역으로 조합원에게 투사가 될 것을 요구한다면 이는 조직의 생존 및 운영의 기본과 연관된다. 노동운동은 대중운동이자 현실운동이라는 사실은 비단 공무원 노조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밑으로부터의 반란’이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표현이라면 이러한 민주주의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조합은 없다.

마지막으로 현재 정부는 공무원노조법의 제정에 이어 시행령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마 여기에는 구체적인 노동조합 가입범위와 노조의 운영, 교섭의 구조 및 절차, 그리고 분쟁의 해결과정이 포함될 것이다. 공무원노조법을 부정함으로써 전국공무원노조는 결과적으로 시행령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내적 명분을 놓치고 있다. 정말이지 시행령 따위는 한낱 종이쪽지에 불과할 것인가? 시행령의 입법이 예고되어도 전국공무원노조는 얼음에 박밀 듯이 특별악법의 무력화만을 되풀이할 것인가? 그것이 자칫 게도 구럭도 함께 잃는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은 없는가?

공무원 노사관계는 불신과 대립의 연속으로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노사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할 사명을 갖기도 한다. 여기에는 정부가 모범사용자로서 기능하는 것 못지않게 합리적 노사관계의 관행을 정착시키려는 노동조합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더욱이 공무원 노동운동은 정부를 사용자로 할 뿐 아니라 공무원의 역할이 국민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박고 있다는 점에서 여론을 먹고사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들만의 리그에 갇혀 여론을 흥부집 뒷담의 호박 떨어지는 소리로 여긴다면 그것은 결국 노동조합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말 것이다.

합법화가 노조역량 강화의 출발점

공무원이니까 솔선수범하여 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법 만능주의가 아니라면 모든 것을 법에만 의존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노조활동의 많은 부분은 관례와 관습이 채워나가게 마련이다. 단체교섭 그 자체가 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지만 노동조합의 활동도 판례의 축적을 통해 법을 만들어가는 과정, 즉 사적인 입법과정에 속한다. 이 과정에서는 노사간의 힘 관계가 커다란 역할을 한다면 노조는 합법화를 포기함으로써 스스로 힘을 축적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먼저 던져버리는 것은 아닌가?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전면거부가 아니라 비판적 개입과 참여전략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노동조합이 공무원노조법 반대라는 지난 해 파업 이래 지켜온 노선의 관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때로는 이 땅 노동운동의 운명이기도 하다. 또한 현행법에서 설립신고서를 제출한들 비공무원(해고자)의 참여를 이유로 반려될 게 뻔하다는 지적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노조가 공무원노조법 무력화투쟁에 올인한다면 언론의 여론몰이와 국민들의 냉소적인 반응에 이어 정부의 강경대응이 따를 것이란 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어느 간부는 조직이 공중분해 될 수 있다는 비장한 심정으로 투쟁에 나선다고 말하고 있다. 노동운동이 독립운동이라도 되는 양 더 이상 비장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주관적인 비장감이 사회적으로 공감된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이 최선의 결정인가?

공무원 노조는 공무원 노동자들만의 조직은 아니다. 그것은 오랜 기간에 걸친 이 땅 노동운동의 피땀 어린 성과이자 노동운동의 방향타를 결정할 나침반이기도 하다. 공무원 노조의 투쟁이 공무원 노사관계의 내실 있는 정착을 뒤로 미루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펼쳐진다면 그것은 노동조합으로서도 ‘재는 넘을수록 높아지는’ 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기존 노동운동의 비판적 재구성을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립이라는 시대적 요구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전국공무원노조의 ‘공무원노조 특별악법 무력화 투쟁’ 방침을 접하면서 “과연 그것이 최선의 결정이었는가?”를 다시 전국공무원노조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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