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2005년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총회를 하루 앞둔 지금 “원하청 공동투쟁으로 불법파견 철폐하고 정규직화 쟁취하자”고 만들어진 연대회의 전략기획팀 중 한 명으로서 막막한 심정이다.

고 류기혁 동지의 자결, 철탑고공농성, 대책위구성 논란과 함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2005년 임단협 잠정합의를 전후해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지난 1월18일 5공장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탈의실 점거농성을 시작한 지 8개월이 가까워 오는 지금, 끝까지 남아서 투쟁해 온 동지들의 심정은 어떨까?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이끌어 왔던 그 지도부 동지들의 지금 심정은 또 어떨까? “제2의 현중노조”, “민주노조에 대한 배신행위”, “열사를 두 번 죽이는 짓”, “비정규직을 이용해 정규직 배불렸다” 등등. 갖가지 비난에 시달리는 정규직 노동조합 지도부의 심정은 어떨까? 그리고 감방 안에서 또다시 단식 중인 비정규직 노조 안기호 위원장의 심정은 어떨까?


내일(12일)이면 현자노조 조합원들은 잠정합의안에 대한 최종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임단투는 ‘종결’ 또는 ‘새로운 투쟁’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불법파견을 중심으로한 비정규직 사업(투쟁)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과제가 되었다.

2005년 임단투와 원하청 공동투쟁

정작 원하청 공동투쟁을 절정으로 끌어올려야 할 현자노조 파업투쟁 시기에 연대회의는 “비정규직 노조가 독자 파업을 추진한 점은 연대회의 기본정신을 저버린 것”이며, (따라서) “비정규직 노조가 이 부분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라”는 정규직 노조의 요구와 “그렇게는 못한다”는 비정규직 노조 사이의 공방으로, 가히 싸움에 가까운 회의만 진행하다 공동투쟁 방침조차 제대로 내리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4공장에서 비정규직 동지들이 천막농성장을 설치하려 할 때 현대자동차 관리자 수십명이 떼거리로 달려들어 폭력으로 짓밟으면서 지원4팀장이 내뱉은 말이 “원하청 연대회의에서 결정되었다면 저희들이 이렇게 안 막습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대회의는 끝까지 비정규직 농성장 설치 지침 하나조차 내리지 못했다.

결국 현자노조의 파업투쟁과 비정규직노조의 파업투쟁은 전혀 조정되지 못한 채 정규직은 임단투를 위해, 비정규직은 불법파견 철폐를 위해, 제각각 진행됐고, 불법파견 특별교섭은 8차례나 회사측이 교섭을 거부하다가 정규직노조 임단협 협상 말미에 “1개월 이내 실무교섭을 통해서 특별교섭을 연다”는 문장 하나 끼워넣고 정리되고 말았다.

비정규직 노조는 독자파업을 감행했지만 그 과정에서 공장을 중단시키는 위력적인 파업으로 이끌지 못했고, 7월 대규모로 조직된 조합원들을 파업투쟁 주체로 만들지도 못했고, 자신감을 잃고 파업투쟁 대오에서 이탈하는 조합원들을 붙잡지도 못하고, 이러한 결과에 대한 내부혼란, 이를 틈탄 원하청 자본의 무차별 탄압에 짓눌려 있다.

정규직 노조는 어떤가?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해서 대다수 현장조직들이 ‘반대’ 또는 ‘부족하다’는 비판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결과가 비판의 원인이라는 점이다.

결국 원하청 공동파업을 통해서 계급적 단결의 기운을 드높이고, 이러한 기운을 모아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 차별 철폐'로 이어가야 함에도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지도부의 갈등이 드러나고, 이를 현장에서 교묘하게 악용한 관리자들의 악선동에 의해서 정규직-비정규직간의 갈등만 증폭시킨 꼴이 되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는 도중에도 정작 연대회의는 “잘못을 인정하라 vs 못한다”는 공방으로 시간만 보냈으니, “과연 이러고도 노동자계급 해방을 부르짖을 수 있을까?”, “이러고도 원하청 공동투쟁이니 연대투쟁이니 말할 수 있을까?” “불법파견 철폐, 비정규직 철폐, 차별 철폐를 향한 진정성이 있기나 한 것인가?” 정말 답답한 시간이었다.

최남선 동지 분신과 류기혁 동지 자결

지난 1월 최남선 동지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화장실에서 분신을 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육신이 회복되면서 최남선 동지는 투쟁현장으로 돌아왔다. 뒤돌아보면 당시 최남선 동지의 분신이 없었다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원하청 연대회의가 구성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최남선 동지의 분신이 있었기에 비정규직 사업에 대한 정규직 동지들의 자각을 드높였고, 이는 곧바로 연대회의 구성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고) 류기혁 동지의 자결 소식을 텐트농성장에서 들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결국 우려하던 일들이 벌어지는구나….’ 원하청 공동투쟁은 고사하고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간의 갈등만 커지고, 비정규직 노조는 갈수록 쪼그라들고, 자본의 탄압은 극악무도하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전망’을 찾지 못하는 비정규직 동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가? ‘극단적인 선택은 없어야 할 텐데….’ 그러나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병원에서 들려온 소식은 “가족들이 경찰서로 가버렸다”는 것이었고,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열사가 맞느니 아니니 하는 논란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기가 막혔다. 결국 대책위구성조차 참여를 “하느냐 마느냐” 논란에서 그 다음은 대책위 명칭에 (고) 류기혁 열사라는 이름이 “들어갔느니 안들어 갔느니”라는 논란까지, 이러한 과정을 누가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받아들이겠는가?

노사 간에 불거진 논란도 아니고, 민주노총과 금속연맹, 현자노조, 비정규직노조 지도부 간에 충돌한 논란이라니, 이러고도 “노동계급 해방”을 부르짖으며 “투쟁하는 노동자”라고 우길(?) 수 있는가?

'월차라도 맘놓고 사용해봤으면' 하는 순수한 마음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조합에 가입을 했고, 관리자의 끊임없는 회유와 압력 속에서도 출근투쟁, 집회등 노동조합 지침에 항상 충실하려고 노력했던 사실, 해고 후 노동조합을 떠나지 않고 농성장을 방문하고, 노동조합 사무실을 방문하고, 집회장에 쫓아다니고, 급기야 자본으로부터 출입금지 가처분까지 받았던 류기혁 동지, 그리고 마지막 떠나는 장소를 비정규직 노동조합 건물 옥상을 택했던 류기혁 동지, 이 명백한 사실을 기초로 노동자의 양심으로 받아 안으면 그만인 것을.

"의로운 뜻을 이루기 위해 맨몸으로 저항하다 목숨을 바친 사람." 이런 사람을 우리는 '열사'라고 부르는 것 아닌가. 개인을 위함이 아니라 민주화를 위해, 통일을 위해, 노동해방을 위해, 농민을 위해, 민중을 위해,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맨몸으로 저항(투쟁)하다 하나뿐인 목숨을 바친 사람, 그런데 고 류기혁 동지가 무엇이 모자람이 있는지?

자본가들 앞에 쪽팔리는 논란은 그만하자.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산 자의 양심으로 비정규직의 차별과 서러움을 끝장내고,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 만들자는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자. 마음에서 실천까지.

현자노조 임단투가 이런 상황으로 종결된다면 결국 “정규직 노조의 자기배 채우기식 투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대기업 노동조합의 사회적, 계급내 고립을 더욱더 심화시키면서 노조운동의 ‘위기’를 부추키는 결과라고 본다.

결국 2005년 임단투가 남긴 것은 정규직 노동자는 뭔가 찜찜한 입장에서 경제적 실리에 안주할 것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상대적인 박탈감과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무너짐으로 인해 패배감은 더 커질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조합 조직력 회복에 모두 나서야

불법파견 철폐, 비정규직 정규직화, 차별 철폐를 중심으로 한 비정규직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전망을 제출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은 어렵다. 원하청 간에 극도의 불신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연대회의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지? 1개월 이내 특별교섭을 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비정규직 노동조합 조직력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지? 체포영장 발부, 대량해고, 무더기 징계, 각종 가처분 등 비정규직 노동3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간의 정서적 분절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비정규직 사업에 대해 더욱더 버거운 과제만 잔뜩 남기고 현자노조의 임단투는 정리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사업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지금부터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시급히 조직력을 회복해야 한다. 따라서 안정적인 지도력 확보와 각 사업부별 조직체계를 복원시키는 일을 지금 남아 있는 활동가 동지들과 정규직 활동가들이 힘을 모아서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울산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조합 조직체계 회복과 전주지회, 아산지회의 조직력 회복을 통해 비정규직 3주체의 통일성을 높여야 한다. 이러한 비정규직 조직력 회복작업에는 뜻있는 현장 제조직과 활동가들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정규직 노조는 그동안 주장해온 비정규직 사업이 헛 구호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먼저 나서서 정규직-비정규직 지도부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특별교섭 성사를 통해서 ‘가능성’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특히 원하청 자본의 악날한 비정규직 탄압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공동대응을 해야 한다.

비정규직사업, 불법파견철폐 투쟁에 대해서 노동자로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결의되는 만큼이라도 실천에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 사업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문제점을 찾아 극복해 나가는 가운데 다시 한번 정규-비정규직 공동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실패한 공동투쟁의 경험은 한번이면 족하다. 현대자동차에서 불법파견 철폐와 비정규직 철폐, 차별 철폐를 외치며 투쟁했던 모든 동지들이 지금은 차분하게 실패한 공동투쟁에 대해서 평가하고, 자기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부터 들춰서 다함께 새로운 가능성과 사업(투쟁)을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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