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불참 이후 한국의 노정관계 전망은? 필자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이다. 결론은 최악의 상태로 갈 것이라는 것. 이유는 간단하다. 약간 전통적인(?) 분석을 가하면 지금 정치·경제적 관계에서의 상부구조는 - 좀 쉬운 말로 하자면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 - 하부구조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부구조는 어떤가?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인 것이 여러 가지 있지만 최근 가장 빨리 증가하고 있는 세계 1위 다섯 가지를 말하라면 첫째 외국자본 증가율, 둘째 비정규직 증가율, 셋째 출산저하율, 넷째 고령화증가율, 다섯째 자살증가율이다. 빈부격차에 관한 한 부정할 수 없는 남미형 경제로 이미 전락했다.

노동행정은 경제정책의 부속물에 그쳐

상부구조는 어떤가? 국민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정치권력구조 - 우리나라는 어떻게 된 게 선거 때만 잠깐 국민이 주인인 듯 하다가 선거만 끝나면 계속 찬밥인 신세가 벌써 몇 십년 째인지 모르겠다 - 가 첫째이고, 노동권에 대한 개념이 없는 통제 받지 않는 외국자본과 재벌자본이 한국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둘째이고, 자본이 잘 놀 수 있게 고용시장을 유연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범국민적 이데올르기로 확립되어있는 것이 셋째이다.

하지만 사실 더 걱정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해결 능력이다.

노동행정은 경제정책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 각 개인의 의지와는 또 다른 구조적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노동행정은 관료기구에 의해 집행된다. 검찰, 경찰, 노동부, 각 행정부처 등으로 나뉘어 집행되지만 결국 노동자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정부이다. 그러나 각 집행단위가 통일적으로 돌아가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재경부 등 경제부처의 입김이 우선이고 종속변수로서 노동행정이 집행되는 구조에서 무슨 노사정 대등의 관계가 가능할 것인가? 노사관계 로드맵? 어떻게 포장을 하든 철저하게 자본 우위의 질서재편을 기대하는 것인데 노동계가 그리 만만해 보이는가?

지금 노동부 장관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장관 한 사람 교체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 대통령은? 마찬가지이다. 최근 신문사편집장들과의 대화에서도 ‘경제는 잘 돌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니 그런 분위기에서 반대 입장을 주장할 참모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그 뿐일까? 국민들이 바보라서 그런 대통령을 탄핵으로부터 보호하고 지금도 그대로 자리에 두고 있을까? 사실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기대한 것은 청문회 때처럼 거대 자본과 외세에 맞서 한판 맞장 뜰 것이라는, 혹은 적어도 이른바 ‘개기면서’ 민중을 보호할 것이라는 기대를 은연중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엉뚱하게 노동자만 ‘갈구는’ 형국이다. 

세상을 바꾸는 투쟁 불가피

그러나 국민들 보기에 미덥지 못한 것은 대체할 세력들도 마찬가지이다.

대체할 개혁적이고 진보적 세력들의 실력이 아직 제대로 조직화되고 훈련되지 못한 것은 우리의 문제이다. 87년 질풍노도의 노동운동이 이제 새로운 조건, 새로운 과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간부와 새로운 컨텐츠의 보강이 필요하지만 이는 더디고 힘들게 진행되고 있다. 고인물이 썩듯이 운동도 새로운 자극이 주어지지 않으면 정체될 수밖에 없다.

힘든 시기에는 비상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지금은 평화로운 시기가 아니다. 첨예한 계급적 갈등이 항존하는 시기이고 따라서 각 주체들은 결단이 필요하다. 적어도 개혁과 진보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우리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기 위한 민주노총의 투쟁, 우리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투쟁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상황은 명백하다. 민주노총은 투쟁을 예고하고 있고, 정부는 바뀔 전망이 없다. 앞날은 뻔하지 않는가?

그래서 다시 질문에 답한다. 앞으로 노정관계는?

최악의 대격돌로 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의 본질에 점점 접근해간다는 점에서 희망을 배태한 최악의 상황이다. 그러니, 어렵더라도 힘차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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