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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불리한 한국형 EITC
  • 성은미 진보정치연구소 상임연구위원
  • 승인 2005.09.0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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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절반이 여성이라고 한다. 이렇게 저렇게 따져보면, 그 수치가 조금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세상의 절반인 여성은 여러 가지 면에서 소중하게 다뤄지지 않아왔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실 정책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정책 앞에 ‘여성’이라는 단어가 붙지 않는 대부분은 여성에게 대한 정책의 영향력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최근 도입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한국형 EITC(Earned Income Tax Credit)도 이런 축에 속한다. 국가가 저임금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보너스’로 소개된 EITC는 1975년 미국에서 처음 실시되었다. 워낙 이름부터가 생경하고, 운영방식도 낯설어 어떤 제도인지를 이해하는데도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다.

EITC, 최저임금 인상 방해 빈곤탈출 못 도와

▲ 성은미 진보정치연구소 상임연구위원.
간략히 말해, EITC는 소득이 낮은 가족에게 국가가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기존 복지정책은 소득이 높아질수록 국가가 주는 현금이 줄어든다. 그러나 EITC는 소득이 높아질수록 국가가 주는 현금도 늘어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보니, 신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이 제도를 적극 환영한다. 왜냐면, 일을 할수록 높아지는 EITC 급여 때문에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빈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1990년대를 기점으로 급속하게 늘어났다.

그렇다면, 빈곤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빈곤탈출은 이뤄졌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이는 EITC가 최저임금 인상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기업주 입장에서는 EITC가 낮은 임금을 보충해주기 때문에 굳이 최저임금을 인상시킬 필요가 없다. 결과적으로 EITC는 여성들의 임금인상을 방해한다. 1990년대 경제활동에 참가한 미국 빈곤여성 대부분은 저임금·불안정노동에 종사해, 일한지 5년이 지나도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한다.

또한 경제활동에 참가한 빈곤 여성 상당수가 아동이 있는 독신모다. 미국은 한국과 유사하게 보육시설도 부족하고, 경제적 지원이 적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은 마땅히 맡아줄 곳 없는 아이를 방치하고, 저임금 노동시장에 참여해야 한다. 결국, EITC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와 아동양육에 대한 선택권을 침해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EITC는 아동 수에 따라 지급하는 돈이 달라서 아이가 많을수록 더 많은 돈을 준다. 어느 정도 아동수당의 효과를 겸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동수당과 EITC는 확연히 서로 다른 제도이다. 아동수당은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제공하는 보편적인 수당이지만 EITC는 소득이 있어야 하며, 저소득층이어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EITC가 작동함에 따라 아동수당의 도입이 어려워져, EITC는 여성에게 긍정적인 제도 도입을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어떠한 한국형 EITC가 도입돼야 하는가

그러면, 기혼여성에게는 어떤 효과를 발생시킬까. 기혼여성들은 EITC가 부부합산과세로 이뤄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 피해를 받는다. 즉 남편과 아내의 소득을 합해 저소득층인지를 가늠한 이후 EITC급여를 주기 때문에 EITC 급여범위에 포함되기 위해 여성 스스로 노동시간을 단축시키게 된다. 결국, EITC는 여성 스스로 저임금의 파트타임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심각한 사실은 한국형 EITC가 이런 문제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여성 노동자의 70%가 저임금·비정규직에 종사하지만, EITC 도입 이후 이들의 임금 인상은 어려워진다. 뿐만 아니다. 아직 아동수당과 공공보육시설 확충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상황에서 EITC 도입은 공공보육시설 확충과 아동수당을 점점 우리에게서 멀어져가게 한다. 또한 이미 위헌판정을 받은 부부합산과세로 이뤄지기 때문에 기혼여성은 스스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도록 강요받는다.

이제 곧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형 EITC, 이대로 도입되어야 하는지, 어떤 형태와 원칙이 필요한지 여성의 입장에서 점검해야 봐야 한다.

성은미 진보정치연구소 상임연구위원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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